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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 테리' 반면교사…"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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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실패' 그치지 말고…방첩체계 보완해야
간첩죄 70년째 그대로…北 아니면 수사도 못해
'영향력 공작 차단' 외국대리인등록법 도입해야

이른바 '수미 테리' 사건으로 국가정보원의 정보활동이 노출된 데 대한 비판이 거세다. 미국은 국익 수호에 있어서는 동맹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정보 실패' 개선은 물론 방첩 체계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미 테리' 사건, 핵심은 외국대리인등록법
'수미 테리' 반면교사…"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 도입" 미 뉴욕 남부지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배경은 검찰 공소장에 담긴 국가정보원 요원과 테리의 접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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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남부지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정부에 알리지 않고 한국을 위해 일했다는 혐의다. 테리는 2001~2008년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분석관으로 일한 대북 전문가다. CIA 사직 이후에는 2010년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국·일본·오세아니아 담당 국장을 역임했다. 31쪽 분량의 공소장을 보면, 미 검찰은 테리가 공직을 떠난 뒤 '최소' 2013년부터 10년에 걸쳐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활동했다고 보고 있다. 애초 CIA에서 퇴직한 이유 역시 국정원과 접촉한 게 문제가 됐다는 내용도 적시됐다.


한국에서 논란이 된 건 공소장에 나온 국정원 핸들러(Handler·담당자)의 허술한 동선이다. 테리에게 고가의 명품 가방과 의류를 선물하면서 외교관 지위에 따른 면세 혜택을 받았다. 2022년 6월 미 국무부에서 열린 비공개회의 직후 외교관 번호판이 달린 차량에 테리를 태우고 회의 내용을 넘겨받기도 했다. 비노출 간접, 흔적을 남기지 않는 정보활동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다만 '학자'이자 '민간인' 신분의 테리와 접촉하는 건 첩보활동보다 전형적인 공공외교에 가깝다. 그를 간첩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 미국은 어떤 근거로 차 안에서 나눈 대화까지 도·감청했던 것일까.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은 미국의 정책이나 여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려는 개인·단체 등은 법무부에 등록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활동에 제약을 가하진 않지만, 대리하는 국가와 관련한 활동 내역을 정기 보고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8년 나치의 선전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제정됐고,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기소 사례가 한 자릿수에 불과할 정도로 사문화된 법이었다. 2017~2019년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던 특검이 당시 대통령의 측근들을 FARA 위반 혐의로 줄기소하면서 부활했다. 테리의 공소장에서 2019년부터 위반 사실이 급증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외국 간첩들이 활개 쳐도 수사할 法 없다
'수미 테리' 반면교사…"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 도입" 2022년 12월 중국 비밀경찰서의 국내 거점으로 지목된 서울 소재 중식당 동방명주에 해명 기자회견을 예고하는 문구가 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누군가 미국·일본·중국 등 특정 국가를 위해 기고를 작성하거나 여론 조성에 영향을 미쳐도 처벌할 수 없다. 수사도 어렵다. 동맹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차단하는 미국과 달리 방첩에 필요한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방첩 파트에서 근무해온 정보 관계자는 "방산 비리나 기술 유출 등 국내법상 명백한 범죄 혐의를 저지르지 않는 한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에이전트가 무슨 짓을 해도 차단할 방법이 없다"며 "정치적 영향이나 개입이라면 더 막을 근거가 없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2022년 말 전 세계를 뒤흔든 '중국 비밀경찰서' 사건이다. 중국 정부가 해외 각지에 불법 경찰기관을 운영하며 정보를 수집하거나, 반(反)체제 인사들을 탄압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한강변 한 중식당이 거점으로 지목됐다. 각국이 관련자를 간첩으로 잡아들였지만, 우리나라는 이 음식점 실소유주 왕하이쥔씨를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재판하고 있다. 당초 문제가 된 비밀경찰 혐의는 법적 근거가 없어 수사도 못 했다. 지난달 말 경찰이 횡령 혐의를 추가로 송치한 게 전부다.


