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세계적 석학들로부터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안내자”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 저술가” 등의 호평을 받은 신경과학자 로버트 M. 새폴스키의 저서다. 집필에만 10년이 걸린 역작으로, 분량만 1040페이지에 달한다. ‘왜 인간은 서로에게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굴고, 또 때로는 더할 나위 없이 너그러워지는가’란 주제에 천착했다. 잔인함 이면에 이타성을 지닌 인간이란 존재의 양면성을 두고 저자는 신경생물학부터 뇌과학, 유전학, 사회생물학, 심리학을 넘나들며 깊이 있게 분석한다. ‘인간은 폭력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잘못된 종류의 폭력과 잘못된 맥락의 폭력을 싫어하고 겁낼 뿐이다’라는 전제 아래 인간의 이타성을 생물학적 관점으로 풀어낸 해석이 흥미롭다.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문학동네)
◆아니 에르노의 말=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와 사회학자 로즈마리 라그라브의 대담집이다. 2021년과 2022년 두 번에 걸쳐 ‘페미니스트 계급 탈주자들의 경험과 글쓰기’라는 주제로 진행한 대담을 정리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경험을 분석하며 이를 통해 문학, 사회학, 젠더, 노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의 삶과 작품 세계 그리고 더 나아가 문학이 지닌 사회적이고 정치적 면모를 들여다본다. 자신의 체험을 글감으로 삼는 것으로 잘 알려진 에르노의 작가적 면모와 함께 여성 문제에 거침없이 발언하는 페미니스트적 근원도 확인할 수 있다. 에르노는 그런 자각의 근원에 ‘독서’가 있었다며, 책 ‘제2의 성’을 자신을 키운 책으로 소개한다. “사회가 성차로 구분되어 있고 남자들이 특권을 누린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 얼마나 흥분되던지...” (아니 에르노 외 1명 지음·마음산책)
◆파서블=“무작정 쓰는 기록은 낙서에 불과하다.” 국내 1호 기록학자이자 메모광인 저자는 메모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과와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열심히 적어놓고 실행하지 않거나, 옮겨 적었을 뿐 자기화하지 못한다면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메모를 바로 활용하기 위해서 일 년 단위가 아닌, 한 달 단위로 기록하기를 권한다. 1년은 너무 광범위해 기록과 목표를 연동해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달을 기준 삼았을 때 하루, 일주일을 바라보는 시야가 열리고, 이를 통해 일 년에 12번 새롭게 다짐할 기회가 생긴다고 강조한다. 전작 ‘거인의 노트’가 기록 자체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다뤘다면, 이번 책은 실천을 위한 기록법에 초점을 맞췄다. (김익한 지음·인플루엔셜)
◆감정경제학=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의 논리적 사고가 문명 발전을 이끈 건 사실이지만, 평범한 일상은 그런 고차원적인 논리로만 이뤄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은 근심과 걱정, 불안과 우울감 속에서 감정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비논리적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충동적 쇼핑 같은. 저자는 소개팅을 하거나, 유튜브 쇼츠를 보거나, 가스라이팅의 위험에 시달리는 것 모두가 이런 배경에 근거한 경제 현상이라며 그 안에서 맥락을 짚어낸다. 이성적 선택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결정이, 물건보다 기분을 소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그 감정을 읽을 줄 알아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원경 지음·페이지2북스)
◆국토박물관 순례=‘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후속 기획 시리즈다. 우리 역사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며 각 시대를 대표하는 지역과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30년에 걸쳐 우리 국토를 소개해왔지만, 다 소개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를 체감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국토를 전부 다루려면 지금까지 써온 만큼 더 써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삶이 허락지 않을 것. 완간 방법을 고민한 끝에 아직 다루지 않은 유적지를 선사시대부터 삼국·가야·발해·통일신라·고려·조선·근현대의 역사 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답사’를 ‘순례’로 바꾼 대신, 기행문학으로서 답사기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했다. 1권은 선사시대에서 고구려시대를, 2권은 백제,신라, 가야시대를 다뤘다. (유홍준 지음·창비)
◆지구법학=문학과지성사와 재단법인 ‘지구와사람’이 함께 선보이는 ‘지구와 사람’ 시리즈의 첫 책이다. 지구법학이란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과 생태계, 자연을 법적 주체로 삼는 법체계 학문이다. 인간, 기업, 선박 등에만 적용되어온 법인격을 자연으로 확대해 존재론적 의미와 보호 방안을 철학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의도다. 지구법학을 헌법학과 법철학, 정치학, 사회학, 정치생태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에서 논한 10편의 글을 담았다. 국내에선 지난달 제주도가 제주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법인격이 부여된다면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소송을 통해 권리 회복에 나설 수 있다. (지구법학회 지음·문학과지성사)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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