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단말기유통법 폐지, 휴대폰 가격 하락 예상
새 갤럭시Z 출시, SKT해킹 등 변수 겹쳐
2014년 10월 정부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유통법)을 시행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휴대전화는 공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쉽게 말해 통신 서비스에 가입해 요금만 내면 휴대전화는 공짜로 준다는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 요금제에서 가장 비싼 것은 월 10만원 안팎, 가장 싼 것은 월 3만원 선이다.
당시 통신사에 근무했던 한 기업 임원은 "단말기유통법 이전에는 월 3만원짜리 요금제에 가입하고도 고가의 최신폰을 공짜로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단 "시장상황은 변수"라는 설명을 붙였다. 가입자 모집 경쟁이 치열할 때는 실제로 저렴한 요금제에 가입하고도 공짜로 고가폰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사업자들이 그다지 가입자 모집에 열정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요즘처럼 고가 요금제에 오래 묶여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그땐 지금보다 훨씬 싼 가격에 휴대폰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래서 휴대전화 교체주기가 짧았다. 2014년 미래부가 낸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스마트폰 교체율 및 교체주기(2014.4)' 자료를 보자. 2013년 우리나라 스마트폰 교체주기는 15.6개월로 OECD 조사 33개국 중 가장 짧았다. 시장조사업체인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2023년 기준 한국 스마트폰 교체주기가 33개월이라고 밝혔다. 교체주기가 매년 약 1.7개월씩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휴대폰이 비싸지니 아무래도 바꾸기가 부담스러워졌다. 그 결과 휴대전화의 수명이 길어졌다.
보통 휴대전화 서비스 가입 시 2년 약정을 한다. 2년 안에 다른 서비스로 갈아타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 단말기유통법 전에는 2년이면 무조건 폰을 바꿨다. 실제로는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교체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이 워낙 비싸 약정 기간이 끝나도 새 폰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1년 정도 더 구형폰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오는 22일 이후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4년 12월26일 국회는 단말기유통법을 폐지하기로 의결했다. 그 시행일자가 바로 7월22일이다.
게다가 이미 시장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상태다. 유심 해킹 사태로 한동안 가입자를 받지 못하고 고객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SK텔레콤이 6월24일 신규영업을 다시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도 고가의 최신폰을 명목상 '0원'에 살 수 있다. 단 10만원 정도 고가 요금제를 6개월 동안 쓰고 그 이후에도 4만원 이상 요금제를 써야 한다는 식의 조건이 붙는다. 예를 들어 몇 달 전이라면 10만원 요금제를 9개월 쓰고 이후 5만원 이상 요금제를 사용한다는 약정을 해야 했다. 어쨌든 최근 휴대전화 가격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곧 삼성전자가 회사를 대표하는 스마트폰인 갤럭시Z 시리즈를 한국 시장에 내놓는다. 삼성전자는 9일 미국 뉴욕 '갤럭시 언팩' 행사장에서 갤럭시 Z폴드7과 Z플립7을 공개한다. 이후 사전예약을 받고 7월 말 한국시장에 물건을 정식출시한다. 출시 일자는 당연히 단말기 구매 보조금 상한이 사라지는 단말기유통법 폐지 직후일 것이다. 최신 전략폰이 나오면 바로 전 제품 가격은 확 내려간다. 말하자면 갤럭시 Z폴드6, Z플립6 가격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건이 달궈 놓은 시장 위에 정부가 단말기유통법 폐지란 기름을 뿌리고 그 위에 삼성전자가 전략 최신폰이란 불씨를 던진다. 결국 7월 말 이후 한국 통신 서비스 시장에 큰불이 날 것이란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계산이 빠른 소비자들은 현재 온라인에서 134만원이 넘는 플립6를 사실상 공짜에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다.
버스폰, 퇴근폰, 내방폰이 다 뭐야
그래도 100만원이 넘는 휴대전화가 설마 공짜에 풀리겠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단말기유통법 이전 시장상황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당시 통신사들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경쟁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꽤 있다. 버스폰, 퇴근폰, 내방폰 등 신조어들이 생겼다.
인터넷에 갑자기 '1290번 버스 타세요'란 글이 올라온다. 1290이란 의미는 일반적인 24개월 대신12개월만 약정해도 보조금을 90만원 주겠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등장한 단어가 버스폰이다. 2012~2013년 가장 가장 인기 있었던 갤럭시S3 출고가가 99만9400원이었다. 말하자면 공짜폰을 원하다면 연락하라는 이야기다.
'퇴근폰'이란 말도 있었다. 통신사들은 판매대리점에 판매장려지원금(리베이트)을 준다. 경쟁이 격해지면 지원금액이 올라간다. 치열한 판매 경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한 통신사 직원이 대리점에 가서 장사가 잘되냐고 물어보니 대리점주가 "하나만 팔면 퇴근한다"고 했다. 1개만 팔아도 지원금을 포함 100만원 정도를 번다는 설명이었다. 실제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퇴근폰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설명이 나온다. 내방폰이란 예를 들어 '신도림 A 오피스텔 304호를 내방'해서 계약을 하면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인터넷에서 버스폰 게시물을 보고 외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계약을 하고 받는다.
