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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변호리포트] 지혜씨의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누명 탈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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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형사사건 피고인 10명 중 4명이 국선 변호사 도움을 받는다.

지혜씨는 영문도 모른 채 보이스피싱 범죄단의 일원으로 몰려, 2024년 5월 재판을 받게 됐다.

재판을 담당한 의정부지법은 국선전담 변호인인 이혜진·고소현 변호사에게 지혜씨 사건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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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스캠’에 당한 지혜씨
‘사귀자’는 남친에 속아 범죄 가담
“'속았다' 따라서 고의 아니다”
국선 변호인 전략 주효, 無罪

편집자주형사사건 피고인 10명 중 4명이 국선(國選) 변호사 도움을 받는다. 국선 변호는 주로 경제적 능력 등으로 인해 변호인을 선임하기 힘든 피의자·피고인의 헌법상 권리(변호인 조력권)를 보장하려고 만든 제도다. 그런 만큼 ‘국선 변호 스토리’에는 우리 사회의 환부와 사각지대가 많이 녹아 있는 것이다. 아시아경제의 두번째 리포트는 지혜씨(가명)와 이혜진 변호사의 사례다.
[국선변호리포트] 지혜씨의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누명 탈출記 지혜씨가 2024년 5월 28일 국민참여재판을 받던 날을 그린 모습. 지혜씨는 이날 이후로 항소심 무죄 선고를 받기까지 매일 밤 재판정의 모습이 꿈에 나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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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편하게 할까요.” 2022년 6월 17일. 모르는 남자가 김지혜(24·가명)씨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지혜씨가 보육원을 퇴소한 후 1년여가 지난 때였다. 만 2세때부터 고아원에서 생활해 교류하는 사람이 적었고, 지적장애가 있었던 지혜씨는 남자와 수시로 일상을 공유하고, 안부를 나누며 친해졌다. 남자는 ‘오늘부터 1일 하자’고 했고, 지혜씨는 메신저 속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사귀는 사이'가 됐다.


보름쯤 지났을까. 남자는 지혜씨에게 식료품 공장 일을 그만두고 자기 회사로 옮겨 돈을 수거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지혜씨는 ‘SNS 속 남자’를 돕기 위해 2022년 7~8월께 경기 김포·서울 마포·중랑·은평·동대문·도봉구 등 6곳에서 총 3억2000만원의 현금을 전달하는 일을 했다.


이게 문제였다. 사실 남자는 해외에 체류하는 보이스피싱 ‘총책’이었다. 지혜씨에게 현금을 전달한 사람들은 ‘수사에 협조해달라’, ‘대환대출을 받아라’는 전화에 속은 피해자들이었던 것이다. 지혜씨는 영문도 모른 채 보이스피싱 범죄단의 일원으로 몰려, 2024년 5월 재판을 받게 됐다. 재판을 담당한 의정부지법은 국선전담 변호인인 이혜진·고소현 변호사에게 지혜씨 사건을 맡겼다.


이혜진 변호사는 지혜씨 사건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의 조직도에 주목했다. 지혜씨가 지적장애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보다 보이스피싱이라는 거대 조직 범죄 안에서 지혜씨가 이용당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더 주안점을 뒀다. 보이스피싱 사건은 개입 정도가 적어도 재판부가 엄벌하는 경우가 많아 자칫 지혜씨가 억울하게 처벌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쪽으로 전략을 짰다. 국민참여 재판이 시작됐다.

[국선변호리포트] 지혜씨의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누명 탈출記 의정부지방법원 이혜진·고소현 국선전담변호사.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은 범행 전체를 총괄하는 ‘총책’, 조직원을 교육하는 ‘관리책’, 전화로 속이는 ‘유인책’, 돈을 받아오는 ‘현금수거책’ 등으로 구성된다. 모두 한 패가 돼 사기를 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총책이 구직자나 사회취약층 등을 속여 수거책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상당수다. 대포통장 단속으로 계좌이체보다는 대면 편취로 현금을 빼돌리는 경우가 많아져서다. 이 경우 수사선상에 노출되기 쉬운 현금수거책을 총책이 포섭해야 범죄 그림이 그려진다.


이 변호사는 “지혜씨도 총책에게 속은 사례로 여기에 로맨스 스캠(연애빙자사기)까지 더 해진 사건”이라고 했다. 그가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며 가장 자주보게 된 피고인 역시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사건이었다. 피고인 대부분이 단기 알바를 찾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되는 사회취약층이어서다. 이 변호사는 재판에서 두가지 쟁점을 파고들었다. ①지혜씨에게는 ‘미필적 고의’ 마저도 없었다. ②보이스피싱은 ‘피해자’ 뿐만 아니라 ‘수거책’ 또한 속여야 완성되는 범죄다. 즉 지혜씨는 속은 것이다.


재판에서 지혜씨의 행적은 주요 증거가 됐다. 지혜씨는 현금을 수거하러 가려던 날 자신 명의 교통카드로 지하철을 탔고, 본인 명의 휴대전화의 어플로 택시를 호출했다. 실명을 피해자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일당으로 20만원을 받았다. 매달 300만원을 받던 직장을 관둬 오히려 생활고에 시달렸다. 총책이었던 남자에게 ‘보이스피싱을 시키는 거면 바로 경찰서 갈거야’라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국선변호리포트] 지혜씨의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누명 탈출記 지혜씨가 최후진술에서 발언한 내용.

이 변호사는 이를 근거로 “범행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행적과 신분을 모두 노출한 것 등을 종합해볼 때 보이스피싱 인식 가능성이나 용인의사,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고 변론했다. 아울러 지혜씨가 매일 총책과 메신저 대화를 나누면서 그를 연인관계로 인식하고 심리적으로 지배당했다는 점, 지혜씨가 지적장애를 갖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지혜씨가 잘못된 선택으로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것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정점’인 총책을 송환하는 일에 과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느냐고도 따졌다. 이 변호사는 재판에서 “말단 전달책만 검거해 중형을 선고하고 검거율을 높이게 되면, 보이스피싱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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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혜씨 재판은 배심원 평결에서 무죄 5명, 유죄 2명으로 결론이 났다. 재판부도 이를 수용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항소로 지난해 9월 27일 열린 2심 역시 무죄였다. 이 변호사는 “국선변호사는 피고인에게 경제적 보상을 받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피고인과는 완벽하게 ‘직업적 소명’으로 이뤄진 관계가 된다”면서 “의지할 어른이 없었던 지혜씨가 범죄에 연루돼, 마음이 아팠다. 그가 일상을 회복하게 돼 보람이 컸다”고 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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