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정치 권력 1, 2위 가문 극한 갈등
부통령, 암살 위협 주장하며 대통령 언급
"국가 안보 문제"…필리핀 정부 총력 대응
여권 내 권력 다툼이 극에 달하고 있는 필리핀에서 부통령이 유사시 대통령 등을 암살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혀 논란이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은 "필리핀 서열 2위인 세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이날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나를 향한 암살 위협이 있다'며 '내가 피살되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을 암살하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두테르테 부통령은 "내 경호 팀원 한 명에게 내가 살해당하면 BBM(마르코스 대통령 이니셜), 리자 아라네타(영부인), 마틴 로무알데스(하원의장)를 죽이라고 지시했다"며 "(이는) 농담이 아니다. 그들을 죽일 때까지 멈추지 말라고 했고, 경호원은 '알았다'고 답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통령의 위협 발언에 대해 대통령궁은 즉각 마르코스 대통령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고 이를 국가 안보 문제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궁은 "대통령의 생명에 대한 모든 위협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이번 위협이 명확하고 확실하게 공개됐기에 더욱 그렇다"고 전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격인 루커스 버사민 행정장관은 "두테르테 부통령의 발언은 적극적인 위협"이라며 대통령 경호실에 "즉각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지시했다. 라멀 마르빌 경찰청장도 "대통령 생명에 대한 직·간접적 위협은 가장 긴급하게 해결해야 한다"면서 수사를 지시했다.
논란의 발언을 한 부통령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로, 현재 여권과 갈등을 빚고 있다. 마르코스 현 대통령의 사촌이기도 한 로무알데스 의장 등 여당 의원들의 주도로 부통령실 예산이 3분의 2가량 삭감됐고, 하원은 부통령의 예산 유용 의혹을 조사 중이다. 또한, 부통령 수석보좌관인 줄레이카 로페스는 조사 방해 혐의로 구금이 결정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마르코스 대통령과 두테르테 부통령의 가문은 정치 동맹을 맺었으나, 최근 정치적 대립이 격화하면서 동맹이 붕괴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큰 이유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남중국해 문제에서 중국과 대립하며 친미 노선을 택했는데, 이는 친중 성향인 두테르테 전 대통령과 정반대 노선이기 때문이다.
또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오는 2025년 중간선거에서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남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 시장 출마를 통해 정계 복귀를 노리고 있는데, 민다나오섬을 필리핀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마르코스 정부가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를 명목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6년 단임제인 대통령의 임기를 늘려 장기 집권하려는 시도로 보고 견제에 나선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부통령이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자 이번 발언까지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김성욱 기자 abc1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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