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 북극한파가 몰아치자 방전된 전기차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 못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기차 충전소마다 충전 대란이 벌어졌다. 강추위에 방전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또 다른 요인이 되기도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겨울철에 주행거리가 약 20%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온에서 강한 새로운 이차전지가 막 상용화되고 있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영하 20도의 혹독한 환경에서도 90%의 방전 효율을 나타낸다. 게다가 값도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싸다. 최대 단점은 에너지밀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나트륨이온 배터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곳은 중국과 인도다. 최근 유럽, 미국에서도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단지 '값싼 중국 배터리'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에선 리튬의 가격이 최근 폭락하면서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가격적 메리트가 사라졌다는 분석도 있다. '도착 즉시 사망(DoA·Dead on Arrival)'이 될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누구 얘기가 맞을지는 곧 판가름 날 것이다.
진짜 소금으로 배터리를 만든다고?
나트륨이온 배터리(Natrium-ion Battery)는 양극에 나트륨을 주원료로 쓰는 이차전지를 말한다. 나트륨은 영어권에서 소듐(Sodium·Soda에서 유래)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소듐이온 배터리(SiB)라고도 부른다.
주기율표상 11번인 나트륨(Na)은 3번 리튬(Li)과 함께 1족 원소에 속하는 알칼리성 원소다. 전자 1개를 잃고 이온화되기 쉽다는 점에서 리튬과 특성이 유사해 오래 전부터 이차전지 소재로 연구돼 왔다.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구조와 작동 원리 역시 리튬이온 배터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기존 공정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트륨 이온 배터리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20~40%가량 저렴할 것으로 예측된다. 최대 3분의 1 가격으로 생산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에너지 분야 시장조사 업체인 우드 매켄지는 양극에 층상 산화물을 사용할 경우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가격이 킬로와트시(kWh)당 123달러, 프러시안 화이트를 사용할 경우 90달러까지 내려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IDTechEx는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평균 가격이 킬로와트시(kWh)당 87달러를 형성할 것으로 평가했다. 철과 망간을 사용할 경우 가격은 2030년 40달러/kWh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2023년 리튬이온 배터리 평균 가격인 139달러/kWh보다 28% 저렴한 수준이다.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가격을 이처럼 낮출 수 있는 것은 원료를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트륨은 리튬보다 더 훨씬 풍부하고 저렴하다. 나트륨은 지구상에서 6번째로 흔한 원소로 지각의 약 2.6%를 구성하고 있다. 바닷물이나 암염에서 쉽게 추출할 수 있다. 나트륨은 또한 알루미늄과 잘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음극 집전체로 값비싼 구리 대신 알루미늄을 사용할 수 있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양극활물질로 프러시안 화이트(Prussian white), 층상산화물(layered oxide), 폴리음이온(polyanion) 등을 사용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사용하는 코발트, 니켈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가격을 낮출 수 있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저온 특성이 우수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영하 20도의 온도에서 여전히 90%의 용량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우 같은 조건에서는 약 60~70%로 용량이 저하된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여러 한계로 그동안 상용화가 쉽지 않았다.
우선 나트륨 원자는 리튬보다 무겁고 부피가 커서 에너지밀도에서 불리하다. 나트륨의 원자량은 몰(mol)당 23g으로 리튬(6.9g/mol)의 약 3.3배에 달한다. 또 나트륨의 표준환원전위는 -2.7볼트(V)로 -3V인 리튬보다 0.3V 높다. 에너지밀도(=전압 X 용량/무게)가 낮을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개발된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중량당 에너지밀도는 약 140~160와트시(Wh/kg)로 인산리튬철(LFP) 배터리나 삼원계 배터리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엔 양극 물질의 조성 변화 등을 통해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를 높이는 연구가 한참 진행 중이다. 중국의 CATL은 200Wh/kg 수준까지 에너지밀도를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음극에 흑연을 사용하기 어렵다. 리튬이온의 크기는 0.076나노미터(nm)로 흑연의 층간( 0.34nm)에서 삽입과 탈리가 쉽다. 반면 나트륨의 이온 크기는 0.102nm로 흑연의 층간 구조에서 삽입 반응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대안으로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음극에 흑연에 비해 층간 구조가 넓은 하드 카본(0.37nm)을 많이 사용한다. 단, 하드 카본은 흑연보다 비싸고 에너지 용량이 낮다는 단점이 있다.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부에서는 나트륨이온 배터리가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안전하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네덜란드 공공 안전연구소(The Netherlands Institute for Public Safety)가 2023년 발간한 보고서(Exploration of future battery types and safety)에 따르면 나트륨이온 배터리 역시 리튬이온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열 폭주 현상이 발견됐다. 다만 열폭주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느리게 진행됐다.
