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 기준 손질 커지는 목소리
검찰이 극단 발언과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범죄에 더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지침을 내린 배경에는 온라인 개인 미디어의 발달 속도에 비해 이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법조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 오던 법 집행 기조에서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법원의 양형 기준도 그에 맞춰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근 법원에선 일반인 신상 공개, 허위 사실 적시 등을 통한 악의적 비방을 일삼은 유튜브 '사이버 레커'에 대해 벌금형과 집행유예를 잇따라 선고하고 있다. 수원지법 형사6-1부(재판장 곽형섭·김은정·강희경 부장판사)는 4월 29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유튜버 이준희(활동명 구제역) 씨의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3회에 걸쳐 타 유튜버의 성범죄 전력을 언급하는 등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다.
인천지법 형사11단독 김샛별 판사는 1월 15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모욕 등 혐의를 받은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 씨 등 유명인을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영상을 올려 억대 수익을 올린 유튜브 탈덕수용소 운영자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추징 2억 원을 명령했다.
하지만 수백만 원대의 벌금형과 징역형 집행유예 판결만으로는 범죄 예방 효과가 낮다는 지적이다. 억대의 수익을 올리는 유튜버들에게는 허위사실 유포를 통한 수익이 더 커 판결의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의 특별양형인자에 '경제적 이익을 취한 경우'를 포함하는 등 양형 기준을 손질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형법에 규정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법정형 자체가 낮지는 않다"면서도 "명예훼손죄를 저질렀을 때 이로 인해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생매장되다시피 하는 등 인격권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에도 가해자에 대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관대한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법을 개정해 법정형을 상향하기보다는 법원에서 피해의 정도에 상응하는 형을 선고하도록 양형기준을 합리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양형 기준 손질과 함께 개별 법관들이 판결을 선고할 때에도 이 같은 내용을 양형에 적극 설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창원지법 형사6단독 우상범 부장판사는 4월 18일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유튜브 채널 '집행인' 운영자 B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556만 원의 추징을 명령하며 "객관적이고 충분한 검증 없이 피해자들을 가해자로 단정 지어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 콘텐츠를 게시한 행위는 단순한 사실 왜곡이나 명예훼손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사적 제재'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행"이라고 적었다. 우 부장판사는 "공익적 목적을 내세우면서도 영상 조회수를 통한 광고 수익을 실질적 동기로 삼고 반복적으로 유사한 콘텐츠를 제작한 점에 비추어 볼 때, 그 행위는 정의 구현이나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것이라 보기 어렵고 오히려 '사이버 레커' 유튜버의 전형적인 행태와 같이 타인의 인격권과 기본권을 침해해 개인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 주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러한 명예의 침해는 디지털 환경의 특성상 삭제나 정정으로 회복되기 어려운 치명적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고법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수익을 위해 극단적 표현 등을 일삼는 사이버 레커에 대해 기존 양형 기준으로 다루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양형 기준 손질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에는 이 같은 범죄를 근절해야 한다는 요청이 반영돼 있는 것이므로 법원에서도 경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 판단이 일종의 사회적 지침과 국민의 행동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폭력을 선동한다거나 타인의 인격권을 짓밟는 발언을 어떻게 처벌하고 사회적으로 규율할지 적극적인 연구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적극 재판을 청구하고, 약식 기소 사건에서도 구형 기준을 강화하면 결국 법원도 양형 기준에 대해 논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인격권을 훼손하는 표현에 대해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기조가 형성되는 과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19년 3월 명예훼손 범죄의 양형기준을 마련하고, 그해 7월 1일부터 시행에 돌입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현행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양형기준은 ▲일반 명예훼손은 최대 징역 2년 3개월 ▲출판물 등·정보통신망 이용 명예훼손은 최대 징역 3년 9개월이다.
홍윤지 법률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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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경 법률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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