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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무너진 집 앞에서 엉엉 울었다"…갈 곳 잃은 산불 이재민들[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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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체육관에 모인 411명 이재민들
집은 물론 논밭까지 모두 산불 피해
"언제 집에 갈 수 있을지 막막할 뿐"

"눈만 감으면 불덩이가 막 어른거려요. 싹 무너져 내린 집 앞에서 엉엉 울었습니더."


"싹 무너진 집 앞에서 엉엉 울었다"…갈 곳 잃은 산불 이재민들[르포] 경북 안동시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쉬고 있는 이재민들. 전광판에 나오는 실시간 산불 속보를 보는 모습. 이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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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경북 안동시 안동체육관. 이곳에서 만난 심효섭씨(68·일직면 귀미리)는 어제부터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영남지역을 집어삼킨 화마로 집이 잿더미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23살에 시집을 와 4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집과 700평짜리 복숭아밭을 하루아침에 잃은 심씨는 "수저 하나 남기지 않고 퇴비까지 몽땅 타버렸다"며 눈물을 훔쳤다. 심씨는 "그나마 닭 5마리는 그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았더라"라면서 "구석에서 꼭꼭꼭 소리가 나서 가보니 웅크리고 모여 있길래 제 살길 찾으라고 풀어주고 대피소로 왔다"고 말했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 남부지역까지 덮친 가운데 대피소로 몸을 피한 이재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불길이 바람을 타고 안동 시내까지 번질 수도 있다는 소식에 공포감과 허망함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모습이었다.


이날 찾은 안동체육관에는 111개의 텐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길안면, 일직면 등 산불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지역에서 온 이재민 411명(28일 오전 7시 기준)을 위해 임시로 마련된 거처다. 이재민 대부분은 농사짓던 밭이나 과수원에서 원예를 가꾸던 노인들이었다. 이들은 답답한 마음에 체육관을 돌아다니거나 텐트 앞에 놓인 돗자리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며칠째 밭에서 일하던 작업복을 그대로 입은 채 자식이나 이웃과 통화하며 눈물을 훔치는 이재민도 있었다.


"싹 무너진 집 앞에서 엉엉 울었다"…갈 곳 잃은 산불 이재민들[르포] 텐트 100여 개가 빽빽하게 늘어선 안동체육관 실내. 텐트 옆에는 각종 상황실과 돗자리가 마련돼 있다. 이은서 기자.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산불에 논밭은 물론이고 각종 농기구, 경운기, 냉동창고는 불길에 재가 됐다. 이재민 조금희씨(72)는 "오늘 다시 가보니 옷도 없고 그릇, 농기구, 하다못해 표고버섯 키우는 나무통까지 다 불에 타버렸더라"라며 "봄에 먹으려 작년에 밭에 심어놨던 대파, 마늘도 모두 골아버렸다"고 말했다.


화마 속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몸만 빠져나왔다는 권오봉씨(81)는 "불이 1초에 100m 넘게 건너오는 것 같았다"며 "10분만 더 있었으면 옷을 100벌도 가져왔을 텐데 불이 닥치니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이재연씨(78)는 저녁마다 혼자 울음을 삼켰다. 그는 취재진에 야생화로 가득했던 마당 사진을 보여주며 "꿩다리, 돌단풍, 매발톱 같은 야생화들도 다 불에 삶겨서 죽었다"며 "꽃봉오리 맺히고 피는 걸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허망하기만 하다"고 했다.


"싹 무너진 집 앞에서 엉엉 울었다"…갈 곳 잃은 산불 이재민들[르포] 경북 안동시 일직면 명진2리 이재민이 자신의 마을이 불탄 모습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은서 기자.

수십 년을 지낸 삶의 터전이 사라진 이재민들은 취재진을 붙잡고 막막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5년 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새집을 짓고 살던 김정자씨(86)는 "죽을 쒀도 내 집에 가야 편하지 않겠냐"라며 "대피소에서 밥 잘 주고 소고기를 줘도 참으로 맛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돈 모으고 빚까지 내서 새로 지은 집인데 불이 꺼지고 다시 가보니 돌담같이 벽돌만 서 있더라"라고 허탈해했다.


이재민 박대경씨(82)도 "집이 다 타버려서 바람이 불면 흙밖에 날아가는 게 없다고 아들이 보지도 못하게 했다"면서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지붕이 종잇조각 비틀어놓은 듯 오그라들어 땅이랑 딱 붙었더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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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 없는 피난 생활에 이재민들은 일상으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재민 이수룡씨(90)는 "잠자리에 누우면 소리 없이 눈물이 슬슬 흐른다"면서 "여기 살라면 사는 거고, 마을에 가도 들판에 서 있을 판"이라고 막막함을 전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태구씨(85)도 "내 명을 모르지만 죽기 전에는 내 집에 들어가 편하게 자고 싶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이은서 수습기자 lib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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