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용부동산(CRE)이 은행권의 하방 리스크다."(마틴 그루엔버그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
이른바 뱅크데믹(은행+팬데믹) 공포감을 고조시켰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터진 지 10일(현지시간)로 1년이 됐지만 또 다른 위기의 불씨는 남아있다. 연초부터 CRE 대출 부실 우려로 시장을 뒤흔든 뉴욕커뮤니티은행(NYCB)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장 1조달러 이상의 CRE 대출 만기가 내년 중 도래한다.
블룸버그통신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SVB 파산 1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NYCB 사태가 덮치면서 지역은행을 둘러싼 부실 우려가 재차 부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SVB 파산 이후 우려했던 위험한 신용위축은 확인되지 않았고 미 경제와 증시도 예상보다 호조"라면서도 "CRE 대출 부실 우려가 이어지며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계감을 풀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뱅킹다이브 역시 SVB 파산 1년 시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영역으로 늘어난 부실은행, 일관성 없는 규제 등과 함께 CRE 노출을 꼽았다.
모건스탠리 등에 따르면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1조달러 규모의 CRE 대출 가운데 약 70%는 중소·지역은행이 안고 있다. 금리와 공실률 모두 높은 상황에서 이를 한꺼번에 상환하거나 훨씬 높은 금리로 재융자해야 하는 은행권으로선 부담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3월 SVB 파산으로 시작된 은행 부실화 공포가 이번엔 CRE 시장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가 쏟아지는 배경이다.
특히 월가에서는 자산가치가 대출 규모를 훨씬 밑도는 CRE도 두 자릿수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부동산 시황 악화로 이미 부실채권이 급증하고 있는 점도 우려점이다. FDIC는 2023년 4분기 미회수된 CRE 대출 규모가 13% 증가했다고 확인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CRE 대출 연체율이 2023년 말 2%대 초반에서 내년 5% 가까이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가운데 지난 1월 말부터 가시화한 NYCB 사태는 CRE 시장을 둘러싼 시장의 경계감을 급격히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자산 1000억달러 이상의 중형은행인 NYCB는 1월 말 공개한 4분기 실적이 CRE 대출 부실화에 대비한 대규모 대손충당금으로 예상 밖 손실을 기록하면서 즉각 주가 급락-신용등급 강등-예금 유출 등 혼란에 휩싸였다. 지난 6일 10억달러 투자금을 유치하며 겨우 급한 불은 껐지만 일부 은행들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투자자들로선 지난해 금리 급등에 따른 국채가격 급락과 이에 따른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파산까지 이른 SVB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니혼게이자이 자회사인 금융정보업체 퀵에 따르면 NYCB의 자기자본 대비 CRE 대출 비중은 미 규제당국의 기준(300%)을 훨씬 웃도는 500% 선에 육박한다. 자산 규모 40위 수준인 컬럼비아 뱅킹 시스템, 밸리 내셔널 역시 CRE 노출이 높은 곳으로 꼽혔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주 의회에서 "이 문제(CRE 노출)를 인식하고 있다"면서 "CRE 대출이 집중된 은행을 파악해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리스크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며 자칫 시스템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은 일축했다.
하지만 월가는 미국 내 부실은행이 급증하고 있는 데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대형 은행들의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FDIC가 공개한 지난해 4분기 부실 은행은 전기 대비 8곳(18%) 늘어난 52개로 파악됐다. 라구람 라잔 전 인도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신디케이트 칼럼을 통해 "SVB 사태 1년이 된 시점에서 이를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일부 부실은행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시스템 문제"라고 위기가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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