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AI칩 수출통제 소식에 빅테크 반발
美 기술 지배력 악화 vs 中 우회로 차단
퇴임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을 더 강력히 통제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기술 업계가 일제히 반발에 나섰다. 현지에선 이번 규제가 중국과 사업적으로 얽혀있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와 대(對)중국 강경파의 갈등이 심화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이르면 10일 세계 각국을 3단계로 나눠 AI 칩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일본 등 소수의 우방국에는 자유로운 미국산 AI 칩 구매를 허용하지만, 중국·러시아 등 적대국으로 향하는 반도체 수출로는 차단하는 것이다. 나머지 대부분 국가는 반도체 구매량에 상한이 설정돼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보안 요건 등을 준수해야 해제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AI가 미래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국가 안보의 열쇠이므로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국가에만 AI 개발 역량을 몰아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우방이 아닌 동남아시아나 중동 국가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경우 중국이 이들 국가 데이터센터를 통해 AI 기술을 확보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잃을 경우 매출에 직격탄을 맞고 다른 나라에 기술 지배력을 뺏기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미국산 반도체 수입길이 막힌 나라들은 중국으로부터 AI 반도체 등 관련 기술을 들여오려 할 것이며 이는 결국 중국 AI 산업이 성장해 미국을 따라잡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켄 글릭 오라클 부회장은 블로그에서 "미국 기술 업계를 타격한 역대 가장 파괴적인 규제로 기록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엔비디아는 "마지막까지 수출을 옥죄는 대부분의 규칙은 남용의 위험을 줄이지 못한다"며 "경제 성장과 미국의 리더십을 위협하는 정책의 큰 전환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밖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대기업을 대변하는 정보기술산업위원회(ITIC) 역시 바이든 행정부가 기업과 협의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기술 업계는 퇴임을 목전에 둔 바이든 대통령이 이토록 경제적 여파가 큰 규제를 결정해도 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며 오는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으나 규제가 철회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당선인의 '퍼스트 버디'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중국을 최대 고객으로 두고 있고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중동 국가와 사업적 이해관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내각의 외교·안보 라인을 장악한 대중국 강경파들이 제동을 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WSJ는 "바이든의 AI 칩 규제로 빅테크와 대중국 매파들의 보기 드문 싸움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며 "이 같은 충돌이 바이든 임기 막바지에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이지만, 민주당의 대통령과 공화당이 함께 실리콘밸리에 맞서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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