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 인상 방침을 공식화하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바이든 대통령도 대규모 관세 카드를 꺼내 들면서 향후 누가 이기든 미·중 통상갈등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중국 철강 관세 인상 방침 공식화
바이든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미국철강노조(USW)와 만나 “중국은 경쟁이 아닌 부정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대중 관세 인상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는 중국 당국이 자국 철강기업들에 제공하는 대규모 보조금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과잉 생산, 덤핑 판매 등의 여파가 미치고 있다면서 "갈등이 아닌, 중국과의 공정한 경쟁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들은 외국인을 혐오(xenophobic)한다"면서 "그들에게는 진짜 문제가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중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를 최대 3배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한 상태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조만간 검토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확인했다. 시행으로 이어질 경우 현재 7.5% 수준인 중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는 25%까지 오르게 된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제경제위원회 위원장 역시 브리핑에서 "중국의 과잉생산은 미국 철강 및 알루미늄 산업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관세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백악관은 철강에 이어 중국 조선, 해운, 물류업 등에 대한 조사도 돌입한 상태다.
바이든, 관세카드 왜 꺼내 들었나
한때 트럼프 전 행정부의 대중 고율 관세 조치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던 바이든 행정부가 이처럼 대대적인 관세 카드를 꺼내 들고 나선 배경에는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 표심이 존재한다. 이번 대선에서 러스트 벨트를 중심으로 한 주요 경합주 내 노동자의 표심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이를 겨냥한 공약 경쟁에 나선 셈이다.
특히 러스트벨트 내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 미시간주는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수성해야만 하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여유롭게 승기를 잡았던 2020년 대선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전미자동차노조, 철강노조의 지지 선언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소폭 밀리는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 당장 일자리, 생계 위협에 처한 이 지역 노조원 상당수가 60% 관세 등 대중국 강경 노선을 취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돌아선 셈이다.
CNN방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중 관세를 자신의 글로벌 경제전략의 핵심 특성으로 삼아왔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 근로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관세 인상을 추진함으로써, 자신이 중국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약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야후파이낸스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캠페인 전략이 어느 정도 매력적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했다. 지금 바이든 대통령이 하고 있는 것은 약간 트럼프스럽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주요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새 관세를 공식화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제노포빅'이라고 언급한 것에 주목하며 "세계 2위 경제대국(중국)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쏟아낸 가장 신랄한 질책"이라고 전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철강 노조원들 앞에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막겠다고 재차 선언한 것 역시 러스트벨트 노동자 표심을 노린 행보다. 그는 "US스틸은 완전히 미국 회사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US스틸은 지난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일본제철과의 합병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했으나, 향후 미 법무부, 외국인투자자심의위원회 등의 승인을 거쳐야만 한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이번 합병을 무조건 막을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미·중 통상갈등 심화할 듯
미 철강업계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관세 조치에 즉각 환영 의사를 표했다. 전미철강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전 세계 철강 과잉 생산의 가장 큰 원인인 중국이 미국 철강업 전체에 해를 끼치는 광범위한 무역관행에 가담하고 있다"면서 "관세 인상 조치에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관세 카드는 통상갈등 우려를 부추기는 것은 물론, 그간 미·중 관계 회복을 추진해온 바이든 대통령의 노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선을 앞두고 미·중 관계에서 파열음을 피해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만은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2주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전화회담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진행됐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철강 관세가 시 주석과의 관계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일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조치가 백악관의 복잡한 정치, 외교적 순간에 이뤄졌다면서 "이번 관세 인상은 양국이 몇달간의 신중한 외교 끝에 구축한 호의를 갉아먹어 버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야후파이낸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관세왕'이라는 자신의 왕관을 훔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며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두 대선 후보의 중국 때리기가 심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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