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의식 품은 '형과 다른 아우'
'빌런' 재벌 조태오 가고 형사 박선우 온다
류승완 "충돌하는 정의와 신념 이야기"
낡은 유머, 부실한 서사는 아쉬워
형사가 불법 도박장에 손님인 척 위장해 입장한다. 이내 잠입한 형사의 정체가 탄로 나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나 살려라' 도망치는 사람들을 서도철(황정민 분)과 형사들이 여유롭게 일망타진한다. 도박꾼들은 쫓기는 와중에도 위험에 처한 형사를 걱정할 만큼 선량하다. 영화 '베테랑2'는 슬랩스틱 액션으로 문을 연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통쾌하고 리듬감 있는 액션이 돋보이는 '난장판' 장면이다.
2015년 1341만명이 본 영화 ‘베테랑’이 9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다. 기존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구조를 세운 점이 특징이다. 전편에서 법 위에 선 재벌 조태오(유아인 분)를 응징하는 형사들의 대결이 통쾌함을 안겼다면, 속편에서는 혼란한 시대 속 ‘진정한 정의’에 관해 묻는다. 류 감독은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CGV용산에서 열린 영화 ‘베테랑2’ 언론시사회에서 “선과 악의 대결보다 정의와 신념이 충돌하는 구도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는 한국사회 민낯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을 죽이고도 심신 미약으로 징역 3년에 그친 범죄자, 이슈만 쫓는 사이버 레커 등 혼란한 세상에서 사적 복수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어느 날 대학 교수에게 성폭행당해 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고 이내 교수는 살해된다. 그를 죽인 범죄자로 지목된 연쇄살인범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마치 처단하는 듯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른다. 형사들은 수사를 시작하고, 이를 비웃듯이 연쇄살인범은 살인 대상을 지목하는 예고편을 온라인에 공개한다. 서도철의 눈에 든 박선우(정해인 분)가 강력범죄수사대에 합류하며 수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흐른다.
영화는 기존의 문법을 과감하게 바꿨다. 1편이 선과 악의 명확한 대립을 내세웠다면, 2편에서는 이 시대의 선과 악은 무엇인지 미스터리하게 비춘다. 극이 품은 주제만큼이나 서도철의 주먹은 무거워졌다. 1편에서의 장르적 쾌감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갸우뚱할 만하다. 대신 우리 사회의 '정의'와 '폭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응원할 만하다. 이 시도가 관객에게 어떻게 닿을지 궁금하다. 액션이 좋다. 강도 높은 수직 액션이 인상적인 남산 추격 장면과 옥상 수중 장면은 액션의 쾌감을 잘 전달한다. 공간 활용과 액션 설계에 공들인 모습이다. '빌런'으로 등장한 정해인은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전편에서의 조태오(유아인 분) 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지만, 인상적이다.
반면 낡은 감이 없지 않다. 전편보다 웃음 타율이 높지 않다. 9년 전에는 웃었을 법한 다소 뻔한 농담을 복제한 듯한 장면이 꽤 나온다. 장윤주가 연기한 형사를 비롯한 일부 캐릭터가 기능적으로 소비된다. 허술한 서사도 아쉽다. 부실한 개연성 탓에 쌓아 올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뒷심도 부족하다.
“재탕 대신 모험”…류승완의 결단
배우 황정민과 정해인이 극 중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형사로 대립한다. 더불어 진경·장윤주·오달수·오대환·김시후·권해효 등이 출연한다. 류 감독은 영문 부제목으로 ‘내가 집행한다’를 달았었다고 밝혔다. 영화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1편에서 ‘악역’이 강렬해서 그런지 2편의 악역이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 영화는 누가 빌런인지보다 빌런이 하는 행위와 동기가 중요했다. ‘단죄’에 대해 관객에게 묻고 토론하게 하고 싶었고, 명확한 답보다 호기심을 유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편에 이어 서도철 형사로 돌아온 황정민은 “‘나쁜 살인이 있고, 좋은 살인이 있냐’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입은 걸걸하지만 잘 살아가는 사람이다. 서도철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주변에 한 명쯤 있다면 든든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했다.
정해인은 제작사 외유내강과 영화 ‘시동’(2019)에 이어 다시 손잡았다. ‘베테랑2’에서는 기존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류 감독은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는 배역이기에 신뢰감이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젊은데도 묵직하고 차분한 모습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편집하며 놀랐다. 어떨 때는 선량해 보이지만, 텅 비어있고 다양한 눈빛을 지녔다”고 했다.
‘베테랑2’는 오는 13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다. 규모 있는 한국영화 텐트폴 신작 중 유일하다. 류 감독은 “극장용 영화 속편을 만든 건 처음인데 성공을 ‘재탕’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세계관을 아낀다면 다른 모험을 하는 게 맞다고 봤다. 이전에 1편을 마무리하면서 했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1편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천만영화’가 됐다. 이로 인해 대중의 관심이 이어지면서 흥행 부담감도 뒤따를 터. 류 감독은 “상업영화가 아닌 대중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며 “박스오피스 성적이 영화를 만드는 최종 목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흥행을 하는 게 좋지만, 숫자에 목표를 두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감독은 부담감을 애써 떨치려는 모습이지만, '베테랑2'의 어깨는 무겁다. 추석 연휴 '베테랑2'의 경쟁작은 사실상 없다. 이 시기 덩치 큰 상업영화 신작이 전무한 상황 속 등판한다. 영화가 CJ ENM의 부진을 씻을 구원투수가 될지, 기대하는 이가 많다. 러닝타임 118분. 15세 이상 관람가. 9월13일 개봉.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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