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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없는 병원, 비용 오르고 진료수준 떨어진다"…건강보험 설계자의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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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인터뷰
1977년 국민건강보험 도입 박정희 대통령에 제안
"의대 증원 이전에 건보재정 영향 예측했어야"
"의료 사태 유일한 해법은 '의평원' 평가 수용"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84)이 지난달 이마 동맥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응급실 22곳에서 수용을 거절당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김 전 위원장은 1977년 우리나라에 국민건강보험(당시 명칭 의료보험)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정책 전반을 설계한 주인공이다. 1989년 보건사회부 장관 시절엔 건강보험을 전 국민에게 확대 적용하는 정책을 직접 이행했다.


"전공의 없는 병원, 비용 오르고 진료수준 떨어진다"…건강보험 설계자의 지적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광화문 집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며 현 의정 갈등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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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강보험 도입과 정착의 변곡점마다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조정하고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했던 김 전 위원장에게 현재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경험적 조언을 구했다. 아시아경제는 지난달 29일과 이달 3일 두 차례 김 전 위원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 종로구 내수동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김 전 위원장은 상처가 다 낫지 않아 오른쪽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1977년 정부는 왜 건강보험을 도입했나.


▲당초 건강보험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당시는 우리나라 근로자 수가 급증하고 노사 분쟁이 심해질 때였다. 서강대 교수이던 1975년 청와대로부터 사회를 안정시킬 대책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제안한 것 중 하나가 건강보험제도다. 국민소득도 낮고 정부 재정도 부족했던 때라 경제 각료 상당수는 물론 가장 앞장서 찬성해야 할 보건사회부까지 "건강보험 도입은 시기상조다" 혹은 "당장 지출이 필요 없는 연금부터 먼저 도입하자"며 반대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내 보고서를 받아들여 추진을 지시했다. "건강보험의 코스트(비용)만 생각하지 말고 건강보험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파급효과를 보라, 절대로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내 설득이 통했다.


-건강보험이 우리 의료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처음엔 근로자 500인 이상 기업체를 대상으로 시행했다. 우리나라 재정 형편으론 당장 전 국민을 보장할 수 없으니 보험료를 제때 낼 수 있는 큰 회사 근로자들에게 우선 적용한 것이다. 급여의 2%를 보험료로 징수하고 기업과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하도록 했으니 지금과 같은 구조였다(현재 보험료율 법정 상한선만 8%로 상승). 근로자는 본인이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동시에 부양가족까지 다 혜택을 볼 수 있고, 젊은 근로자들은 큰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지 않아 보험 재정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정부의 통제도 가능하고, 잉여금도 쌓였다. 후에 건강보험이 농어촌 주민, 도시 자영업자까지 다 확대되고 12년 만에 전 국민을 포용하는 제도로 확대됐으니 굉장히 성공적인 정책이다. 무엇보다 건강보험제도 도입으로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병원과 제약 산업이 크게 성장했고, 의과대학도 다수 생겨났고, 적어도 우리 국민은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은 없게 됐다.


"전공의 없는 병원, 비용 오르고 진료수준 떨어진다"…건강보험 설계자의 지적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상대책위원장이 서울 광화문 집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현재 의료체계에서 건강보험 도입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 있나.


▲의료 접근성이 좋아지니 우리 국민은 다른 나라 사람보다 병원을 많이 이용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환자를 너무 많이 보게 됐고, 대학병원에선 3분 진료가 일상화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의사가 좀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고 본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의사 숫자는 조금 부족하지만 의료생산성은 OECD의 3배에 가깝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인데, 이런 효율은 소수의 인원이 생산을 많이 해서 생겨난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그동안 혹사당한 면이 있다. 또 하나, 지역 의료보험이 직장 의료보험과 통합되면서 지역 환자들이 서울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려들어 1차, 2차, 3차로 이어져야 하는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졌다. 행정관료들이 처음부터 제도를 정교하게 운용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정부는 의사를 증원해도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의사는 독점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의료서비스)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 의사 숫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새로운 의료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수익을 창출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일반적인 경제학 이론은 의료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의사 숫자가 늘면 의료비는 어마어마하게 폭증한다는 걸 국민이 이해하면 (의대 증원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과거에도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이 있었는데.

