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세계적 인기에도 국내 공연장 인프라 부족
대관 못 한 스타들 공연 포기 줄이어
잠실주경기장, 2026년까지 공사
상암경기장, 잔디 훼손 탓 대관 거부
4세대 걸그룹 뉴진스와 아이브가 최근 나란히 일본 도쿄돔에서 매진 기록을 세우며 뜨거운 K팝 열기를 입증했다. 아이브는 지난 4일과 5일 양일간 도쿄돔에서 첫 월드 투어 ’쇼 왓 아이 해브‘ 앙코르 콘을 개최, 총 9만5800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뉴진스 또한 앞서 6월 26~27일 이틀 동안 일본 첫 팬미팅 ‘버니즈 캠프 2024 도쿄돔’을 개최, 총 9만12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K팝 대표 그룹의 팬미팅과 콘서트가 왜 서울이 아닌 도쿄에서 시작하고 또 끝맺고 있을까. 그 배경에는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공연장의 부재가 지목된다. 전 세계가 K팝을 주목하고, 시장 규모와 수요 모두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대한민국은 대형 공연장 부재로 그 성과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간 후 대중음악계는 공연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공사는 2026년 12월 완료된다. 지난 2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일본 도쿄 콘서트 사진과 함께 “잘 섭외해서 ‘헬로 서울’이란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여기에 와서 헬로 도쿄라는 말을 듣는다”는 글을 올렸다. 정 부회장은 “각국 정부까지 관심을 보인 섭외 각축전에서 우리는 대형 공연장이 없어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공연장 부재로 서울이 아닌 도쿄로 향한 스위프트의 네 차례의 도쿄돔 콘서트에는 22만명의 관객이 운집했다. 당시 재팬타임스 등 현지 언론 보도에는 스위프트의 4회 공연으로 도쿄에서만 창출한 경제 효과는 약 3018억원에 달했다. 한 엔터 업계 관계자는 “외국 가수의 내한공연이 아니어도, K팝 종주국인 한국은 BTS, 블랙핑크, 세븐틴 등 다수의 스타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통한 대형 공연과 인바운드 관광을 활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현 시점 대형 공연장의 부재는 너무도 뼈아픈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이를 상쇄하기 위해 좁은 공연장을 나눠서 대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거나, 해외 투어를 강행하는 사이 공연 외 실제적 수익은 해당 투어 국가에서 누리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에서 1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은 케이스포돔(KSPO돔·옛 체조경기장, 1만5000석)이 유일하다. 6만6000석 규모의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있긴 하지만, 프로축구 시즌에는 경기장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공연장 설치 시 잔디 훼손 논란이 늘 뒤따른다. 지난해 8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정부 주도의 K팝 콘서트 개최로 축구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공연장 부족 문제가 계속되자 서울시는 잔디 훼손 최소화를 조건으로 내걸고 공연 대관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에 막대한 팬덤을 보유한 세븐틴과 임영웅이 지난 4월과 5월 콘서트를 개최해 화제가 됐다. 고척스카이돔(2만5000석)은 야구 시즌(4~10월) 중엔 대관을 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 개장한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1만5000석)에서 다양한 공연이 이어지고 있으나 대형 가수 공연은 여전히 대안이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최근 데뷔 15주년 콘서트 소식을 알리며 재결합을 선언한 2NE1은 오는 10월 4~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공연을 개최한다. 