FARA 제도가 없는 데다 간첩죄도 '적국'으로 한정된 게 문제다. 형법 98조 1항은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적국'을 명시한 조문은 1953년 법 제정 이래 그대로다. 적국 개념은 북한에만 적용된다. 북한만 아니라면 외국을 위한 간첩으로 활동해도 제동을 걸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2015년 중국에 해군 구축함 관련 정보를 빼돌린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해군 소령에 대해서도 간첩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


방첩 대상, 국제적 흐름은 '적국' 아닌 '외국'
'수미 테리' 반면교사…"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 도입"

방첩(Counter Espionage) 개념부터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은 기관 업무를 소개하며 "방첩의 대상이 더 이상 북한만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설명한다. 분단국가 특성상 대부분 북한 간첩을 색출하는 업무를 떠올리지만, 이는 '대공 방첩'이라는 좁은 개념이다. 방첩은 국가안보에 반하는 '외국'의 정보활동을 견제·차단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뜻한다.


방산 로비스트나 산업기밀 유출을 노린 스파이의 활동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북한도 여론에 개입하는 '영향력 공작'으로 대남 공세 방식을 전환했다. 정작 국정원은 대공 수사권까지 경찰에 넘겨 더는 '수사'에 착수할 법적 근거가 없다. 현재로선 '조사' 수준에서 수집한 정보를 사정 당국에 지원하는 정도다. 정보전(戰) 시대에 방첩의 손발이 묶인 셈이다.


주요 국가들은 미국 FARA와 동일한 개념의 법안을 이미 도입했다. 호주는 '외국 영향력 투명성 제도(FITS)'를 시행하고 있다. 외국 정부를 위해 활동할 경우 외국 대리인으로 등록하게 한다. 내정에 간섭하면 형사처벌 대상이다. '영향력 행사'를 정의할 때 정책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자금 지원 활동까지 폭넓게 해석한다. 영국에는 '외국 영향력 등록 제도(FIRS)'가 있다. 안보·국익 수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내무부 장관이 특정 외국 세력을 등록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게 했다.


간첩 혐의를 적용하는 범위도 '적국'이 아닌 '외국'으로 폭넓게 보고 강력히 대응하는 추세다. 미 연방법률 18편 37장에 따르면 외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정보를 입수하거나 외국의 정부·파벌·정당 등에 국방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등의 경우 간첩죄가 성립한다. 최대 사형에 처한다. 중국 형법 110조는 간첩 조직에 가담하거나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에 대해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형에 처한다. 국경 밖의 기구·조직 등을 위한 정보 절취·정탐·매수 혐의도 동일한 기준의 형량을 적용한다.


우리나라에도 외국대리인등록법과 유사한 개념이 있긴 하다. 북한을 왕래하거나 북한 주민과 접촉하려면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통일부에 사전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현행 간첩죄와 마찬가지로 북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한계다. 기존의 방첩 체계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한반도 상황만 고려하는 편협한 시각에 갇혔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간첩 개념 확장"
'수미 테리' 반면교사…"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 도입"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제공=국정원]

이렇다 보니 한국도 '외국대리인등록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첩의 개념을 북한에서 외국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외국 정부가 대리인에게 지시한 명령과 자금 운용 내역을 합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고, 무기 중개상이나 산업 스파이 등의 활동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도 있다. 지난해 6월 최재형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 이런 '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을 발의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하다 폐기됐다.


같은 맥락에서 간첩 혐의 개정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정치권의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정쟁의 틀에 갇혀 법안들이 계속 폐기됐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여야 모두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등 10명은 지난달 21일,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2명은 이달 4일 형법 개정안을 냈다.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핵심은 같다. 적국의 개념이 모호해진 시대적 상황과 국제정세 변화에 맞게 형법상 간첩죄 적용 기준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장하자는 취지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제정하면 영향력 공작을 사전에 모니터링하고, 국익을 침해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며 "지금으로선 외국 정부의 내정 간섭으로부터 주권을 지킬 방패가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어느 정권의 책임인지 따지는 데서 끝난다면 국정원은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망가지기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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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출신의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정권 교체마다 기준이 흔들리는 국정원 파견 요원 선발 절차부터 정상화가 필요하다"며 "2019년부터 양상이 달라진 미국의 FARA 적용 방향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익과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을 도입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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