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특별법, 전력망법 등 결국 해 넘겨
개원 후 정쟁 속 해외 기업과 운명 엇갈려
22대 국회 개원 후 거대 양당의 힘 싸움으로 연금개혁과 반도체, 원전 등을 위한 첨단 산업지원법은 추진 동력을 잃었다. 여기에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도 겹쳐 여야가 민생을 논의할 공간은 더 좁아졌다.
국민의힘 핵심관계자는 31일 통화에서 "탄핵, 재의요구, 무안공항 참사 등으로 연금개혁은 수면 밑으로 들어갔다"며 신년에 논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22대 국회가 5월30일 개원한 이후로 여야는 연금개혁을 논의해왔지만,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이들이 가장 큰 이견을 보였던 건 연금개혁을 논의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국민의힘은 21대 국회 때처럼 연금개혁을 위한 국회 상설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자는 입장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차원에서 논의하길 원했다. 상임위원회에선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논의를 주도할 수 있고, 특위에선 여야가 동수를 유지할 수 있기에 국민의힘에 더 좋은 조건이었다. 여야는 결국 지난 6개월간 연금개혁을 어떻게 논의할지에 대한 방식을 두고 힘 싸움만 벌인 셈이 됐다.
여야가 탄핵, 입법 독주, 재의요구권으로 22대 국회를 물들인 사이 해를 넘기게 된 건 연금개혁뿐만 아니다. 여당이 주도했던 반도체특별법과 고준위방폐물특별법 그리고 이들 첨단산업에 필요한 전력을 지원하기 위한 국가기간전력망확충법 모두 처리되지 못했다.

반도체특별법은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두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여야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양당은 반도체특별법이 통과되지 못한 것을 두고 서로를 탓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연구직 고연봉자에겐 52시간 근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에 원론적으로 반대했고, 52시간제를 넘어설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해주고 있으니 사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이정문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반도체특별법은 산자위 내에서 시급한 것으로 공감대가 있지만, 국민의힘의 소극적 태도로 지지부진하다"며 "어느 때보다도 여야 협치가 중요하다. 국민의힘은 하루빨리 상임위와 법안 소위원회로 돌아와 당장 오늘이라도 민생 경제 법안 처리를 위해 전향적으로 논의에 나설 것 촉구한다"고 말했다.
여야가 내년에 반도체특별법에 합의한다면, 근로기준법상 존재하는 예외 조항을 더 간편하게 개선하거나 정부 시행령을 고치는 방안에 무게가 쏠린다.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사이 한국 반도체 기업과 해외 반도체 기업의 운명은 엇갈렸다. 22대 국회가 문을 연 지난 5월30일부터 12월27일까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주가는 주당 136.41달러에서 241.75달러로 약 77% 올랐다. 같은 기간 엔비디아는 약 24% 상승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주당 7만3500원에서 5만3700원으로 약 27% 하락했으며 SK하이닉스 역시 19만5700원에서 17만4500원으로 약 11% 떨어졌다.
여야가 민생을 아예 내팽개친 건 아니다. 양당 정책위의장을 중심으로 '민생공통공약' 추진 협의회를 만들어 이견이 없는 법안은 정쟁 중에도 통과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AI기본법 통과 등 경제 법안 성과도 있었다. 늦었지만 신년엔 연금개혁과 첨단산업 지원법에도 여야가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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