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법적 정부지원금 12조원 중 33%만 교부
2028년 건보재정 적자 전환…건보료 폭탄 불가피
정부가 올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주지 않은 법정 국고지원금이 8조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정갈등과 의료공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건강보험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국고지원금 교부 의무는 이행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들어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으로 총 5회에 걸쳐 4조500억원을 교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정부가 공단에 지급해야 하는 2024년 건강보험 법정지원금 총 12조1658억원 가운데 11월 현재까지 지급한 금액은 전체의 33%에 불과해 미지급된 금액은 무려 8조1158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연말까지 미지급액을 모두 교부한다는 계획이지만, 정부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황이라 지원금 전액이 지급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에 의거, 공단이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2007년부터 해당연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하게 돼 있다. 14%는 일반회계(국고)에서, 6%는 담뱃세(담배부담금)로 조성한 건강증진기금에서 마련한다. 이에 따라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건강보험료 수입의 20%에 해당하는 135조9567억원을 지원해야 했지만, 실제 지원 금액은 115조8674억원에 그쳤다. 17년간 미지급된 법정지원금은 총 20조원을 넘어선다.
건강보험공단 노조는 "정부가 올해도 제대로 국고지원을 교부하지 않고 있고, 내년도 예산안엔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을 법정지원금 비율 14%인 12조2590억원을 지원하는 게 아닌 12.1% 수준인 10조6211억원만 편성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현재도 건강보험 재정 수입에서 국고지원금을 제외할 경우 매년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발간된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3~2032년 건강보험 재정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28년부터 그간 쌓아둔 건강보험 누적준비금이 소진되기 시작해 2032년엔 누적적자액이 61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의 건강보험 국고지원이 줄어들면 결국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를 늘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2025년 건강보험료율을 올해와 같은 7.09%로 동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속되는 고물가·고금리 등 국민경제 상황과 안정적으로 운영 중인 건강보험 재정 여건을 반영해 처음으로 2년 연속 동결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지만, 의료계에선 건강보험료율을 2년간 인상하지 못한 터라 2026년 인상 폭은 그만큼 더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을 의료대란 사태 수습에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비상진료체계 운영 및 경영이 어려운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한 선지급금 투입분 등 지난 2~9월 건강보험 재정 누적 투입분만 2조원을 넘어섰고, 현재 진행 중인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 등에 따라 투입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2025년도 예산안 12대 분야별 재원 배분 분석' 보고서를 통해 "의료공백 사태 해결을 위해 과도한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할 경우 국민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며 건강보험 대신 국가 재정 투입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정부가 의료공백 사태 대응 및 의료개혁 과제 추진 시 건강보험 재정을 과도하게 투입하기보다는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을 거친 후 국가 재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의료공백 대응 및 의료개혁 추진에 지금까지 투입됐거나 투입 예정인 건강보험 재정에 대해 정부 및 유관기관 차원의 보전 방안, 건강보험 지출 증가를 통제할 적절한 방안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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