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 한국국제통상학회장(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신년인터뷰
"韓 다자적 통상체계, 트럼프 1기 때보다 중요해"
"트럼프, 바이든보다 훨씬 일방적…대미 통상에만 기대는 건 위험"
"CPTPP 가입 시 韓 리딩 국가로 활약할 것"
오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식 출범을 앞두고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선거 구호로 내세우던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모든 수입국에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세계 각국은 트럼프와의 접촉을 시도하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분투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트럼프의 통상 정책에 달려 있다. 지난해 1~11월 누적 경상수지는 835억4000만달러 흑자로 역대 3위를 기록해 한국은행의 연간 전망치인 900억달러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경상수지는 반도체 등 IT 품목을 중심으로 좋은 성과를 나타냈지만 올해는 불투명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수출 증가율은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로 무역 장벽이 강화되면 지난해와 같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시아경제는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국제통상 분야 전문가인 박지형 한국국제통상학회장(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을 만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우리나라의 대응 방안에 대해 물었다. 박 교수는 “트럼프 1기 때보다 한국이 다자적인 통상 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통상정책에 있어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중요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식 보편관세의 도입이 사실상 미국의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탈퇴를 의미하고, 미국이 없는 WTO 체제는 곧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결성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회원국은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영국 총 12개국이다. 앞서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결정했고 미국을 제외한 일본, 캐나다, 호주 등 나머지 국가가 모여 CPTPP를 결성했다.
박 교수는 대미 통상 정책 외에도 한국이 기댈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글로벌 가치사슬 하에서 맞는 위치를 찾아 기여도 하고 도움도 받으며 경제발전을 이뤄야 하는 국가”라며 “트럼프는 새로운 가치사슬의 안정성을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는 미국 중심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대미 통상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관세 인상을 하지 않는 대신 대미 투자를 공격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미국에 투자가 몰리면서 국내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하지만 CPTPP 가입국들은 미국만큼 흡입력이 큰 국가들이 아니기 때문에 분업 체제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CPTPP 가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CPTPP가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안 좋았지만 지금은 관계가 상당히 많이 호전됐다”며 “우리의 의사만 확고하다면 환경이 달라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당히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이슈”라고 말했다.
그는 리더십 공백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과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통상정책에 있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일인 건 사실”이라며 “지금의 상황에서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해 정부 입장에서 어떤 부분들이 고려되어야 하고, 어떠한 이해 조정이 필요한지 전략과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리더십 공백은 우리나라에 여러 비용을 만들고 있다”며 “빨리 해결하고 리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헌법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 여소야대 국면일 때 대통령제하에서 갈등을 풀어나가기 어려운 구조가 있다는 점 등을 논의할 수 있는 보완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스템이 안정화된다면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오는 20일 출범한다. 트럼프 1기 때와 어떻게 다른가.
▲트럼프 1기 때도 대중국 관세를 크게 올렸고, 미국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모든 것을 양자 협상을 통해 해결했다. 트럼프 2기도 비슷한 맥락이지만 이보다 훨씬 더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차지하는 레드스윕(red sweep)이 발생해 트럼프가 공격적으로 정책을 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식 보편관세, 상호관세가 실제로 도입될 가능성도 커졌다. 만약 도입된다면 이는 미국이 WTO 체제에서 탈퇴하는 것과 같다. 미국이 없는 WTO 체제는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 있어 다자적인 통상 체제의 중요성은 1기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중요해질 것이다. 만약 미국 의회가 관세 정책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논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협상력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위협이 될 수 있다.
-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업계는.
▲보편관세, 상호주의 관세는 대미수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한국이 적극적인 대미 통상 협상을 통해 한미 FTA를 재협상할 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태다. 그럴 경우 보편관세, 상호주의 관세 도입이 오히려 미국 시장에 대한 한국의 특혜를 강화할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통상 협정이 잘 이뤄질 거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이들 관세가 우리나라에도 적용된다면, 높은 관세로 인해 우리나라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다. 미국이 우리나라 수입품의 대체재를 쉽게 찾을 수 있는지에 따라 산업별로 영향이 달라지겠다. 반도체는 쉽게 대체재를 찾기 어려워 당장은 타격이 작을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 미국 내의 경쟁사, 일본 경쟁사와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다. 반도체도 안심하기는 힘들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반도체 또한 대체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수출 환경 자체가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가능한 한 이른 시일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고환율은 통상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나.
