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판에서 수사기관이 수집한 증거가 위법하다는 이유로 잇따라 배제되고 있다. 특히 휴대전화가 핵심 증거로 떠오르면서 법원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위수증)에 대한 법리를 다시 한번 명확히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 명시된 위수증은 수사기관의 위법한 압수수색을 막는 핵심 원칙이다. 2007년 6월 형사소송법에 명문화된 이 원칙에 따라 법원은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압수수색을 제어해 왔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으로 전자정보 압수수색이 늘어나면서 더욱 엄격한 법리를 형성했다.
지난 8일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관련 혐의 부분에서 무죄 판단을 받은 것도 위수증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허경무 부장판사)는 알선수재 사건으로 수사받던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이정근씨의 휴대전화에서 나온 통화녹음에 대해 “알선수재 사건과 무관한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됐다”며 “실체적 진실 규명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의 위법한 압수수색을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증거능력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제출 ‘임의성’ 엄격 판단
재판부는 특히 구속 상태에서 이뤄진 ‘임의제출’의 진정성을 엄격히 따졌다. 이씨는 2022년 8월부터 10월까지 휴대전화 행방에 대해 거짓말을 반복하다 뒤늦게 제출했는데, 당시 심정에 대해 “구속 수사 중인 현실이 너무 무서워 검찰에 협조하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검찰의 수사 환경이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또 이씨는 2022년 10월 7일 오후 10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가 종료된 후까지도 휴대전화를 폐기했다는 기존 주장을 유지하다가, 약 30분 뒤 돌연 입장을 바꿨는데 그 경위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휴대전화 속 정보의 범위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제출했다고 봤다. 그는 일관되게 “자동녹음장치로 녹음된 파일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제출했다”고 증언했고, 실제로 추출된 전자정보의 양이 수십만건에 달해 이씨가 어디까지 제출하는지를 명확히 알면서 제출 범위에 관한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사는 반복해 임의제출 범위를 확인한 문답을 조서에 기재했다고 하지만, 추상적·포괄적으로 질문해 단답을 받은 데 불과해 이러한 문답만으로 압수수색영장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문제 된 통화녹음파일은 이씨도 돈봉투 공범으로 처벌받게 할 증거들인데 무엇을 제출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처벌받게 할 유죄의 증거까지도 전부 수사기관에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만한 자료가 없다”고 했다.
반면 선고 후 검찰은 “이씨는 수사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하에 휴대전화를 임의로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스스로 밝혔을 뿐만 아니라, 수사 및 법정에서 여러 차례 임의제출 의사, 범위를 명확하게 밝혀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일한 쟁점이 제기된 관련 사건 재판에서 휴대전화를 임의로 제출했다는 판단이 거듭 이뤄졌으며 일부 공범에 대해 휴대전화의 적법성을 전제로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 있었다”고 주장했다.
‘위수증’ 점차 중요 쟁점으로 부각
‘위수증’은 송영길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주요 사건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서 증거인멸 지시 혐의로 기소된 김태한 전 대표는 2024년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관련 서버에서 복제된 증거들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24년 4월, 수사기관이 휴대폰 압수수색 과정에서 사건과 무관한 정보를 대검 서버에 보관하고 영장 없이 별건 수사에 활용한 행위를 위법수집증거로 판단했다. 한 검찰수사서기관의 사건에서, 수사기관은 다른 사건 관련 휴대폰에서 발견한 녹음파일을 영장 없이 3개월간 탐색·복제·출력하며 증거로 활용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행위가 영장주의와 적법절차를 위반했다고 보고, 해당 증거와 이를 통해 수집된 2차적 증거 모두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국군기무사령부가 과거 압수수색 자료를 폐기하지 않고 보관하다가 이를 근거로 별건 내사를 시작한 사례에서 대법원은 2023년 6월 “수사기관은 압수 완료 후 혐의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는 삭제·폐기해야 한다”며 이를 위반해 수집한 증거는 법정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조에서는 법원이 ‘위수증’에 대한 법리를 재확인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만큼, 수사기관도 수사 방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노수환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핸드폰 압수수색에서 중요한 쟁점은 발견된 증거가 ‘우연히 발견된 증거’여야 한다는 점”이라며 “우연히 발견된 증거가 아니면 영장을 받았다 하더라도 위법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수사기관은 강화되는 법적 추세에 맞춰 수사 방식을 바꾸고, 적법 절차 준수를 위한 고민을 더욱 깊이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실체적 진실 규명이라는 명분 아래 절차적 정의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 적법절차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며, ‘위수증’ 원칙을 통해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수사를 제어하고 통제하는 것이 사법부의 역할인 만큼 수사기관도 앞으로 수사 방식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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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명 법률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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