당시에도 정부는 휴대전화 요금을 규제했다. 하지만 경쟁을 막기에 단순 규제로는 약했다. 그래서 단말기유통법을 만들었다. 처음엔 단말기유통법이 정말 불법보조금을 막을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법 통과 직후 통신3사 담당임원이 기소를 당하자 시장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단말기유통법은 통신사 대표까지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표가 단말기 보조금을 특정 가입자에게만 차별적으로 지급하도록 부당하게 개입(강요·유도 등)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단말기유통법을 만든 명분은 크게 2가지다. 우선 소수만 공짜폰 혜택을 누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버스폰 게시물은 새벽, 야심한 시간에 잠깐 인터넷에 올라왔다 곧 사라졌다. 또 물건을 사려면 오라는 장소도 아무래도 도심이었다. 아무래도 이런 정보에 어둡거나 사는 곳 주변에 물건을 파는 곳이 없으면 남들은 공짜로 사는 휴대전화를 상대적으로 비싼 돈을 내고 사야 했다. 쉽게 말해 나이가 많은데다 지방에 살고 있다면 아무래도 공짜폰을 사기 힘들었다. 다음은 낭비가 심하다는 논리에 정부가 손을 들어줬다. 2013년 기준 한국은 휴대전화 교체주기가 15.6개월인데 미국은 19.2개월, 일본은 29.2개월이었다. 아껴야 잘산다는 이야기가 통했다.
공짜폰 등장을 가로막는 벽
물론 이제는 단말기유통법이 사라져 스마트폰 가격이 떨어질지언정 공짜폰까지 등장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는 지적이다. 2014년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2015년 팬택이 국내 휴대전화 출시를 중단했다. 또 2021년에는 LG전자가 휴대전화 사업에서 발을 뺐다. 결국 국내에 휴대전화를 만드는 업체는 삼성전자 하나뿐이다.
문제는 휴대전화 보조금을 통신사뿐 아니라 제조업체도 지급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과거 재고가 너무 많을 때 삼성전자는 SK텔레콤을 찾아가 보조금을 5만원 더 지급할 생각이 있으니 당신들도 5만원을 더 지급해 휴대전화를 팔자고 제안한다. 만약 SK텔레콤이 거부하면 KT를 만난다. KT도 생각이 없다면 LG유플러스와 이야기한다. 경쟁이 치열하니 이통사는 결국 제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제조업체는 보조금 지급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에는 삼성 보조금 때문에 시장에서 밀린 LG가 보조금을 10만원 더 쓰겠다며 이통사를 돈다. 팬택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치열한 경쟁이 휴대전화 값을 끌어내리는 구조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는 삼성이 유일하다. 사실상 경쟁자는 애플뿐이다. 하지만 애플은 판매를 위해 보조금을 펑펑 쓰는 업체가 아니다. 결국 삼성이 전처럼 가격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 만약 휴대전화 가격이 예전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 휴대전화 시장이 사실상 2업체만 경쟁하는 복점(複占·duopoly) 상태이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공짜폰 시대, 소비자는 정말 이익을 볼까?
만약 스마트폰 가격이 공짜나 다름없이 떨어진다면 소비자는 과연 이익을 볼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단말기유통법 도입 이후 가계통신비를 보자. 2013년 월 15만2800원이던 가계 통신비가 2023년 12만8160원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통신물가와는 전혀 다르다. 그 이유는 스마트폰 가격 때문이다. 2013년 가장 비싸야 100만원이던 휴대전화 가격이 200만원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거의 공짜였다. 통신비가 내린 대신 비싸진 휴대전화를 할부로 사야 하는 소비자 입장에선 체감 통신비용이 크게 올랐다.
정부는 단말기유통법으로 휴대전화 가격을 올리고 대신 통신요금을 잡았다. 오는 22일 단말기유통법 폐지 이후엔 반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휴대전화 가격이 떨어지고 통신요금이 오르는 것이다. 정부에 이동통신요금 가격 인허가권이 있다. 단말기유통법으로 보조금 지출이 줄자 통신사 이익이 늘었고 정부가 대신 요금을 오르지 못하게 할 명분이 생겼다. 이제 다시 보조금 지출이 늘면 정부가 요금 인상을 막기 힘들다. 통신사가 통신망에 계속 투자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소비자에게 돈을 더 걷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휴대전화 가격이 떨어져 소비자가 좋지만 길게 보면 요금이 올라 큰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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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제조사와 통신사 입장에선 손해와 이익이 분명하다. 단말기 교체주기가 줄고 스마트폰이 더 팔리니 제조업체는 이익을 본다. 반면 통신사는 통신비를 올리기 위해 정부와 소비자를 설득하는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한다. 말하자면 앞으로 통신비는 점차 오를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입장에선 오는 22일 직후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점에 빨리 요금제를 선택해 스마트폰을 바꾸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인 셈이다.
백강녕 IT스페셜리스트 young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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