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은 데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김모 씨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소송에서 전날 원심의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파기하고 이같이 판결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 일부를 파기·자판하고 "장애인인 원고들에게 각 1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파기·자판은 원심 판결을 깨면서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대법원이 직접 판결하는 것이다.
원고들은 바닥면적 합계가 300㎡ 이상인 소규모 소매점에 대해서만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한 구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이 시행일로부터 24년 넘게 개정되지 않으면서 접근권이 침해됐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대부분의 소규모 소매점에 대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면제하고 있는데, 쟁점 규정이 1998년 4월 시행된 후 24년 넘게 개정하지 않은 '행정입법 부작위'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장애인의 접근권을 유명무실하게 해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국가배상법이 정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피고(정부)의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일상적으로 부정당한 장애인의 고통이 지속됐고, 그 고통을 위자하는 것은 국가에 대해 적시의 적절한 행정입법 의무의 이행과 적극적인 장애인 보호정책의 시행을 촉구하는 수단으로서 의의가 있다"며 "피고는 장애인인 원고들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위자료는 원고들에게 인당 각 10만원으로 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장애인이 아닌 유아차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시민이 낸 청구는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장애인 접근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또한 정부의 입법부작위에 대한 배상 책임을 대법원이 전향적으로 인정한 것이어서 향후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관련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령상 의무·권장 시설 등을 설치하지 않은 시설 운영자를 대상으로 개선 요구와 함께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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