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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지금 한국 사회엔 '똘레랑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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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1979년 유신 체제에 반대하며, 반독재 투쟁을 전개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조직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거 체포됐다. 간첩 조직이란 누명을 쓰고 체포된 이들 대다수가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때 이 책의 저자 홍세화는 남민전의 일원이었으나 프랑스 파리에 머문 탓에 체포를 피할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망명자 신분이 된 그는 20년 가까이 택시운전을 하며 프랑스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존재했다. 그 당시 갈 길을 잃고 정처없이 타국 땅에서 고뇌한 흔적을 책에 담았다. 1995년 초판 당시 타인에 대한 상식적인 존중과 용인을 뜻하는 '똘레랑스'란 용어를 알리며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았다. 정치·사회적 대립이 극심해 어느 때보다 똘레랑스가 절실해진 현 시점에 개정증보판으로 재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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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달라졌다고들 한다. 사실이다. 내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세상이 바뀐 덕이다. 그러나 그 변화란 불평등과 억압, 배제의 행태만 바뀐 것, 다시 말해 그것들이 노골적이었던 데서 은밀하게, 그러나 구조적으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 이처럼 '달라졌으면서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이라서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 즉 차이를 차별, 억압, 배제의 근거로 삼지 말라는 '똘레랑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앞으로도 아주 긴 세월 동안 계속 유효할 것이다. - 「개정판 서문」에서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 그것이 나에게 처음 가져다준 것은 눈물이었다. (…) 그러나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은 그 만남으로 또는 눈물로 그쳐선 안 될 일이었다. 만남도 눈물도 사랑에서 오고 또 사랑을 요구한다. 또한 그 사랑은 사회 안에서 반드시 앙가주망(engagement, 사회참여)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다만 '나 자신과 벌이는 끝없는 싸움'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에서

'처지가 달라지면 의식도 그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나 스스로 확인하고 있었다. 과거의 내 의식은, 문학작품을 읽거나 영화 등을 볼 때 아주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그 주인공과만 일치시키곤 했는데, 지금의 나의 의식은 스스로 '주인공'보다는 '엑스트라' 쪽에 일치시키고 있었다.(…) 나는 이방인이되 엑스트라 이방인이었고 또 삼중의 이방인이었다. - 「이방인」에서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에선, 즉 설득하는 사회에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축출하지 않으며 깔보지 않았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 않고 대신 까페에서 열심히 떠들었다. 말이 많고 말의 수사법을 중요시했다. 또 강요가 통하지 않으므로 편견이 설 자리가 없었다. 택시운전사를 택시운전사로, 즉 그대로 인정했다. 이 말은 택시운전사인 내가 택시운전을 잘못할 때는 손님의 지청구를 들을 수 있으나 택시운전사라는 이유 때문에 업신여김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 「아듀! 고물택시」에서

나는 한국을 내가 돌아갈 수 없는 나라로 설명해야 했다. 통통 마쿠트(Tonton Macoute)의 아이띠라는 나라 혹은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한국의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아래 저질러졌고 또 저질러지고 있다고 말해야 했다. 비록 그것이 사실이었지만 그 말을 전달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허우적거렸다. 급기야 나는 울고 싶은 충동에 몸부림쳤다. 나의 망명 신청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짧은 영어로 더듬거리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 「망명 신청, 갈 수 없는 나라」에서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라고 부르오. 공산주의자도 빨갱이지만 사회주의자도 빨갱이고, 진보주의자도 빨갱이며, 미국에 비판적이도 빨갱이라오. 그리고 이상주의자도 휴머니스트도 빨갱이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오. (…) 당신은 사회주의자요? 좌파요? 좌파나 우파란 말은 상대적이오. 극우에겐 극우가 아닌 모든 자가 좌파요. 한국에서는 이 모든 좌파가 빨갱이가 될 수 있소. 침묵하지 않을 때 말이오. 그러므로 극우가 아닌 실존주의자는 모두 빨갱이가 되어야 하는 곳이 바로 한국이오." - 「망명 신청, 갈 수 없는 나라」에서

나는 사랑을 배우기 전에 증오를 배웠다. 강의 저쪽은 증오의 대상일 뿐이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철석같이 믿어왔는데, 바로 거기에도 내가 있었다. 나는 분열되었다. 나는 새로 발견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해체되었다. 그곳을 떠나 서울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빈껍데기가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 간직하고 있던 그 모든 꿈도 가치관도 그리고 'KS마크'도 다 허물어졌다. 자존심도 또 이른바 엘리뜨 의식도 그 모든 것과 함께 사라졌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자존심(自尊心)은커녕 자존심(自存心)도 갖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나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 「회상 1·잔인한 땅」에서

나의 방황은 실존을 요구했다. 그것은 당연한 결론이었다. 싸르트르를 읽고 까뮈를 읽었다. (…) 다른 사람은 다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내 삶의 원칙이 되었다. 카뮈가 말한 시시포스의 바위는 나에게 특별한 이미지를 가져다주었다. 다시 굴러 떨어질 줄 알면서도 그 바위를 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비극은 처절한 것이었지만 저항이었고 철저한 삶이었다. 나도 시시포스가 되었다. 바위로 그 강을 메우는 거야. 흘러 내려가더라도 또 가라앉더라도 갖다 메우고 또 갖다 메우는 거야. 끊임없이, 끊임없이 그 강을 메우는 거야. 시시포스의 바위로, 나의 바위로. - 「회상 2·방황의 계절」에서

나는 투철한 혁명가도 아니었다. 이론가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정치적 욕구도 나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내 삶의 의미를 되새겼고 그에 충실하고자 했다. 나를 사랑하고 나 아닌 모든 나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분열에 저항하여 하나로 살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내 가슴의 요구였다. 그뿐이었다. - 「회상 3·가슴의 부름으로」에서

원래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은 설득에 의한 동의로 바뀔 수는 있어도 강제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강제에 의해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는 이념이나 신념이었다면, 그것들은 이미 이념도 신념도 아니고 다만 허위였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이념이나 종교신념이 나와 다르다고 강제하여 전향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다만 인간성에 대한 몰이해이며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이념이나 신념에 대한 모독이 될 뿐입니다. - 「보론·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에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홍세화 지음 | 창비 | 420쪽 | 2만2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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