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어능력 작년보다 하락해 49위…中·日은 더 떨어져

지난 4년간 동아시아 성인 영어능력 약화
“코로나19 유행과 정치적인구적 변화 영향” 분석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영어 능력이 1년 전과 비교해 하락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스위스의 영어교육 기업 ‘에듀케이션 퍼스트’(EF)는 ‘2023 영어능력지수’(EPI·English Proficiency Index)를 공개했다.

EF는 2011년부터 자사의 영어 표준화 시험인 EF SET(EF Standard English Test) 결과를 분석, 비영어권 국가의 영어능력지수 순위를 발표해왔다. 올해 영어능력지수는 지난해 EF SET에 응시한 113개국 18세 이상 220만명 성적을 토대로 산출했다.

해당 순위에서 1위는 네덜란드가 차지했으며, 그 외에도 유럽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2위로 2년 연속 아시아 국가 중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은 49위로 지난해 36위에서 13계단 하락했다. 중국은 82위, 일본은 87위로 각각 지난해보다 20계단, 7계단 떨어졌다.

아시아에서 필리핀(20위), 말레이시아(25위), 홍콩(29위) 등이 한국보다 순위가 높았으며, 베트남(58위), 인도·방글라데시(60위), 인도네시아(79위) 등이 중국 일본보다 위였다.

1∼12위는 ‘매우 높은 능력’, 13∼30위는 ‘높은 능력’으로 평가되며 한국이 속한 31∼63위는 ‘보통의 능력’ 평가 구간이다. 중국·일본의 64∼90위는 ‘낮은 능력’, 92∼113위는 ‘매우 낮은 능력’이다.

방과후학교 영어수업을 경청하고 있는 중학생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F는 “지난 4년간 동아시아에서 성인 영어능력이 약화했고 특히 일본에서는 10년간 약화했다”며 “같은 기간 동아시아에서 미국 대학에 입학한 학생 수가 크게 줄었는데 한국 학생은 2020년에 비해 올해 20%, 중국 학생은 30%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제한의 영향도 있지만, 영어능력 저하는 더 광범위한 정치적·인구적 변화 징후”라며 ”또한 교육에서 서구 문화 패권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영어 교육이 퇴조세다. 중국 당국은 가정 경제 부담을 줄이고 자본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겠다며 2021년 7월 초·중학생들의 숙제와 과외 부담을 덜어주는 ‘솽젠(雙減) 정책’을 통해 사교육을 엄격히 규제했다. 이에 따라 영어를 비롯한 방과 후 사교육이 금지되면서 관련 기업·학원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고 수십만명이 실직했다.

지난 3월에는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 위원이 대학 입학시험에서 영어를 필수 과목에서 선택 과목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작년 3월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영어 수업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제안이 나와 찬반 논란을 일으켰다.

영어 수업 축소를 제안한 이들은 서방 영향력을 더욱 줄이고 대신 중국 문화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하는 측에서는 영어 교육 축소가 학문 발전을 방해하는 쇄국주의라는 입장이다.

미국 몬태나대에서 중국 문제를 연구하는 덱스터 로버츠는 지난 2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이는 미국 등 서방과 덜 우호적인 관계라는 더 큰 문제의 징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