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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아파, 李대통령 만나야"…선감학원 악몽에 갇힌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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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성씨는 밤마다 뿌연 안개 속에 갇힌다.

지난달 4일 서울고등법원은 선감학원 피해자 13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국가와 경기도가 1인당 4500만~6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재판에서 선감학원 운영 사무가 경기도의 자치 사무라고 주장했고 경기도는 국가 사무를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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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전 아동 수용시설로…구타·성폭행 당해
고통은 현재진행형…흉터 스칠 때 트라우마
2심서 손해배상 결정…정부·경기도 곧바로 상고
李대통령 면담 요구…"재판 이후의 일이 중요"

이주성씨(66·남)는 밤마다 뿌연 안개 속에 갇힌다. 안개를 헤치다 보면 불쑥 사람이 나타난다. 아이와 나이가 들어 보이는 선생님이 차례로 이씨에게 주먹이나 몽둥이를 휘두른다. 이씨는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이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한다. 다 죽이고 나면 안개는 걷힌다. 안개가 사라지자 등장하는 건 자신의 방. 꿈에서 깨고 나면 이씨의 옷은 항상 땀으로 젖어 있다. 새벽이지만 항상 켜져 있는 형광등에 눈이 부시다. 한 번 악몽에서 깨고 나면 다시 잠들기 힘들다.


이씨는 60살을 넘긴 노인이지만 여전히 9살에 머물러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씨는 1969년 수원시에서 동생과 함께 큰형을 만나러 갔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부랑아처럼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수원 남문시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와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건 경찰의 발길질이었다.


"지금도 아파, 李대통령 만나야"…선감학원 악몽에 갇힌 노인 지난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주성씨(66·남)가 시위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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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곧바로 경기 안산시 선감도에 위치한 아동 수용시설 선감학원으로 동생과 함께 끌려갔다. 선감학원은 군사정권 당시 부랑아 보호 및 직업훈련 명목 아래 아동들을 강제 수용한 시설로 1982년까지 운영됐다. 위치는 안산시청에서 차량으로 1시간 가야 할 만큼 외진 곳에 있다. 이씨는 1975년까지 선감학원에 수용됐다. 그는 그곳에서 수용 청소년으로부터 구타는 물론 성폭행까지 당했다고 증언했다. 1972년 선감학원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흠씬 두들겨 맞고 며칠 동안 햇빛이 들지 않는 창고에 갇히기도 했다. "어린 나이 성폭행을 당하고 너무 괴로워서 죽으려고 약을 계속 탔어요. 폐가 아프다고 약을 타고, 머리 아프다고 약을 타고. 약을 모아서 한 번에 먹었는데도 죽지 않고 깨어났습니다."


"지금도 아파, 李대통령 만나야"…선감학원 악몽에 갇힌 노인

선감학원에서 나온 지 50년이 됐지만 이씨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창고에서 밧줄로 세게 묶인 탓에 상처가 깊게 파여 오른팔 흉터가 남았다. 어쩌다가 그 흉터가 스친 느낌이 들면 순식간에 창고에 갇힌 듯 숨이 막힌다. 여전히 공황장애 약을 먹고 있는 이유다. 진실화해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씨는 창고에 오랜 기간 갇혀 배변 트라우마까지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계속해서 통곡했다. 마치 9살 아이처럼 말이다. "아직도 선감학원의 기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어요.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아요."


이씨는 이번달부터 매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그는 오후 6시 매입임대주택을 관리하는 일을 끝내고 경기 용인시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이동한다. 1시간30분이 걸려서 대통령실 앞에 도착하면 피켓을 꺼내 든다. 아내와 딸은 건강을 이유로 이씨의 시위를 말렸지만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도저히 잠이 들 수 없다는 이유로 뿌리쳤다. 지난 16일 비가 쏟아지는데도 그는 피켓을 들었다. "300명이 넘는 생존 피해자는 오늘도 악몽 속에서 아침을 맞이하는데 가해자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이씨는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소리치는 동안 계속해서 울먹거렸다.


"지금도 아파, 李대통령 만나야"…선감학원 악몽에 갇힌 노인 지난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만난 이주성씨(66·남)가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공황장애 약을 보여주고 있다. 공병선 기자

그가 용산 대통령실까지 오게 된 이유는 정부와 경기도 때문이다. 지난달 4일 서울고등법원은 선감학원 피해자 13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국가와 경기도가 1인당 4500만~6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재판에서 선감학원 운영 사무가 경기도의 자치 사무라고 주장했고 경기도는 국가 사무를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즉, 정부와 경기도가 서로 책임을 미뤘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기차역 내부 또는 인근에서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해 갑작스럽게 수용시설에 수용됐다"며 "선감학원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은 기숙사마다 사장·반장을 두었는데 이들의 단체 기합과 폭행을 방치했고 이 과정에서 성폭행도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설령 선감학원의 운영 사무가 경기도 자치사무라고 해도 피고 대한민국은 모든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선감학원 운영이 경기도지사에게 위임된 사무라고 볼 여지가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자치사무의 성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경기도는 각각 지난달 24일, 25일 상고장을 제출했다. 대법원으로 가게 된 이상,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또다시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이 재판이 시작된 건 2022년 12월로 이미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이씨는 국가가 나서서 선감학원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가한다고 분노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피해자가 아직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경기도는 재판이 끝나면 바로 항소하고 상고한다"며 "정부가 상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라를 뒤집어야 할 만큼 뭐라도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족이 힘들어질 테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도 아파, 李대통령 만나야"…선감학원 악몽에 갇힌 노인 이주성씨(66·남)의 과거 가족사진. 이씨는 가장 아래 줄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씨 제공

이씨는 정부와 경기도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했다. 아울러 선감학원의 옛터가 복원되고 그곳에 암매장된 187명의 유해가 10평의 좁은 공동묘지가 아닌 넓은 땅에 묻히는 등 명예가 회복되길 바랐다. "재판을 통해 1인당 얼마씩 돈을 받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재판 이후의 일이 더 중요해요. 요즘 딸에게 물어보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아빠 살아있을 때 선감학원 사건이 교과서에 실릴 수 있겠냐고요. 딸은 '반드시 올 거예요'라고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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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피해자들은 오는 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연다. 이들은 정부와 경기도의 공식적인 사과,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한 상설 회복 기구 설립을 요구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재명 대통령과의 면담도 요청하기로 했다. 이씨 역시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을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씨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만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책임을 통감했던 것을 기억했다. "만약 이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저희는 과거에만 아팠던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도 너무나도 아픕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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