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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피할 곳도 없었다"…마을 집어삼킨 괴물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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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기준 18명 산불로 사망
대피 과정에서 자택·차량 등서 숨져
안동으로 불 번지며 문화재도 '비상'
기후변화로 강원 외 대형 산불 늘어

"마을 전체가 다 타버렸다 카는데, 우리 집도 우째 됐는가 모르겠다."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 사는 60대 조모씨는 26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끼니 생각도 못 한 채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조씨는 산불이 마을 근처까지 접근했다는 소식에 전날 오후 영덕군으로 급히 몸을 피했다. 그는 "산불이 청송 전체를 덮어 근처에는 몸을 피할 곳도 없었다"고 했다. 청송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변에는 큰불이 지나갔지만 잔불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언제든 불이 다시 살아날 기세였다. 이번 산불로 청송군에서만 3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조씨는 더욱 가슴 아파했다.


"몸 피할 곳도 없었다"…마을 집어삼킨 괴물 산불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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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산불, 인명피해 급증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해 안동 등 4개 시군으로 확산한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이날 오전 5시 기준 14명으로 집계됐다. 경남 산청 산불을 진압하던 공무원·진화대원 4명이 숨진 데 이어 이번 대형 산불로 18명이 숨진 것이다. 그야말로 국가적 재난 상황이다. 산불이 완전히 진압되지 않아 사상자는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정확한 사망 경위는 조사 중이지만 대부분 급속도로 번지는 산불에 대피하는 과정에서 질식하는 등 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25일 의성 일대에는 초속 10~20m에 달하는 강풍이 불었다. 불이 번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재와 연기가 시야를 방해하면서 움직임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양군에서는 50~60대 일가족 3명이 차를 타고 대피하다가 전복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송군에서는 70대와 80대 노인 2명이 자택 등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영덕군 사망자 일부는 실버타운에서 살던 분들로, 3명이 차를 타고 대피하던 중 산불로 차량이 폭발해 사망했다고 한다.


1300년 사찰 전소, 하회마을 위협…문화재가 위험하다

화마는 문화재까지 위협하고 있다. 주요 문화재가 많이 있는 안동으로 불이 번지자 국가유산청은 사상 처음으로 국가유산 재난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하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은 간밤 ‘초긴장 상태’로 밤을 지새웠다. 25일 오후 한때 산불은 하회마을과 직선거리로 10㎞까지 근접했다. 마을에서도 멀리 붉은 빛이 보일 정도였다. 하회마을에는 소방차 10대, 소방대원 50여명이 대기하면서 산불 확산에 대비했다. 병산서원에도 소방차 4대가 대기하고 서원 주변에 미리 물을 뿌렸다. 병산서원 현판은 세계유교박물관으로 미리 이송했다. 지금은 하회마을 근처 산불이 더는 접근하지 않으며 한고비를 넘긴 상황이다.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천년고찰’ 의성 고운사는 전각에 불씨가 옮겨붙으면서 직접적인 피해를 보았다. 건축물인 가운루와 연수전은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이다. 이번 산불로 가운루와 연수전을 포함해 사찰 건물 30여채가 소실됐다.


장기화하는 산불…‘사람’이 지쳐간다
"몸 피할 곳도 없었다"…마을 집어삼킨 괴물 산불 연합뉴스

이날 오전 5시 기준 산불영향구역은 1만7534ha로 하루 사이 5000ha가량 늘었다. 축구장 2만4000여개에 달하는 너비가 산불로 직·간접적 피해를 본 셈이다. 진화율은 ▲산청·하동 80% ▲의성·안동 68% ▲울주 온양 92% 등이다. 주민 2만7079명이 대피했고, 산청과 의성에서만 건물 209채가 소실됐다.


국내 최장 산불로 기록된 2022년 3월 경북 울진, 강원 삼척 산불은 213시간이나 이어진 뒤에 비가 내리며 주불을 잡았다. 소방청이 국가 소방동원령을 발동해 전국의 소방 인력을 산불 진압에 투입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 진화까지는 먼 길이다.


소방대원들이 지쳐가고 있다. 25일 울주에서는 진화 작업 중 떨어진 나무로 소방대원 2명이 다쳤고, 40대 소방대원이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로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기도 했다. 의성·안동 산불에는 4919명, 산청·하동 산불에는 1948명의 소방 인력이 투입됐다. 고기동 중대본부장(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은 "현장에서 산불 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진화인력의 안전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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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산불’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기후변화의 영향이다. 그간 한국에서 대형 산불은 주로 강원 위주로 발생했다. 봄철에 강원도 양양과 간성 사이에서 부는 빠르고 건조한 바람(양간지풍)이 화재 규모를 키우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이제는 기후 변화로 시시각각 변하는 기온, 습도, 바람 등이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산불을 키우고 있는 환경이 됐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기후가 요동을 치고 국지적으로 건조한 기후가 이어지면서 과거와 비교해 대형 산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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