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
긴급 담화에 여권 당혹…혼란 수습 분주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며 자진 사퇴 의사가 없음을 확고히 밝히면서 정치권 후폭풍이 거세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이후 "대통령이 더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이 더욱더 명확해졌다"며 탄핵 찬성으로 선회했음을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친윤(친윤석열) 핵심' 권선동 의원이 선출되면서 여권의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이날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기자단에 사전 예고 없이 긴급하게 이뤄졌다. 지난 7일 대통령실에서 담화를 발표한 후 한남동 관저에 머물며 칩거했던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16분께 경호 차량을 대동하고 한남동 관저를 출발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도착했다. 이후 36분 후인 8시57분께 청사에서 나와 관저로 복귀했다.
尹,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해 담화 사전 녹화
이날 윤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닷새 만에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한 것은 곧 있을 대국민 담화를 사전 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붉은색 넥타이 차림에 비장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선 윤 대통령은 작심한 듯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담화를 읽어 내려갔다.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약 29분 7000여자 분량의 긴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계엄이 '대통령 고유의 통치 행위'라는 점을 강조했으며, 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윤 대통령은 "국정 마비의 망국적 비상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대통령의 법적 권한으로 행사한 비상계엄 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고, 오로지 국회의 해제 요구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계엄 선포는 '거대 야당 때문'으로 불가피했다는 점을 연신 강조하며, 야당의 의회 독재와 폭거로 국정이 마비된 상황을 '사회 교란으로 인한 행정 사법의 국가 기능 붕괴 상태'로 판단해 대통령으로서 통치 행위로 계엄령을 발동했다고 밝혔다. 계엄의 당위성을 지속적으로 피력하는 윤 대통령의 담화는 조만간 들이닥칠 탄핵 심판과 수사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선 담화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계엄선포의 구체적인 이유도 추가됐다. "제가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다"고 운을 뗀 윤 대통령은 "작년 하반기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헌법기관들과 정부 기관에 대해 북한의 해킹 공격이 있어 국가정보원이 이를 발견하고 정보 유출과 전산시스템 안전성을 점검하고자 했으나 선관위는 헌법기관임을 내세우며 완강히 거부했다"고 밝혔다.
선관위 겨냥 尹 "전산시스템 엉터리, 보안 허술"
이어 "(선관위는)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방화벽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면서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저는 당시 대통령으로서 국정원의 보고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면서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도 문제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개선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며 이런 사유로 이번 비상계엄 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 점검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주요 이유가 부정선거 의혹 규명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았는데 이날 담화에서 윤 대통령이 계엄의 이유로 선관위 시스템의 허술함을 직접 거론하면서 세간의 관측은 단순 의혹이 아니었음을 자인하는 형국이 됐다.
야당을 향한 비판의 수위도 더욱 높였다. 윤 대통령은 "지금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며 "야당이 탄핵 남발로 국정을 마비시켜 온 것"이라고 거침없이 비판했다. 야당의 탄핵 추진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비위를 덮기 위한 방탄 탄핵이고 공직기강과 법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된 것"이라며 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담화 말미에서도 항변을 이어갔다. "이번 계엄으로 놀라고 불안하셨을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짧게 사과한 윤 대통령은 재차 계엄의 불가피함을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 뜨거운 충정을 믿어달라"며 담화를 마쳤다. 비상계엄의 당위성을 연신 강조한 윤 대통령의 이날 담화는 사실상 자진 하야 가능성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향후 있을 탄핵 심판과 수사에 법률적으로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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