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합의' 당시 美 국무부 북핵특사
북·러 조약에 따른 군사기술 지원 우려
'핵무장論' 힘 실리지만, 확장억제 강조
러시아가 북한에 '핵무기 기술'을 이전할 수 있다는 미 대북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북-러의 군사적 밀착에 대한 대응으로 한국에선 '핵무장' 여론이 힘을 얻고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동맹을 중심으로 한 '확장억제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러시아,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 넘길 수 있어"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는 2일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협정이 가진 정치적 의미 중에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지지하는 국가에서 러시아가 이탈했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미국과 동북아 동맹들은 물론, 나머지 국제사회도 이 문제를 규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 국무부 차관보 등을 지낸 인사로, 1994년 김정일 집권 직후 북핵 위기를 봉합한 '제네바 합의'를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갈루치 전 특사는 "새로운 협정은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러시아의 물질적 지원을 시사한다"며 "역내외 국가들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러시아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은 물론,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체(MIRV) 및 요격 방해용 기만체(decoy) 지원을 포함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 나아가 우주·정찰위성 능력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미국과 동맹들은 '외교적 대응' 그 이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적 밀착 수위를 끌어올리면서 한국은 물론, 미 의회 내에서도 '핵무장' 또는 '전술핵 재배치' 방안이 꾸준히 거론된다. 오는 11월 미 대선과 맞물려 현실적 선택지로 떠올랐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대한 과장과 불만을 꾸준히 드러내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주한미군 축소에 따른 '자체 핵무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토론회에서 "당대표가 되면 '핵무장 3원칙'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핵무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도 지난달 21일 북·러 정상회담 대응을 다룬 보고서에서 '전술핵 재배치, 자체 핵무장 또는 잠재적 핵능력 구비 등을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공론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힘 실리는 '독자 핵무장'…美 "확장억제 신뢰"
다만 갈루치 전 특사는 북·러 조약이 그 자체로 역내 전략적 지형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짚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약속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기억해야 한다"며 "결과적으로 수년 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합병하고 전면적 침공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1994년 미국·영국·러시아가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라루스와 체결한 핵폐기 각서다. 우크라이나는 당시 보유했던 모든 핵탄두를 러시아에 이전하는 대가로 영토와 정치적 독립에 대한 보장을 약속받았지만, 러시아는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핵무장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침공을 당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을 핵 보유 필요성을 보여주는 근거로 들지만, 갈루치 전 특사는 러시아가 이해관계에 따라 북한에 대한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짚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핵무장에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는지, 아니면 미래의 선택지로 남겨두고 있을지' 평가를 묻는 말에 "미국이 30년 전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철수하기로 한 결정 혹은 핵확산금지조약(NPT) 당사국으로서 한국의 지위에 대한 지지를 재고할 거라 기대하지 않길 바란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 5월 '제주포럼'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전술핵 하나만 떨어뜨려도 한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는데, 그런 무기체계를 옵션으로 논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핵무장 또는 전술핵 재배치에 나설 경우 북한이 선제 타격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도 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지금으로선 미국과 한국·일본·호주 등 동맹들이 미국의 억지력을 신뢰하고, 이런 억지력을 동맹들에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모든 이유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동맹에 대한 미국의 억제 태세는 해상과 육상에 배치된 미국의 핵 자산에 의해 유지돼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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