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북핵특사 지낸 갈루치, 제주포럼 프레스미팅
"핵전쟁 가능성, 일어나선 안될 일이라는 경고"
"트럼프 재집권 시 한일 독자적 핵무장 가능성"
올해 초 '동북아 핵전쟁' 가능성을 제기하는 칼럼으로 이목을 끌었던 미국의 북핵 협상 전문가가 "북한은 핵무기를 통한 강압(compellence)으로 한국과 미국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는 30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 프레스미팅을 통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는 미 국무부 북핵특사·차관보 등을 지낸 인사로,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주역이기도 하다. 올해 1월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서 "올해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지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사회·통역을 맡았다.
'핵전쟁 우려' 제기한 갈루치…"北, 핵으로 공갈"
갈루치 교수는 '대북 억제력 실패에 따른 핵전쟁 발발' 혹은 '북한의 우발적 행동에 따른 확전 가능성'을 제기한 배경을 묻자 "핵전쟁 시나리오 자체에 포커스를 두기보다 핵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자 했던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강구하고 있지만, 현실주의자로서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확장억제 실패뿐만 아니라 기술적 문제, 미사일 운반 실수 등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를 통해 핵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상당히 적대적 용어를 쓰고, 한미 역시 그에 대응하면서 '강 대 강'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며 "물론 북한이 미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보진 않지만, 중국이 (공격할 수 있도록) 관여했을 때 과연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이런 가능성을 막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대화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갈루치 교수는 한미가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김정은 체제는 종말한다'고 경고하는데도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하는 이유를 묻자 '북한식 억지 전략'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그는 "미국이 엄청난 핵·재래식 무기를 갖고 있는데도 북한이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는 기저에는 결국 북한도 '억지 전략'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며 "상대방의 의지를 눌러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억지 전략, 즉 핵무기로 (북한에 대한 공격을 방지하는) 그게 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그 목적이 '억제'에서 그치지 않는 게 문제라는 지적을 덧붙였다. 그는 "북한의 핵 개발 목적은 '억제'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핵무기로 미국이나 한국에 대해 공갈하는 '강압'도 있다"며 "북한의 논리는 미국이 공격하면 우리도 반격해서 응징할 수 있다는 생각, 또 강압으로 미국과 한국에 영향을 줘서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술핵 재배치론' 꺼낸 美 공화당, 가능할까
갈루치 교수는 또 최근 로저 위커 미 상원 군사위원회 공화당 간사 등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확장억제 강화 혹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새로운 옵션으로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그는 먼저 전술핵·전략핵 개념에 대한 이해를 요구했다. 전술핵의 경우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이 15kt급, 나가사키에 떨어진 게 21kt급이었다. 전략핵은 수천kt 이상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보며, 미국이나 러시아에선 통상 250~500kt급부터 전략핵으로 여긴다.
갈루치 교수는 "전술핵 하나만 떨어뜨려도 한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는데, 그런 무기체계를 옵션으로 논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공화당 의원들의 전술핵 재배치론은) 바람직하지 않은 나쁜 생각이며, 한반도 안보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의견"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말은 쉽게 하지만, 전술핵은 그 어떤 재래식 무기들을 합친 것보다 위력이 강하다"며 "만일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한다면,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북한이 선제 타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고 했다.
"韓日, 독자적 핵무장 가능…동맹 더 소중하다"
올해 11월 예정된 미 대선과 맞물려 '독자적 핵무장론'이 꾸준히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는 지적을 내놨다.
갈루치 교수는 '트럼프가 다시 집권할 경우 취임 6개월 안에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는 질문에 "트럼프는 한국·일본과의 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주한미군·주일미군 주둔에 따른) 안보 공백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은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이) 독자적 핵무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의 특성상 그 행보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한국과 일본이 미국에 '무임승차'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데, 이건 마치 부동산업자가 거래하는 방식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분명한 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닌, 조약과 미국의 국익에 기초한다는 점"이라며 "한일 양국의 안보는 미국이 사활을 걸어야 하는 사안이자, 한일 또한 미국에 기여하는 상호의존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미국은 '동맹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기에 트럼프가 쉽게 뒤집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행정부 2기가 출범할 경우를 상정하면서는 '대화 노력'을 당부했다. 갈루치 교수는 "바이든이 다시 집권한다면 북한과 대화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길 희망한다"며 현재 미국의 외교에선 '비용'과 '위험'을 기준으로 할 때 북한 문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하마스 이스라엘 침공, 이스라엘 가자지구 침공, 대만 문제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럼에도 바이든 2기 땐 북한 문제에 제대로 접근했으면 한다"며 "일방적으로 대화에 나오라고 할 게 아니라, 관계 정상화를 제안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동결하고 감축시켜 나가는 단계적·현실적 접근이 비핵화에 진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제주=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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