나트륨은 또한 반응성이 매우 강한 불안정한 물질로 취급하기 어렵다. 나트륨이 물과 만나면 높은 열과 함께 수소 가스가 발생(2Na + 2H2O →2NaOH + H2)하면서 폭발한다. 나트륨 금속은 공기와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등유에 넣어 보관한다.
개화하는 시장…中은 이미 상용화
나트륨이온 배터리 연구 및 상용화에 가장 앞선 곳은 중국이다.
중국 최대 배터리 기업인 CATL은 2021년 차세대 배터리로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개발,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전까지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무겁고 에너지밀도가 낮아 전기차에 탑재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리튬 가격이 폭등하자 가격이 저렴한 나트륨이온 배터리가 주목을 받게 됐다. CATL은 1세대로 160Wh/kg급의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선보였으며 200Wh/kg의 성능을 가진 2세대 배터리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BYD도 나트륨이온 배터리 개발에 나섰다. BYD는 지난 1월 4일 쑤저우에서 나트륨이온 배터리 공장 착공식을 가졌다. BYD는 약 100억위안(1조8627억원)을 투입해 연간 3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앞서 BYD의 자회사인 핀드림배터리는 삼륜차 기업인 훼이하이(Huaihai)와 나트륨이온 배터리 공장 건설을 위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BYD의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이륜 및 삼륜차, 소형 전기차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상용화에 나선 곳도 있다. 중국 JAC는 지난해 12월 27일 중국에서 최초로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자동차의 생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자동차는 올해 1월 말부터 인도될 예정이다. 25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했으며 한번 충전에 252km를 주행할 수 있다. 셀 단위 에너지밀도는 140Wh/kg이다.
이 자동차에는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하이나배터리의 32140 원통형 배터리가 탑재돼 있다. 하이나배터리는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가 2017년 설립한 곳으로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JAC의 모회사인 JAG는 중국 정부와 폭스바겐이 각각 50%씩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중국뿐 아니라 인도도 나트륨이온 배터리에 진심을 보이고 있다.
인도 최대 그룹인 릴라이언스는 2021년 12월 영국 파라디온(Faradion)사의 지분 100%를 약 1억파운드에 인수했다. 2011년 설립된 파라디온은 이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 곳으로 알려졌다. 파라디온은 2022년 12월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에 처음으로 자사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NCM의 산실, 아라곤 연구소도 특허 출원
아시아뿐 아니라 서구권에서도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속속 뛰어들고 있다.
지난 1월 8일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아르곤국립연구소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새 양극 소재를 개발하고 특허를 등록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를 이끈 이는 크리스토퍼 존슨 선임 연구원이다. 그는 마이클 태커레이, 카릴 아민 등과 함께 니켈망간코발트(NCM) 양극재를 개발한 주인공이다.
연구팀은 NCM 양극재에서 변형된 니켈망간철(NMF) 나트륨이온 배터리 양극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아르곤 연구소는 10년 이상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연구한 결과 층상구조를 가진 양극재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또 양극에 코발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값이 저렴하다고 강조했다. 이 배터리는 한번 충전 시 180~200마일(289~321km)을 주행할 수 있는 성능을 보유했다.
