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회수 위험 줄여 안정적 공사 수행 보장
건설사 줄도산 위기가 대형 건설사들에게 번질 조짐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대형 건설사들까지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수많은 하도급 업체와 협력 업체들의 도산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대형 건설사가 회생 절차를 신청할 경우 발주처가 도급인인 대형 건설사를 거치지 않고 하도급 업체에 직접 공사대금을 지급하는 '직불 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대기업도 피할 수 없는 건설 불황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0대 건설사 중 GS건설(249%), SK에코플랜트(233%), 현대엔지니어링(241%) 등은 2024년 4분기 기준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섰다. 건설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부채비율 200% 이하를 양호한 수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이들 대형 건설사의 재무 상태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건설업계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 고금리 등 삼중고에 시달려 왔다. 여기에 미분양 확대와 분양가 하락까지 겹치며 대형 건설사들도 자산 매각과 사업 축소를 통한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롯데건설은 서울 서초구 본사 부지를 포함해 약 1조 원 규모의 자산 매각을 검토 중이다. SK에코플랜트는 2024년 말 대규모 인력 감축에 이어 해상풍력 자회사 SK오션플랜트 등 자회사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GS건설도 자회사 GS엘리베이터 매각에 이어 수처리 전문 자회사 GS이니마 매각도 검토 중이다. 대우건설은 1800억 원 규모의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 지분 매각을 결정했고, DL이앤씨와 HDC현대산업개발 역시 서울 도심 본사 이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 건설사의 부실은 단순히 해당 기업의 위기를 넘어 건설 생태계 전반에 심각한 파장을 초래할 수 있다. 건설업 특유의 사업 구조와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특히 회계연도가 3월인 법인이 많은 건설업 특성상 4월을 전후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장이나 자금 회수 결정이 몰리면서, 이 시기에 법정관리 신청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출신 전대규(57·사법연수원 28기) 변호사는 "건설사업은 권리관계가 복잡한 데다, 공동수급체처럼 여러 회사가 얽힌 사업 구조에서는 채권자 간 합의도 쉽지 않다"며 "결국 새로운 수주가 뒷받침돼야 정상화가 가능한데, 건설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서울회생법원에서 근무했던 다른 변호사도 "최근 건설사의 연이은 회생 절차 돌입은 2008년 금융위기 상황을 연상케 한다"며 "건설업은 PF 대주단, 미분양 수분양자, 하도급업체 등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피해가 빠르게 확산할 수 있는 만큼,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직불합의, 회생계획에 적극 반영해야"
대형 건설사의 자금난으로 하도급대금 지급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직불 제도'가 하도급업체 보호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4조는 발주자가 원사업자의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공사대금을 수급사업자에게 직접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도급업체의 대금 회수 위험을 줄이고 안정적인 공사 수행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다만 건설산업기본법이 적용되는 건설 하도급에서는 직불 합의만으로 직접지급 사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기성검사와 직접지급청구 절차가 수반돼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에 하도급 업자가 지급청구를 하기 전 원사업자의 채권자가 가압류 등을 한 경우 하도급 업자의 지급청구권이 인정받지 못하기도 했다.
회생 사건을 다수 처리한 한 부장판사는 "직불합의 이후 제3자의 압류가 이루어져 하도급대금 직접지급청구권의 효력이 문제가 된 사안에서, 건설산업기본법도 하도급법의 취지에 맞게 해석해야 하므로 직불 합의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하도급업체가 직접지급청구권을 갖게 된다고 해석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건설사가 회생에 들어갈 경우, 하도급업체나 영세 협력업체의 피해를 줄이려면 직불 합의를 통한 조기 변제 방안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회생 절차 자체가 연쇄 도산을 방지하고 소액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 만큼 발주처나 시공사 모두 직불 합의를 통한 변제 방안을 회생 계획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금 뜨는 뉴스
안재명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