갤러리현대, 김민정 개인전
'Zip' 연작 선봬...
"닫힌 지퍼, 이중성 수렴 상징"
폭 8m 'Traces' 최초 공개
현대화랑, 이강승·캔디스 린 2인전
노화에 스민 트라우마 흔적 조명
'인간의 역설적 본질'에 주목
불에 태운 한지 조각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이며, 지난 30여년간 현대 추상화의 구성 어휘를 확장해 온 김민정 작가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진행한 간담회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이번 개인전 'One after the Other'의 주요 작품은 불에 태워진 한지를 지그재그로 쌓아 올린 'Zip' 연작 6점이다. 형형색색의 한지는 서로 배색의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추상화를 이룬다. 김 작가는 "Zip'은 서로 다른 두 요소가 맞닿아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지그재그 형태 속에서 이중성은 마침내 하나로 수렴하며, 그 과정 자체가 깊은 울림을 남긴다"며 "불에 그을린 종이를 한 장 한 장 이어 붙이면, 상처를 감싸는 치유와 조화의 숨결이 피어난다"고 설명했다.
'Zip' 연작은 지퍼가 닫힌 모습을 통해 개별적 요소의 결합과 조화를 선보인다. 김 작가는 "어릴 적 지퍼를 채울 때 느꼈던 행복한 느낌이 있지 않나. 그런 즐거움을 생각하며 작업했다"며 "유연하게 닫힌 지퍼의 모습만 선보였는데, 앞으로는 열린 지퍼의 모습도 작업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그간 한국의 전통 종이인 한지, 먹, 불 등의 재료를 '반복과 절제' 기법으로, 명상적으로 다뤄왔다. 한지 위 겹겹이 쌓인 먹과 불꽃의 흔적은 작가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중요한 재료다. 재료를 마주하며 극도의 통제 속에서 피어난 우연의 공존에 주목하며 정서적 치유와 명상의 의식을 환기한다. 1991년 한국을 떠나 이탈리아 밀라노의 브레라국립미술원에서 유학하며 전공인 동양화에 해외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의 화풍을 접목해 독창적 예술세계를 구축해 왔다. 지난해 유럽의 권위 있는 현대미술 재단인 매그재단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당시 현지 미술계로부터 "수묵 그 자체보다 더 수묵적인 혼성적 장면을 만들어 낸다"고 호평받은 바 있다.
지하 1층에 전시된 'Mountian' 연작은 산세의 형태를 취하지만, 실은 흐르는 물을 표현하려던 시도에서 비롯됐다. 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의도하고 작업했으나, 완성하고 보니 오히려 '산의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 것. 김 작가는 "과거 어느 화백께서 '내가 여러 형체를 다 그릴 지경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흐르는 물을 그리지 못한다'고 하셨던 말이 기억나 작업했는데 완성하고 보니 산이 됐다"며 "나이를 먹으니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겼다. 작업을 하면 부글거리던 마음이 가라앉고 이내 즐거워진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는 '아트바젤 바젤 2024'의 언리미티드 섹션에서 호평받는 대형 작업 'Traces'도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가로 8m에 달하는 대작으로, '흔적'이란 제목 속에 '산'과 '물'의 형태도 엿보인다.
김 작가는 작품 설명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말은 "즐겁게 작업했다"였다. 그는 "작업할 때면 재료가 제게 이렇게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며 "작업은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역설했다. 전시는 10월19일까지 이어진다.
이강승·캔디스 린 2인전, '인간의 역설적 본질'에 주목
인근 갤러리현대(현대화랑)에서는 이강승과 캔디스 린의 2인전 '나 아닌, 내가 아닌, 나를 통해 부를 바람'이 개막했다. 두 사람은 사회적 제도에 의해 배제되거나 역사 속에서 지워지고 잊힌 인물과 공동체의 서사에 주목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두 사람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이면과 인간의 역설적 본질에 주목한다.
26이 오전 갤러리현대(현대화랑)에서 열린 '나 아닌, 내가 아닌, 나를 통해 부를 바람' 전시 간담회에서 이강승 작가(오른쪽)와 캔디스 린 작가가 작품설명하고 있다. 서믿음 기자
한국 태생으로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강승은 '피부'가 시간과 경험, 기억의 복합적 층위를 품은 살아있는 흔적이란 점에 주목한다. 국내 최초 공개하는 영상 작품 '피부'(2024)는 80세의 퀴어 무용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메그 하퍼의 역동적 퍼포먼스를 섬세히 기록하면서, 주름진 피부와 흉터, 노화의 흔적을 여과 없이 노출한다. 이 작가는 "노화 안에는 개인에 대한 기록이 켜켜이 스며들어 있다. 몸이 기억하는 개인과 사회적 트라우마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7점의 드로잉 작품이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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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태생으로 현재 LA에서 활동 중인 캔디스 린은 곰팡이와 박테리아 등 유기적 물질을 매개로,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와 관계에 주목하는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린 작가 작품의 특징은 목가적 이미지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의 폭력과 억압의 기제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영상 작업 '세상에 보내는 고양이과의 메시지들'(2025)에는 고양이의 시점을 통해 인간이 식용, 반려의 목적으로 길들여온 동물들과 맺는 돌봄과 지배, 친밀과 폭력이 교차하는 모습이 담겼다. 린 작가는 "반려묘 로저에 대한 이야기다. 아껴주는 마음 이면의 폭력성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린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폭력성과 억압, 착취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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