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식·조한창·김복형 등 탄핵심판 줄곧 기각
헌재는 한덕수 사건, 비상계엄 판단 없어
"尹 결론 유추 단서 숨겼을 것"…평의 더 길어질 수 있단 관측
헌법재판소는 24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을 기각하면서 핵심 소추 사유 중 하나였던 ‘비상계엄의 위헌·위법 여부’에 대해 실체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다. 결정문이 A4용지 40쪽에 달했지만 이 문제는 단 1쪽에 그쳤을 뿐이다. 한 총리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가늠자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전망’은 갈수록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 총리 탄핵 사건에서 기각의견을 낸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은 "한 총리가 비상계엄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하는 등 적극적 행위를 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이어 "국회의 소추 관련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나 객관적 자료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한 총리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행위를 돕지 않았다면서도, 비상계엄의 적법성 여부와 관련한 판단은 건너뛴 것이다. 윤 대통령 측이 탄핵 심판에서 줄곧 제기한 절차적 문제에 대한 판단도 없었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을 유추할 수 있는 어떠한 단서도 내비치지 않기 위해 신경 쓴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해 재판관들의 의견이 아직 모이지 않은 상황이며 평의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헌재가 윤석열 정부 공직자들에 대한 탄핵 심판을 9명째 기각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재판관들의 ‘차이’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로 인해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장기화하고 있으며 결론도 쉽게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초기 재판관들의 ‘성향’과 관련한 관심은 이른바 진보 재판관들에게 집중됐다. 법원 내 진보 그룹으로 분류되는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인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 재판관 등이다. 여권과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들을 집중 공격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장기화하면서 이번엔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 총리 사건에서 각하 의견을 낸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여권이 인선에 관여한 재판관들이다. 윤 대통령 사건 주심인 정 재판관은 윤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했고, 조한창 재판관은 국민의힘이 추천했다. 한 총리 사건에서 별개 의견으로 기각 판단을 내린 김복형 재판관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명한 재판관인데, "한 총리의 헌법재판관 미임명도 위헌, 위법하지 않다"고 했다.
정형식·조한창·김복형 재판관은 올해 들어 진행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주요 공직자 탄핵 심판에서 줄곧 기각 의견을 냈다. 모든 탄핵 사건에서 국회가 아닌 피청구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 역시 이들의 선택에 따라 갈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물론 한 총리 등 다른 공직자들과 윤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다른 만큼 확대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헌법연구관 출신 헌법학자는 "헌재가 한 총리 선고에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 등에 대해 결론을 내지 않은 것은 굳이 판단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한 총리 탄핵 기각 결정이 윤 대통령 탄핵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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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안 의결 102일째인 25일까지 선고기일을 공지하지 않고 있다. 대신 27일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 등 일반 사건 선고를 하겠다고 했다. 이제 선고가 4월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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