▲처음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될 때 정부가 병원의 진료수가를 당시 관행수가(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의료행위에 대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의 55% 수준으로 책정하자 의사들이 반발했다. 당시 정부는 차차 올려주겠다고 의료계를 설득했다. 또 의대를 신설하면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의사들이 반발했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모든 의료기관은 예외 없이 건강보험 환자를 받게 한 제도)를 폐지하라는 위헌 소송도 있었다. 의사들 수입에 지장이 생기니까 반대한 것이지만, 지금처럼 대규모로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이번엔 정부가 갑자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하니 반발이 커진 것이다. 정부는 의사들과 싸우지 말아야 했고, 정치권은 중재 역할을 해야 했다.


-수가 조정이 의료개혁에 얼마나 중요한가.


▲1977년 건강보험 도입 당시 진료수가를 낮게 책정했을 때부터 나는 "사회 의료보험 도입 때문에 의학 발전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수가를 적정하게 맞춰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정부는 현실적인 수가 조정으로 의사가 여러 진료분야에 골고루 퍼져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배분했어야 하고, 지금도 그렇다. 일례로, 현재 산부인과 자연분만 수가가 몇십만원 밖에 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이번 의료사태를 겪으면서 의사가 '공공의 적'이 됐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데,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물론 의사도 히포크라테스 정신에 따라 환자 치료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의사 이기주의의) 제일 나쁜 사례가 미국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5년부터 사회 의료보험을 도입하려고 애쓴 끝에 의회를 통과했지만 의료계와 이해집단 반대에 부딪혀 소송까지 갔고 위헌 결정이 나 결국 도입에 실패했다. 이후 미국 의료 시장은 민간건강보험 중심으로 운영되고, 국민 의료와 관련한 부분을 사적인 영역으로 취급하다 보니 어떻게 손댈 도리가 없이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의사협회(AMA)는 외국인 의사를 들여올지언정 절대 자국 의대 정원은 늘리지 않으려고 한다. 민간보험 기반이다 보니 의사도 의료소송에 대비해 거액의 보험을 따로 들어야 한다.


"전공의 없는 병원, 비용 오르고 진료수준 떨어진다"…건강보험 설계자의 지적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광화문 집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며 현 의정 갈등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의대 증원정책 수립 과정에서 문제는 무엇이었나.


▲(정부는) 의사 공급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의사 공급이 늘면 어떤 영향이 있을지 분석했어야 하는데, 이런 준비가 없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이만큼 늘어나면 건강보험 부담은 얼마나 늘어나는지, 건강보험 재정 상황은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미리 설명해야 했다. 의료 개혁을 통해서 진료 전달체계와 병원 시스템을 바꾸는데, 관련 재정을 부담해야 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비용이 얼마나 늘어날지, 재원은 어떻게 충당해야 하는지 등을 예측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 의대 증원을 재검토하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런 정책은 구체적으로 이래서 안 된다,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분석하고 직언할 수 있는 의료 전문가가 정당에 있어야 하는데 한 명도 없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인제 와서 다시 정원을 줄이자, 증원을 보류하자고 해도 국민은 여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의료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에서 우리 의과대학의 시설이나 교수진 등 모든 걸 놓고 봤을 때 당장 내년에 학생 1509명을 더 교육할 수 있겠는가 하는 판단을 객관적으로 내리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의평원이 "교육 가능한 학생 수가 몇 명밖에 안 된다, 그 이상은 안 되겠다"고 하면 이 말을 따라야 한다. 의대 교육은 칠판과 백묵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실습 교육을 하는 것이다. 현재 다른 방법은 없다고 본다.


-현재 진행 중인 의료사태가 앞으로 의료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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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년 봄쯤 되면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부터 운영 시스템이 바뀔 것이다. 전공의 없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론 대학병원을 유지할 수 없다. 코스트가 훨씬 비싸지고, 의료의 질은 떨어지고, 수익을 맞추려면 환자를 가려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대한민국 의료가 상당 기간 혼란을 겪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50년 가까이 건강보험제도를 바탕으로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보편적인 의료서비스를 받는) 사회의료체제를 잘 확립해 왔는데 이번 의료 사태로 크게 훼손됐다. 응급실 본인부담률을 높이는 대책이 대표적이다. 돈 있는 사람만 응급실에 가라는 것이다. 이처럼 앞으로 국민의 병원 이용이 불편해지고 병원은 경영이 힘들어질 텐데, 이를 극복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맑은 호수에 폭탄을 하나 터뜨려 흙탕물을 만드는 건 순식간이지만, 흙이 다 가라앉고 진정되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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