스탠딩 포함 약 3000석인 공연장 규모에 팬들의 추가 공연 요청이 쇄도했고, 당초 5~6일로 예정된 공연은 4일이 추가되고 시야제한석까지 오픈되는 등 인기리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만명 단위 관객이 들어갈 장소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YG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공연장 예약은 수개월 전에 마치는데, 올림픽홀보다 더 큰 공연장은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K팝 기획사들은 1만석 미만의 잠실 실내체육관, SK올림픽 핸드볼경기장, 장충체육관 등에서 금·토·일 3회 공연 또는 하루 2회 공연 진행 방식으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 해결 없이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대관 경쟁이 심화되고 결국 대관 비용만 치솟아 공연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가 국회에서 주최한 ‘대중음악공연산업의 위기, 문제와 해결 방법은 없는가’ 세미나에 참석한 이상헌 당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K팝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이를 즐길 수 있는 국내 공연 인프라는 미흡한 실정이다. K팝의 세계적인 위상에 맞지 않게 국내엔 대중음악 전용 대형 공연장이 없다”고 말했다. “외국 아티스트들이 월드투어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이른바 ‘서울 패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국제 시상식 등 대중음악 관련 행사를 국내에 유치하기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도 류호정 당시 정의당 의원은 “2019년 방탄소년단이 공연 티켓 133만장을 넘게 팔면서 전 세계 티켓 파워 부문에서 5위에 올랐음에도 국내에 K팝 전문 공연장이 단 한 개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상반기에 대관 예약이 다 끝났고, 심지어 장소 부족으로 대관 경쟁이 심해 웃돈을 받고 대관을 넘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원활한 대관업무를 위해 문체부는 협의체 구성과 더불어 추가 공연장 건립과 같은 장기 계획 수립을 서둘러 달라”고 주문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일단 있는 시설을 빨리 가동할 수 있도록 점검하겠다”고 답했다.
대중음악 공연장은 통상 객석 수에 따라 홀(5000석 안팎), 아레나(1만~2만석), 슈퍼아레나(3만석 안팎), 돔(5만석 안팎), 스타디움(7만명 이상) 등으로 분류한다. 현재 대관 전쟁이 펼쳐지는 케이스포돔과 대관이 불가능한 고척돔은 이름은 ‘돔’이지만 사실상 ‘아레나’급이다. 공연장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과 달리 외국은 다양한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아레나부터 돔, 스타디움 급 공연장만 전국 40여 곳에 달한다. 특히. 도쿄돔, 삿포로돔, 나고야돔, 오이타뱅크돔, 후쿠오카돔은 일본 5대 돔 공연장으로 꼽힌다. 여기에 요코하마, 지바, 사이타마 등 20곳 이상의 경기장을 확보하고 있고, 전문 음악 공연장으로 분류된 아레나도 11곳이나 갖춰 K팝 아이돌의 선호도가 높다고 엔터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미국은 어떨까. 캘리포니아에만 1만석 규모 공연장이 40여개에 달한다. 축구장, 농구장, 미식 축구장 등의 체육 시설을 포함한 숫자로 해외에선 한국과 달리 스포츠 구장을 대중음악 공연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21년 방탄소년단, 2023년 트와이스가 공연한 미국 LA 소파이 스타디움은 7만석 규모의 NFL 구장으로 미식축구 경기가 없을 땐 대중음악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대표 사례다.
또한, 지난해 빌보드 어워즈가 열린 트루이스트 파크(4만명),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 홋스퍼 홈구장(6만명), LA다저스 스타디움(5만6000명), 패서디나 로즈볼 스타디움(9만명), 웸블리 스타디움(9만명) 등 미국과 유럽의 경우 경기장을 공연장으로 활용하며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최근 공연장 부족 사태가 심화되자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는 '서울시 공연장 부족 대책' 마련을 위한 서명운동을 추진하며 직접 행동에 나섰다. 이종협 음공협 회장은 "대형 공연장 부족 문제는 해외 아티스트의 글로벌 투어에서 한국만 빠지는 ’코리아 패싱‘과 K팝 아이돌의 한국 무대 활동이 축소되면서 결국 이는 막대한 경제 효과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대관 전쟁에 따른 티켓 가격의 상승, 티케팅의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암표의 폭증 등 여러 가지 사회 문제로 이어진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 해결에 대해 이 회장은 "조속히 정부, 서울시, 체육계, 문화계 등 통합협의체(TF) 구성이 이뤄져야 하고, 공연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많은 국민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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