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 수출통제 철회한 美…"韓 메모리산업 영향 받을 수도"

"단순 규정으로 대체" 밝혔지만
對중국 압박 커질 가능성 있어
전문가들 "국가별 협상에 주목
적절한 대응 전략 마련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임 조 바이든 정부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통제 정책을 시행 직전 철회하고 단순화된 규정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형식은 단순해졌지만, 대중국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메모리 산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규제 방식과 국가별 협상에 주목해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7일(현지시간) 'AI 확산 프레임워크'로 알려진 기존 국가별 등급 수출통제 시스템을 백지화하고 단순화된 규정으로 대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AI 확산 프레임워크'는 오는 15일 발효 예정이었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바이든 정부의 AI 정책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관료적이며 미국의 혁신을 방해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훨씬 단순한 규정으로 대체해 미국 혁신을 촉진하고 AI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AI 반도체 수출 통제를 동맹국, 일반국가, 우려국가 등으로 나눠 차등하는 구조에서 새롭고 단순한 방식으로 대체하겠다고 한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조치에 대해 국내 반도체 업계는 아직 유불리를 따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시장에선 복잡한 국가별 수출통제 체계가 철회된 점을 규제 완화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앞두고 이번 조치를 내놓은 만큼 중동 일부 국가에 대한 수출 통제는 완화하는 대신 대중국 규제는 오히려 강화하는 모양새다. 선별적 적용에 따른 불확실성보다 단기 기대감이 먼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김정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이번 결정으로) 당장 새로운 방식으로 반도체 규제의 강도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신원규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이번 조치를 "상대국을 티어로 구분하는 방식은 없애고 단순화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하며 "미국 내가 아닌, 현재 중국의 반도체 산업 생태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중국에서 제조하여 미국으로 오는 제품의 경우는 제재를 받게끔 디자인이 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중국 내 생산거점을 활용해 반도체를 제조하고 미국으로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위원은 "HBM의 경우 우리 기업들은 중국보다 대만으로 가는 물량이 대부분"이라며 "국가별로 중국으로의 수출 우회를 막게끔 조치를 하겠다는 스탠스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중국 우회 수출을 얼마나 통제하느냐는 부분에 대해선 국가별로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은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의 '단순화된 수출통제'가 관세 정책과 연결될 가능성도 언급됐다. 김 부회장은 "보조금보다는 관세 정책으로도 미국 산업을 활성화하기에 충분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신 위원 역시 "바이든 정부가 동맹국에 관세를 면제해줬다면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둘러싼 동맹국부터 다뤄보겠다는 기조"라며 "다른 분야는 다 관세를 낮추더라도 반도체 등 첨단 기술에 대해서는 고율 관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이 보도되자 이날 미국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3.1% 상승 마감했다. TSMC, 브로드컴, 퀄컴, AMD 등 주요 반도체 기업 주가 역시 일제히 상승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역시 1.76% 오르며 마감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오전 10시 22분 기준 전 거래일보다 3400원(1.78%) 오른 19만4200원에 거래되고 있다. 같은 시각 삼성전자는 300원(0.55%) 오른 5만4900원에 거래됐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