▲수출만 보면 플러스 요인도 있다. 원자재와 중간재 관련 업체는 환율 상승이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수익률을 악화시킬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고환율이 장기화됐을 때 수입 물가를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유지시킬 거라는 점이다. 이는 국내의 물가 불안을 가져올 것이다. 임금도 상승할 것이고 기업 활동도 위축될 수 있다. 수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환율 상승으로 단기적인 반사이익을 보는 기업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 향후 글로벌 가치사슬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내부에서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수출과 수입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가치사슬 하에서 맞는 위치를 찾으면서 기여도 하고 도움도 받으면서 경제발전을 이뤄야 하는 국가다. 하지만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이 재편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통상 정책에 있어 결이 다르다. 바이든은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국들을 중심으로 대중국 견제를 하려 하는 반면, 트럼프는 훨씬 일방주의적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높고 우방국이라 불리는 국가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정책을 펼칠 것이다. 새로운 가치사슬의 안정성을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는 미국 중심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대미 통상에만 기대고 있는 건 위험하다.
- 우리나라의 대응 방안은.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위한 노력을 한국 혼자 하기는 어렵다. CPTPP가 해법이 될 수 있다. CPTPP 가입국에는 선진국도 다수 포함돼 있고 개발도상국도 포함돼 있다. FTA 수준도 굉장히 높고 관세도 철폐하는 수준이다. CPTPP에는 국영 기업에 대해 높은 투명성을 요구하는 조항 등 높은 수준의 통상 협정 내용이 담겨 있다. CPTPP에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일본 등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협력해야 하는 국가들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한다면 리딩 역할을 할 수 있다. CPTPP는 앞으로 통상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이 될 수 있다. 전체적인 통상 체제 자체가 붕괴에 가까운 수준이기 때문에 대미 통상 협상 외에도 우리 스스로 안정성을 확보할 다른 루트가 필요하다.
▲미국은 관세 인상을 하지 않는 대신 대미 투자를 공격적으로 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우리나라가 미국에 너무 의존하게 될 수 있다. 미국에 투자가 몰리면 국내 경쟁력이 약화되고 (자본이) 미국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CPTPP 가입국들은 미국만큼 흡입력이 큰 국가들이 아니다. 서로 본인이 잘하는 부분에 집중하는 식으로 분업 체제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 산업의 핵심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 그간 CPTPP에 가입하지 않았던 이유는.
▲CPTPP는 문재인 정권 당시 출범했다. 당시 우리나라도 가입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CPTPP의 맹주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안 좋았던 점이 영향을 줬다. 일본과의 관계가 이번 정권 들어서는 상당히 많이 호전됐다. 일본은 한국이 CPTPP에 가입하려 한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임을 여러 루트를 통해 들었다. 우리의 의사만 확고하다면 환경이 많이 달라진 상황이다. 상당히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이슈다.
- 향후 리더십 공백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은.
▲CPTPP뿐만 아니라 대미 통상 협상도 트럼프의 성격상 굉장히 다양한 카드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미국이 원하는 걸 끌어내려 할 것이다. 한미 FTA나 방위비 관련 재협상 카드도 꺼낼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 지원법(칩스법) 등 공격적인 투자를 한 부분에 대해 보조금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진행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복잡다단하게 이익을 보는 주체와 손해를 보는 주체가 있을 것이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통상에 임해야 하기 때문에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일인 건 사실이다. 리더십이 없다면 이끌어나갈 주체가 없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에서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해 정부 입장에서 어떤 부분들이 고려되어야 하고, 어떠한 이해 조정이 필요한지 전략과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십 공백은 우리나라에 여러 비용을 만들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정치적 안정성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됐다. 빨리 해결하고 리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헌법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 여소야대 국면일 때 대통령제하에서 갈등을 풀어나가기 어려운 구조가 있다는 점 등 앞으로의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보완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스템이 안정화된다면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닮아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 가능성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인해 기존에 경쟁력이 있었던 분야들이 중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새로운 투자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능력을 많이 키워왔는가를 생각해보면 제한적이라 본다. 한국도 장기불황으로 갈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하지만 일본과는 분명히 다르다. 일본은 스마트폰이 탄생한 이후 한국이 공격적으로 도입했던 것과 달리 도입이 상당히 늦었다.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의 혁신 활동은 제자리걸음이었고 그러한 부분은 일본의 장기불황과 연결돼 있다. 한국은 그러한 맥락에서 전 세계적인 흐름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편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성과에서 극명하게 갈렸던 건 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 관련 흐름이 바뀔 거라 예상해 공격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진행했지만 삼성은 투자가 늦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15년 뒤 잠재성장률이 0%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향후 어떤 통상 정책이 필요할까.
▲한국은 혼자 무언가를 창출할 수 있는 규모의 나라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 하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에 특화하면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나라다. 통상정책에 있어서는 CPTPP가 가장 중요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 CPTPP 하에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 골고루 존재한다. 한국이 참여하면 CPTPP의 리딩 국가가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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