스웨덴의 노스볼트도 2023년 11월 160Wh/kg의 에너지밀도를 갖는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배터리는 파우치 형태이며 양극에 프러시안 화이트, 음극에 하드 카본을 사용했다.
노스볼트 측은 "최초로 프러시안 화이트 기반의 배터리를 생산하고 시장에서 상업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나트륨, 철 등 풍부한 광물을 이용해 생산하고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급망 측면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프랑스의 티아마트(Tiamat)는 2029년까지 연간 5GWh 생산 능력을 갖춘 나트륨이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1단계로 2025년까지 700메가와트시( MWh) 규모의 공장을 짓는다. 티아마트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로부터 분사한 나트륨이온 배터리 전문 기업이다. 이 회사는 1월 다국적 자동차 기업인 스텔란티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나트륨이온 배터리에 대한 연구개발(R&D)이 활발하지 않다. 민간 기업에서는 에너지11이 나트륨이온 배터리셀을 개발하고 있다. 애경케미칼은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음극 소재로 사용하는 하드 카본을 생산하고 있다.
리튬값 폭락하는데…
나트륨이온 배터리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국내 업계에서는 나트륨이온 배터리가 무겁고 에너지밀도가 낮기 때문에 시장이 이륜차 및 소형 자동차, 에너지저장장치(ESS)에 한정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지역적으로 보면 시장이 중국과 인도, 동남아 등으로 국한된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그동안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한된 인력과 자원으로 나트륨이온 배터리까지 개발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자국 내 시장만 보더라도 나트륨이온 배터리 개발과 생산에 나설 유인이 충분했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인근 동남아 시장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리튬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는 사실도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가격이 더 내려가면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최대 강점인 가격적인 메리트가 떨어진다.
2024년 1월 기준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리튬은 2022년에 비해 약 80%가량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블룸버그 NEF는 2027년에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가격이 100달러/kWh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배터리 가격이 100달러/kWh 아래로 내려가면 전기차의 생산비용이 기존 내연 기관차와 비슷해진다.
하지만 최근 미국, 유럽 기업들까지 나트륨이온 배터리에 관심을 두면서 안착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특히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등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의 주원료들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가격이 저렴하고 매장량이 풍부한 원료를 사용하는 나트륨이온 배터리가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정부도 올해부터 나트륨이온 배터리 연구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시장조사기관들도 잇따라 나트륨이온 배터리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IDTechEx는 2025년까지 약 1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나트륨이온 배터리가 사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후 연평균 27%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2033년에는 사용량이 70GWh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SNE리서치는 나트륨이온 배터리가 2035년 LFP 대비 최소 11%, 최대 24% 저렴하게 생산될 것이라며 2035년에는 최대 254GWh의 시장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연간 142억달러(약 19조원) 규모다.
<참고문헌>
유진투자증권, 나트륨이온배터리 게임체인저가 될 것인가, 2023.2. 24
electrive, Reliance takes over Faradion for ?100 million, 2022.1.18
IDTechEx, Sodium-Ion Batteries Will Diversify the Energy Storage Industry, 2023.1.10
Wood Mackenzie, Sodium-ion batteries: disrupt and conquer?, 2023.2.21
IDTechEx, HomeTechnologiesResearch HighlightsCheaper and Safer Sodium-Ion Batteries on the Horizon, 2023.7.14
PV Magazine, Sodium-ion battery fleet to grow to 10 GWh by 2025, 2023.7.17
Fraunhofer ISI, Alternative Battery Technologies Roadmap 2030+, 2023.9
The Netherlands Institute for Public Safety, Exploration of future battery types and safety, 2023.10.16
Power Technology, Sweden’s Northvolt makes breakthrough in sodium-ion battery technology. 2023.11.22
Inside Evs, Are Sodium-Ion Batteries Dead On Arrival? An Expert Weighs In, 2023.12.3
Car news China, BYD starts construction of 30 GWh sodium-ion battery plant in China, 2024.1.5
ARGONNE NATIONAL LABORATORY, Cathode innovation makes sodium-ion battery an attractive option for electric vehicles, 2024.1.8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