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美시민단체 '에퀴문도' 개리 바커 대표
평등 실현돼야 한국 저출산 해결
육아 원활할 때 기업 생산성 높아져
"남성들은 육아휴직 제도가 정상화되고 규범화될 때까지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남성 기업 대표, 부처 장관들이 직접 육아휴직을 떠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글로벌 아빠 육아’ 현황을 연구하는 미국 시민단체 ‘에퀴문도’의 개리 바커(Gary Barker) 대표는 25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직장 내에서 육아휴직 활용률을 높이려면 단순히 휴가를 장려하는 것 이상의 행동을 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관리자부터 먼저 나서지 않고서는 남성의 육아 참여 환경이 여성과 엇비슷해질 수조차 없다는 얘기다.
에퀴문도를 창업해 이끌어온 바커 대표는 아빠 육아 연구 전문가로 유엔여성기구(UN Women), 미국 의회 등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다. 에퀴문도는 2015년부터 2년마다 ‘세계 아버지 현황 보고서’를 발간하며 최근 10년 가까이 미국, 중국 등 세계 15개국의 아빠 육아 현황을 세세하게 추적했다. 지난해 발표한 ‘2023년 세계 아버지 현황 보고서’는 남성이 자녀 육아에 대한 책임감은 있지만, 정작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는 현실을 핵심적으로 지적했다.
바커 대표는 인터뷰 내내 현재 세계적으로 ‘돌봄 불평등’이 만연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자녀와 가정을 돌보는 시간이 남성 대비 3배 이상"이라며 "여성이 집 밖에서 일하며 돈을 벌더라도 여전히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돌봄 노동을 더 많이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주요 원인으로는 남녀의 임금 격차를 꼽았다. 바커 대표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더 적은 시간 일하고, 직업을 바꾸고, 아이가 태어난 후 직장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며 "사회적 규범 때문에, 또는 직장에서 더 많은 급여를 받기 때문에 부부가 이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에 따라 부부는 불평등의 순환을 반복한다"고 분석했다.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인식의 문제도 지적됐다. 바커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는 가정에서의 노동이 부차적이며, 남성의 일이 아니라고 계속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 전반에서 육아가 원활히 이뤄져야 가정과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사실도 간과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세상의 어떤 경제도 돌봄 노동 없이는 생산적일 수 없다"며 "우리는 그것을 가시화하고, 따져본 후 남성도 역할을 다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직원 복지가 기업 생산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통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커 대표는 "우리 모두가 가정에서는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고, 직장에서도 사회적 생활을 하고 있다"며 "이 모든 과정이 생산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는 남성 스스로와 가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바커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우리가 아이들과 더 많이 연결될 때 남성들에게도 좋다"며 "보고서를 만들면서 자신의 정신 건강이 좋아지고, 자녀와 더 가까운 관계를 가진 남성들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바커 대표는 성별 구분 없이 어린 시절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육아와 집안일 자체가 가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키고, 남녀가 동등하게 일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들이 딸들만큼이나 육아에 개입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특히 임신, 출산 그리고 자녀와 유대감을 형성해야 하는 유아기 때부터 남성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남성들 사이에서 ‘건강한 남성성’이 주요 가치가 돼야 한다고 바커 대표는 주장한다. 이는 폭력보다 평화와 대화를 중시하는 남성다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소중히 여기고 모든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동등하게 대하는 남성다움을 의미한다.
그는 돌봄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의 정책적인 보완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바커 대표는 "남성의 소득이 여성보다 계속 높고 육아가 개인의 부담인 한, 아이가 태어난 후 여성이 직장을 떠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악순환을 끊는 유일한 방법은 유급 휴가, 유연한 근무 정책, 여성의 완전하고 평등한 참여를 약속하는 직장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의지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바커 대표는 "남녀 임금 격차 공개, 육아휴직 의무화 등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해결책은 국가나 기업이 실행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남녀 돌봄 평등이 실현돼야 한다고 밝혔다. 바커 대표는 "한국 여성들은 아이가 있으면 집 밖에서 생활하는 것이 극도로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부부가 자녀를 갖기를 원한다면 남녀평등과 함께 남성이 육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 88% "아빠 육아휴직 필요"
돌봄 불평등의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2023년 세계 아버지 현황 보고서'를 통해 남성이 자녀 육아에 대한 책임감은 있지만, 정작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현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남녀 모두가 직장 내에서 육아휴직 등 유급 돌봄 휴가를 활용할 의지가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일가정 양립 정책 확대와 정부의 관련 지원이 절실하다고 보고서는 강조한다.
지난해 에퀴문도와 미국의 데이터 수집 업체인 렙 데이터(Rep Data)가 전 세계 15개 국가의 1만19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발간한 세계 아버지 현황 보고서 결과, 남성(89%)은 여성(81%)보다 더 '돌봄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답변했다. '배우자와 돌봄의 책임을 동등하게 공유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도 남성(87%)이 여성(74%)보다 높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 세계 평균치를 살펴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집 청소(1.36배), 육체적 보육(1.32배), 감정적 보육(1.26배), 요리(1.17배) 등에서 더 많이 일했다. 이에 따라 '배우자와 돌봄 노동을 함께하는 방식이 스트레스로 느껴진다'는 응답은 남성(50%)보다 여성(55%)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돌봄 격차의 원인으로는 임금 격차가 전제돼 있다고 분석됐다. '상대가 더 높은 보수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 돌봄 노동을 더 많이 한다'는 응답은 여성(59%)이 남성(42%)보다 높았다.
돌봄 휴가(출산·육아휴직, 가족 책임 휴가 등 포함)를 받았지만 가능한 모든 휴가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 중 가장 많은 비율(남성·여성, 49%)이 '유급 휴가를 받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방해 요인으로 꼽았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직장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40%), 휴가 사용을 지원하지 않는 관리자(36%), 친구나 동료의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18%) 순이었다.
보고서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유급 육아휴직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여성의 87%가 '엄마 육아휴직'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고, 남성들의 88%도 '아빠 육아휴직'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보고서는 남성 육아휴직의 기간이 여성의 육아휴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고 지적했다.
적지않은 부모가 더 많은 유급 휴가 시간을 갖기 위해 기꺼이 조치를 취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특히 이사 및 퇴사를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에 대해 긍정하기도 했다. 남성의 경우 45%가 전직을 할 의향이 있으며 29%는 퇴사를 할 의향도 있다고 응답했다. 여성도 40%가 전직을 할 의향이 있고, 25%가 퇴사를 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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