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전 12세기 프리기아 왕국에서 유래
마리안, 수탉과 함께 프랑스 혁명 3대 상징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에도 등장
‘프리기아 캡(Phrygian cap)’은 챙이 없는 원뿔 형태의 모자다. 면이나 비단, 가죽 등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진다. 원뿔의 끝부분이 한쪽 옆으로 기울거나 찌그러진 것이 특징이다. ‘자유의 모자’라고도 불린다.
2024 파리올림픽·패럴림픽의 마스코트 ‘프리주(Phryge)’는 프리기아 캡에서 영감을 얻었다. 프리주의 모습은 작고 빨간 프리기아 캡 모양에 하얀색과 파란색을 더해 의인화됐다. 프랑스 국기의 색과 같다. 패럴림픽 프리주가 한쪽 발에 의족을 착용한 것을 빼곤 올림픽 프리주와 모습이 같다. 두 명의 프리주 몸 가운데에는 이번 대회의 금빛 로고가 새겨져 있다. 이 로고는 금메달, 올림픽 성화, 그리고 프랑스를 의인화한 가상의 여성인 ‘마리안(Marianne)’의 얼굴을 합친 것이다.
‘마리안(Marianne)’은 프리기아 캡, 수탉과 함께 프랑스 혁명의 3대 상징물이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의 가치를 나타내는 여성상인 동시에 자유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안은 히브리어 ‘미리암(Miriam)’의 프랑스어 변형이다. 미리암은 구약성경에 나온 모세의 누이 이름이다.
마리안은 1830년 프랑스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도 등장한다. 그림 속의 마리안은 프리기아 캡을 머리에 쓴 채 오른손엔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를, 왼손엔 긴 총을 들고 민중을 이끌고 있다. 프리기아 캡을 쓴 마리안의 흉상은 관공서나 법원을 비롯해 프랑스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이 모자를 쓴 마리안은 우표나 동전에도 그려져 있고, 학교 커리큘럼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그만큼 프리기아 캡은 프랑스 역사와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프리기아 캡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모자는 기원전 12세기 고대 아나톨리아 중서부 지역의 프리기아 왕국에서 유래했다. 현재의 터키 지역이다. 당시 프리기아인들은 해방된 노예에게 자유인이 됐다는 의미로 전통적으로 이 모자를 씌웠다. 훗날 고대 로마에서도 이 의식을 따랐다. 이때 자유민이 된 노예는 프리기아 캡을 장대에 걸고 흔들며 기쁨을 만끽했다.
프랑스 국립기록보관소에 따르면,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시점에 시민들이 프리기아 모자를 착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1163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건설, 1789년 프랑스 혁명, 1887년 에펠탑 건설, 1924 파리올림픽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당시, 절대왕정에 맞선 시민군이 프리기아 캡을 착용하면서 이 모자는 오늘날 자유와 혁명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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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기아 캡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 미 국회의사당의 로툰다 돔에 그려진 천장화 ‘워싱턴의 신격화’에는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의 왼편에 자유의 여신인 '리베르타스 여신'이 빨간색 프리기아 모자를 쓰고 앉아 있다. 미 상원의 공식 문장에도 등장한다. 이처럼 프리기아 캡은 오랜 역사에 걸쳐 단순한 모자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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