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부품 많게는 10배 저렴
아파트 등 민간 현장, 최저가 제품 요구
품질 떨어지는 부품에 잦은 고장
"승강기 전수조사로 사고 예방해야"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송파구 문정동 아파트 단지. 입주민, 택배 기사 등이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안점 점검중' 팻말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이날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엘리베이터 점검일이었다. 2명의 점검 기사가 엘리베이터를 세우고 전자 장비를 활용해 엘리베이터의 전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고, 문틈 등을 육안으로 살폈다. 엘리베이터를 움직이게 하는 도르래를 점검할 땐 아찔한 모습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반쯤 아래층으로 내린 뒤, 상부로 올라서 각종 부품을 점검했는데, 발을 헛디디면 추락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기사들은 이날 이와 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전력 장치인 '인버터'도 손봤다. 교체가 잦은 부품이다. 그런데 인버터는 중국 제품이 많게는 10분의 1 가격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현장에서 점검 작업을 진행하던 강지석 한성엘리베이터 과장은 "가격 차이가 크다 보니 아파트 관리업체 같은 민간 사용자는 최저가 제품으로 수리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 준비한 부품보다 더 저렴한 부품을 새로 배송받기 위해 기다리다 보니 곧바로 수리가 되지 않고 며칠씩 걸리게 된다"며 "제대로 된 부품으로 수리가 되지 않다 보니 고장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승강기 유지관리에 대한 정부 표준 금액이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제로 표준 금액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에서 관리해달라고 요구해도 업체 입장에선 거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포털 검색만 해도 쏟아지는 중국산 저가 부품
승강기 유지관리는 매월 자체 점검을 하면서 장치나 부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고장 발생 시에는 즉시 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부품 교체가 필요한 경우에도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바로 교체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보통 단순관리계약을 맺은 경우 부품 교체 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데, 정품 사용 외에도 다른 저렴한 선택지가 많은 것이다. 발품 팔지 않고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만 해도 중국산 승강기 부품을 가격까지 비교해가며 구매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승강기 유지관리 시장은 싸구려 중국산이 점령하게 됐다.
12일 '승강기 부품'을 검색해보니 수천가지의 부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중국에 기반을 둔 제조사가 국내 유통업자를 통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경우 가격은 싸지만 부품에 하자가 있을 경우 보상을 받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국내 대형 엘리베이터 제조사의 부품 중 엘리베이터의 핵심 활동을 제어하는 전자 회로기판을 검색하자 150만원대와 100만원 초반대 두 개가 보였다. 둘 다 중국에서 배송되는 것이다. 같은 중국산이지만 50만원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났다. 이 부품을 정품으로 구매할 경우 200만원 이상이다. 중국산 중에서도 더 저렴한 것을 선택하면 정품 대비 절반 이상 싼 셈이다. 한국승강기관리산업협동조합을 비롯한 유지관리 업계는 많은 중소기업이 최소한의 수익이라도 남기기 위해 이렇게 중국 제품 중에서도 싼 제품을 들여오는 선택을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부품의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 잦은 오류를 일으키고, 고장나면 기계적인 결함이 없더라도 엘리베이터가 오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20년전 승강기 유지관리 현장 직원으로 시작해 2015년부터 유지관리전문 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경택 한성엘리베이터 대표는 "품질 보증이 되지 않은 부품이 온라인에서 아무렇지 않게 팔리고 있다"며 "어떤 제조 과정을 거쳤고, 내구성이 어느 정도인지, 현장에서 실제로 승강기와 제대로 된 호환이 되는지 알 수 없는 제품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어 "중국산 제품이라고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품질 보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안전 문제가 가장 우려된다"면서 "품질 보증이 없는 저렴한 제품은 내구성이 떨어지는 것을 현장에서는 확연히 체감할 수 있다"고 했다.
에스컬레이터 부품은 90% 중국에 의존
에스컬레이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에스컬레이터 부품은 90% 이상이 중국산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 초반 중국에 공장을 둔 오티스와 테센크루이프 등 글로벌 기업은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국내 시장을 장악했다. 2014년 현대엘리베이터도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국내에 에스컬레이터 부품 제조사는 한 곳도 남지 않게 됐다.
이는 에스컬레이터를 움직이려면 전적으로 중국산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를 낳았다. 코로나19로 중국이 봉쇄되자 부품을 들여오지 못해 국내 전철역과 백화점 등의 에스컬레이터는 수개월간 멈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다 보니 부품 수급에 시간이 걸리고 품질이 떨어져도 어쩔 수 없는 지경이 됐다. 2022년부터 국내 에스컬레이터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대륜엘리스의 이기랑 대표는 "국내 부품생산 공장이 없어진 지난 20여년간 사실상 중국의 횡포에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시간과 비용의 낭비가 심각해졌다"고 설명했다.
저가 부품은 사고의 원인이 된다. 목포해상케이블카 승강장 에스컬레이터 사고가 대표적이다. 2019년 10월 26일 북항 승강장으로 이동하던 에스컬레이터가 발판과 손잡이 속도가 달라지면서 승객들이 무더기로 넘어져 다친 사건이다. 구동기에 붙은 스프링 불량으로 늘어진 체인을 팽팽하게 잡아당기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업계 전문가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현행 승강기 안전관리법은 월 1회 자체 점검을 하도록 하면서 정기안전검사 주기는 2년으로 정했다. 정밀안전검사는 설치검사를 받은 날부터 15년이 지난 뒤에야 이뤄진다. 이선순 한국승강기관리산업협동조합 전무는 "현재 규정에 따른 관리 주기로는 안전 보장이 어렵다"며 "특별점검제도를 도입해 10년 된 승강기는 전수조사를 통해 마모된 부품 등을 교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지난 코로나19 사태 때 부품 부족으로 중국에서 다급하게 들여와 설치한 승강기, 중국 미인증 업체로부터 부품을 들여와 설치한 승강기의 경우 전수조사를 통해 미리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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