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업계, 테슬라 R&D 전략 따라잡기
중앙집중화 E/E 아키텍처 구현
자체 운영체제 개발·OTA 보편화
반도체부터 SW·클라우드까지 모두 개발
핵심 부품 내재화 전략 강화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에서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의 자체 운영체제(OS) 개발 전략을 발표하자 업계에선 '테슬라를 따라잡기 위한 공식 선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품질경영으로 하드웨어(HW)를 세계적 수준으로 높인 상황에서 소프트웨어(SW) 시장 공략을 위해 테슬라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 자리에서 고성능 컴퓨터의 SW로 HW를 모두 제어할 수 있는 ‘중앙 집중화 아키텍처’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SW 플랫폼의 본격 배포는 2025년, 양산차 적용 시기는 2026년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SDV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테슬라의 연구개발(R&D)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테슬라는 이미 10년 전부터 SDV의 표본을 만들었다. 최근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시도 중인 중앙 집중화 전기·전자 아키텍처 도입, 자체 OS 개발, 핵심부품 내재화 등의 전략이 이때 만들어졌다.
스마트폰처럼 무선업데이트(OTA) 적용한 車
테슬라의 R&D 역량이 드러난 시작점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테슬라는 당시 출시한 모델 S에 업계 최초로 무선소프트웨어업데이트(Over The Air·OTA)를 적용했다. 차량 SW 업데이트를 위해 서비스센터에 가지 않고 휴대전화처럼 와이파이 같은 무선망을 활용하는 것이다.
OTA의 진가가 드러난 건 모델 S가 출시 1년도 안 돼 잇달아 화재 사고로 위기를 맞았을 때다. 차체가 낮은 데다 배터리 팩이 바닥에 깔려있어 도로 위 파편이 튀면서 배터리팩에 구멍이 나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테슬라 엔지니어들은 차체를 2㎝가량 들어 올리도록 서스펜션 제어 SW 코드를 수정했다. 수정한 코드 배포는 실시간 무선통신으로 이뤄졌다. 기존 완성차 업체였다면 일일이 차주에게 연락을 취하고 가까운 정비소에 불러 수작업으로 서스펜션을 교체했을 일이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신차에 OTA를 도입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2021년 무렵이다. 현재까지도 내비게이션, 인포테인먼트 등 제한된 영역에서 업데이트만 활용된다. 테슬라처럼 주행 SW 관련 OTA를 전 차종에 적용하진 못하고 있다.
물론 테슬라가 OTA를 먼저 구현했다고 해서 SDV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건 아니다. OTA는 SDV 구현을 위한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업계에서 테슬라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중앙 집중화된 전기·전자 아키텍처를 먼저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 아키텍처 위에서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커넥티드 서비스 등 다양한 기능의 SW를 돌려볼 수 있게 된다.
테슬라는 2019년 출시된 모델3를 통해 중앙 집중형 아키텍처를 처음 선보였다. 직접 설계한 차량용 반도체(FSD칩)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를 통해 차량의 두뇌 역할을 하는 전자제어장치(ECU) 개수를 4개(주행 담당 1개·보디 컨트롤 3개)로 줄였다. 최고 사양의 펌웨어와 하드웨어를 갖춰놓고 돈을 낼 때마다 SW를 활용해 추가로 기능을 열어주는 획기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었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는 많게는 100개 이상의 ECU가 탑재된다. 사람으로 치면 팔·다리, 내장기관, 손가락 관절마다 뇌가 따로 붙어있는 셈이다. 이는 기존 완성차 업체의 수직계열화된 공급 구조 때문이다. 주문자위탁생산(OEM)은 1차 부품사에서 모듈화(덩어리)된 형태로 부품을 공급받는다. 각 모듈에는 HW와 이를 제어하는 ECU가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있다. 제조사는 1차 부품사에서 모듈을 공급받아 최종 조립하고 잘 작동하는지 검수한다.
하지만 신생 기업인 테슬라는 부품 설계부터 생산, 검수까지 직접 도맡아 했다. 테슬라 입장에선 팔과 다리마다 각각 뇌가 붙어있는 기존 완성차의 공급 방식이 오히려 기형적으로 보였다. 테슬라는 ECU 개수를 줄였을 뿐만 아니라 제어 방식도 기능에서 영역 중심으로 전환했다. 이렇게 되면 전자장치의 배선(와이어링 하네스) 작업이 단순해진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배선 공정이 줄어들면 인건비 절감에 따른 원가 하락은 물론 차량 경량화도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실제로 테슬라는 모델3의 배선 길이(1.5㎞)를 이전 차종 대비 절반으로 줄였고 그다음 출시한 모델 Y에서는 1㎞까지 단축했다.
반도체부터 차량용 OS·SW·클라우드까지
테슬라의 또 다른 경쟁력은 반도체 설계부터 전기전자 아키텍처, SW 운영체제, 사용자 중심 SW,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모두 아우르는 풀스택(full stack) 개발 방식이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표방한 ‘칩투팩토리’ 전략도 큰 틀에서 보면 테슬라가 먼저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테슬라는 일찍이 자체 OS를 구축했다.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차량용 OS 시장 규모는 2022년 5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2032년(195억달러)까지 연평균 13%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규모뿐만 아니라 시장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도 자체 차량용 OS 개발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이 스마트폰의 표준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점도 자체 OS인 ‘iOS’의 공이 컸다.
최근 완성차 업계도 자체 OS 개발에 열을 올리며 테슬라 따라잡기에 나섰다. 다만 OS 구현에서 자체 개발의 비중을 얼마나 두느냐가 관건이다. 테슬라처럼 1부터 10까지 모두 자체 개발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기존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도움을 받으면 수익을 나눠야 하기에 원가가 올라간다.
테슬라의 경쟁력은 디자인·기능에 대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집념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머스크 전기를 보면 회사 설립 초창기 모델S 디자인을 두고 의견충돌이 벌어진 과정이 묘사돼 있다. 차 바닥에 배치하는 배터리 두께가 너무 얇아지면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엔지니어들과 디자인을 위해 최대한 얇게 만들자는 머스크 CEO가 강하게 충돌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논쟁은 배터리팩을 차체와 한몸으로 만드는 혁신으로 이어졌다. 최적의 과제를 설정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기술과제에 도전하면서 오히려 새로운 방식을 개척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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