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선포 여파로 내각 사의 표명
정부 리더십 부재 우려 확산
'민관원팀' 강조해온 산업 영향 촉각
계엄령 선포 여파가 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로 전망되는 가운데,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압박까지 더한 상황에서 국내 정세마저 불확실성을 한층 키웠다. 특히 대통령 탄핵소추 추진과 정부 국무위원 전원 사의 표명으로 당분간 행정 리더십 공백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혼란 속에서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 업무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복지부동’이 확산할까 정부의 지원만 바라보던 기업들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5일 산업계는 정부의 정책 공백이 산업 지원 대책을 지연시키거나 무산시킬 가능성을 우려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경제부처 수장들의 사의 표명으로 경제 현안 추진 동력이 상실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지금 혼란이 커서 정부와 면밀히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내각이 정상화되는 구체적인 시기를 알 수 없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요구하던 반도체를 비롯해 석유화학, 철강, 이차전지 등 업계는 당장 경영 계획을 전면 재수정해야 할 판이다. 그동안 정부와 ‘민관 원팀’을 강조해온 만큼 충격이 크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반도체 장비 업계 간담회 등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통상 협상력을 키워야 하는 기업들은 대미 협상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특히 구조조정 지원책에 대한 기대가 컸던 석유화학 업계는 계획 발표가 지연되면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초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석유화학 업계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핵심 내용인 저리(低利) 정책금융 지원, 세제 혜택 등이 기재부 소관 사항인데 국무위원 사퇴 표명으로 예정대로 진행될지 예측이 불가능해졌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늦어도 내년 1~2월에는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번 사태로 이마저도 불투명해졌다"며 "아예 대책이 백지화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든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문제는 기업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와도 관련돼 있다"며 "석유화학 비율이 높은 산단 지역 경제를 위해서도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철강업계 역시 중국산 저가 후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영향이 없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제철은 중국산 제품으로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잃자 단독으로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신청한 상황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조업 등 사업장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반덤핑 조사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은 대외 리스크를 더욱 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 등 수입품에 대한 강력한 관세 부과 가능성이 예고되면서 수출기업들에도 악재가 드리울 전망이다. 적절한 통상 전략을 찾기 위한 정책 대응이 시급한 상황에서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해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 수립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대통령 탄핵 소추 절차에 들어서게 되면 최소 3개월간 리더십 공백이 불가피하다"며 "특히 통상 문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지금 상황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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