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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당신의 글자는 어떤 맛, 어떤 모양, 어떤 색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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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글자를 인식하는 단순한 활동 아닌
인간을 이해하는 매우 복잡한 행위를 뜻해

누군가는 무채색의 글자에서 색깔을 읽고
누군가는 책 읽을 때 오른쪽 지면만 읽기도
독자는 '비전형적'…전형적인 독자는 없어

논쟁적 소설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브코프(1899~1977)는 스스로를 공감각자로 인식했다. 그는 에세이 ‘말하라, 기억이여(Speak, Memory)’에서 자신은 무채색의 글자에서 색깔을 본다고 썼다. "알파벳에서 a는 오래된 나무색이지만 프랑스어 a는 광택 있는 흑단색이다." "q는 k보다 좀 더 갈색이고 s는 c 같은 하늘색이 아니라 푸른색과 자개 빛깔이 기묘하게 뒤섞인 색이다."


공감각은 어떤 감각이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신경심리학적 상태를 뜻한다. 나브코프처럼 검은색 글자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색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악을 들으면서 색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공감각은 영국 퀸메리런던대학의 매슈 루버리 현대문학 교수의 저서 ‘읽지 못하는 사람들(원제 Reader’s Block: A History of Reading Differences)’에서 언급되는 읽기와 관련된 여섯 가지 신경질환 중 하나다. 나머지 다섯 개는 난독증, 과독증, 실독증, 환각, 치매다.


난독증은 인지와 해독에 문제가 있어서 능숙하게 읽지 못하는 어려움을 뜻한다. 과독증은 표면 읽기, 의식 없이 읽기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책을 통째로 외울 정도로 읽었지만 정작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다. 실독증은 뇌졸중, 질병, 머리 손상 등의 후천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문맹을 뜻한다. 책에서는 뇌졸중이 발병한 뒤 주기도문을 외울 수는 있지만 읽는 법을 잊어버린 기독교인의 사례가 언급된다.

[이 책 어때]당신의 글자는 어떤 맛, 어떤 모양, 어떤 색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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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 환각, 치매의 경우 얼핏 읽기와 무슨 관련이 있나 싶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되는 읽기의 개념은 굉장히 광범위하다.


루버리 교수는 "읽기란 글로 쓰인 언어를 해독하고 이해하는 행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지각적·인지적·언어적·정서적·생리적 과정"이라는 매리언 울프의 말을 인용하며 "읽기를 포괄적이고 유연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리언 울프는 미국의 세계적인 인지신경학자다. 한 마디로 루버리 교수에게 읽기는 글자를 인식하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매우 복잡한 행위를 뜻한다. 루버리 교수는 읽는 행위를 하는 독자의 개념을 신경다양적 독자와 신경전형적 독자로 나눈다. 신경다양인은 일반적인 뇌신경 체계의 발달이나 연결에서 차이가 있는 사람을 뜻한다. 2022년 엄청난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을 떠올리면 될 듯 싶다. 신경전형적 독자는 평범한 읽기 행위를 하는 사람들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신경전형적 독자의 경우에도 읽기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고 봐야 한다. 일례로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고 주장했던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1911~1980)은 책을 읽을 때 오른쪽 지면만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책에는 원래 중복된 내용이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는 어떤 책이든 69쪽을 읽은 다음 그 책이 계속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도 했다. 매클루언의 경우 신경질환과 관련이 없으니 신경다양적 독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읽기 방법의 독특함 때문에 신경전형적 독자로 단정짓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루버리 교수는 읽기란 단일한 공통점이 없는 활동이라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그는 전형적인 독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독자는 비전형적이라고 주장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도 자신의 첫 저서 ’실어증 연구‘에서 "누구나 자기 자신을 관찰해보면 읽기에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사실, 심지어 이해하지 않고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썼다.


책에는 독특한 읽기에 대한 수많은 사례가 언급된다. 질 프라이스는 최초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은 미국 여성이다. 그는 14세 이후로 일어난 일을 모두 기억한다. 날짜를 말하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해낸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과거에 대한 생각이 홈비디오처럼 끊임없이 재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라이스에게 이는 고통이다. 개인적이지 않은 문제들에 집중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프라이스는 2008년 ‘잊을 수 없는 여성(The Woman Who Can’t Forget)’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대부분 말을 하고 글을 읽기 때문에 우리는 읽기와 말하기를 단순한 행위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루버리 교수는 읽기는 근본적으로 말하기와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읽기는 말하기와 달리 우리 뇌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다.


앞서 밝혔듯 읽기는 수많은 감정적·인지적·언어적·지각적·생리적 과정을 동기화해 일어나는 복잡한 행위이며 따라서 읽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루버리 교수는 주장한다.


그는 오히려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수많은 다양한 읽기의 방법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읽고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나브코프나 프라이스의 사례처럼 읽기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례들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개의 경우 인류가 아직 밝혀내지 못한 뇌의 신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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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못하는 사람들 | 매슈 루버리 지음 | 장혜인 옮김 | 더 퀘스트 | 408쪽 | 2만2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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