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부커상 수상 애나 번스 첫 방한
제8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본상 수상
"한국·북아일랜드 아픔 공유하고 있어"
"한국에 오면서 한강 작가의 책을 가져왔다. 한강 작가의 책을 두 권 읽었고 세 권째 읽고 있다. 매우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한강 작가를 만나고 싶다."
2018년 영국 부커상 수상작인 '밀크맨'의 작가 애나 번스가 한국을 찾았다. 7일 오전 10시 서울 은평구 이호철북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개관식과 제8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번스는 올해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본상의 주인공이다.
번스는 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아시아 방문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의 첫 인상에 대해 "가장 특이한 점은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운전도 굉장히 점잖게 한다는 것"이라며 "북아일랜드나 런던에서는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가 심하다"고 했다.
번스는 1962년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북아일랜드는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1921년 친영 개신교도를 중심으로 분리된 지역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98년 굿프라이데이 협정(벨파스트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약 30년간 35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면서 친영국 진영(개신교)과 친아일랜드 진영(가톨릭)이 격렬하게 충돌한 이른바 '트러블(Troblues)'로 큰 아픔을 겪은 지역이다.
번스는 "북아일랜드와 한국이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이 너무 감격스럽다"고 했다.
번스는 어린 시절 자신의 경험을 녹여 '노 본스', '밀크맨' 등을 썼고 2018년 '밀크맨'으로 부커상을 받았다.
"밀크맨은 독서와 달리기를 좋아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하지만 소녀가 살았던 1970년대는 트러블이 이어지던 시대로 소녀의 동네에서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적과 적이 극단적으로 대치해 있다. 소녀는 감시당하고 스토킹을 당하는 두려움 속에서 숨으려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번스는 소설 속 소녀가 처한 상황과 자신의 성장기 환경이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의 성장기에는 폭력이나 위협이 늘상 있는 일이었다"며 "어렸을 때에는 너무나 폭력적인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 평화라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북아일랜드는 좁은 지역인데 검문소와 차단기, 무장세력이 정말 많았다. 미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잔혹한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그 검문소를 지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물이 있는 곳을 통과하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들이 너무 끔찍했다. 한국에서는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지는 못 하지만 분단이라는 자체가 한국이나 북아일랜드 모두에 너무나 끔찍하고 슬픈 일인 것 같다."
한국 사회의 굴곡진 역사를 다룬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을 게다. 한강 작가도 '채식주의자'로 2016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정서적 친밀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번스는 한강의 소설 중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읽었고 현재 '흰'을 읽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잔혹함과 증오 이런 것이 매우 사실적이고 현실적이고 묘사가 잘 돼 있다"며 아주 훌륭한 작가라고 평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분단 문학의 거장 이호철 작가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작가가 바라던 미래 통일과 평화의 시대를 함께 그리기 위해 2017년 은평구에서 제정한 상이다. 이호철 작가는 은평구에서 50여 년간 집필 활동을 했던 인연이 있다. 시상 부분은 본상과 특별상으로 나뉜다. 본상은 언어와 국적에 관계없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 갈등, 폭력 등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온 현재 활동 중인 생존 작가를 대상으로 시상하고 특별상은 국내 작가를 대상으로 선정한다. 본상과 특별상 수상자는 상패와 함께 각각 5000만원, 2000만원의 상금을 받는다. 올해 특별상 수상작은 김멜라 작가가 지난해 발표한 첫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가 선정됐다.
'없는 층의 하이쎈스'는 남산 빌리지 안에서 사는 '사귀자'라는 할머니와 '아세로라'라는 손녀가 같이 사는 이야기다. 사귀자 할머니는 군사독재 시절 간첩으로 몰렸던 경험 탓에 숨어 사는 인물이다.
김멜라 작가는 역사적으로 남산에서 이뤄진 국가 폭력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저에게 남산이라 하면 남산 타워나 남산 도서관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남산 아래 국가 정보기관이 있었고 그 안에서 많은 국가 폭력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책이나 자료를 통해서 알게 됐다. 소설을 쓰고 자료 조사를 하고, 국가폭력 희생자분들을 인터뷰 하면서 (국가 폭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지만 구체적인 얘기를 바로 쓸 수는 없었다. 고문이나 폭력을 묘사하거나 서술하기에는 경험 뿐 아니라 제 스스로가 그걸 조금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처럼 그 주변을 배회하는 것조차 너무나 공포스러워서 삶이 바뀌어버리는 인물로 사귀자 할머니를 표현했다."
그는 "이호철 작가님과 에나번스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면서 아주 뜻깊은 체험을 했고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역사를 끌어안아서 그것을 서사로 풀어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심 어린 마음으로 생각하게 됐다"며 "그런 독서의 경험도 이번 수상의 큰 의미"라고 덧붙였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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