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너빌리티(전 두산중공업) 사명이 적힌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뿌린 기후활동가들을 재물손괴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30일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집시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청년기후긴급행동 소속 활동가 2명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조형물의 용도와 기능, 피고인들 행위의 동기, 조형물 이용자들이 느끼는 불쾌감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들이 조형물의 효용을 해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활동가들은 2021년 2월 1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두산에너빌리티 사옥 앞에서 이른바 ‘그린 워싱’을 비판할 의도로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뿌려 재물을 손괴하고 허가받지 않은 옥외 집회를 개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사전 신고 없이 시위를 했고 조형물을 훼손했다며 이들을 집시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했다.
1·2심은 집시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활동가들에게 각각 벌금 300만원과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활동가들이 녹색 스프레이를 칠한 것이 조형물의 효용을 떨어뜨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기후 위기를 알리는 표현의 수단으로 이 사건 조형물에 수성 스프레이를 분사한 직후 바로 세척했다”며 “여기에 형법상 재물손괴죄를 쉽게 인정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게 될 위험이 있으므로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이 같은 낙서 행위가 모두 인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부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안마다 유·무죄는 달라질 수 있다”며 “도로에 스프레이를 뿌려 차로 구분 및 지시 표시 등 기능에 효용을 해하였다면 재물손괴가 인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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