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에는 AI·반도체 실적 숫자로 확인하는 시기
고대역폭메모리 등 투자 관련 반도체 수요 많아
가전·핸드셋 등 소비 관련 반도체 전망은 밝지 않아
미국의 컴퓨터 그래픽 처리용 반도체(GPU) 설계회사 엔비디아(NVIDIA)가 예상치를 훌쩍 웃도는 '깜짝 실적'을 발표하자 시장이 환호했다. 지난 상반기 역대급으로 부진했던 반도체 업황이 올 하반기부터 개선될 것이라는 기존의 전망에 힘을 싣는 계기가 됐다.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가 전해진 24일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인공지능(AI) 관련 종목이 일제히 들썩였다. SK하이닉스(4.22%)·DB하이텍(2.13%)·삼성전자(1.64%) 등 반도체 대기업의 주가가 동반 상승 마감했다. 생성형 AI 오피스 플랫폼 출시를 앞둔 폴라리스오피스는 가격제한폭(30%)까지 치솟았고, 브리지텍(9.82%)·솔트룩스(9.12%)·마음AI(8.45%) 등 AI 관련 종목도 강세를 보였다. 아울러 AI를 활용한 의료 로봇 개발 업체인 큐렉소(18.73%), AI 신약 개발기업 신테카바이오(15.56%), AI 활용 이상탐지 및 예측 솔루션 개발기업 모아데이타(14.44%) 등 AI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산업군 종목도 급등세로 마감했다.
엔디비아발 훈풍에 힘입어 이날 코스피도 전 거래일 대비 1.28% 오른 2537.68에 장을 마쳤다. 지난 1일(1.31%) 이후 약 3주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AI 모멘텀이 예상보다 강한 것으로 확인되며 반도체 업종이 지수 전반 반등을 주도했다"며 "AI가 주도하는 산업 패러다임 변화는 (금리 인상 이슈 등의) 거시경제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다는 인식으로 반도체의 주도주 지위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권가도 엔비디아의 호실적에 고무적인 분위기다. 최근 영국의 반도체 설계기업 ARM이 나스닥 상장을 신청한 데 이어 엔비디아의 급격한 성장세가 글로벌 반도체 업황 반등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황의 (개선) 방향성 자체는 명확해졌다"면서 "재고 하락 시작에 따른 평가손실 축소와 AI 수요 강세로 수혜 강도에 따라 3분기부터 디램(DRAM) 업계는 순차적으로 턴어라운드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도 "상반기에 AI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올랐다면 하반기는 이를 숫자로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국내는 AI와 관련한 하드웨어 주식이 주로 올랐지만 이제는 AI를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도 관심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IT 소비'는 부진하다는 점에서 개선의 강도가 종목별로 차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 사례가 퀄컴이다. 엔비디아의 급격한 주가 오름세와는 달리, 퀄컴 주가는 1년 반 넘게 부진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해 대조적인 모습이다. 퀄컴은 스마트폰용 반도체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서 소비지표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이에 비춰 국내 반도체 기업 중에서도 기존의 IT제품향 반도체보다는 인공지능(AI)용 고성능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선점에 따라 희비가 갈릴 전망이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투자 모멘텀을 받는 엔비디아는 좋고, 소비 모멘텀을 받는 퀄컴은 나쁘다"며 "둘 다 경기 민감주란 점에서 매출액 증가 패턴은 유사하지만, 그 추세가 구조적이냐 아니냐는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메모리 반도체도 마찬가지로 HBM 등 투자와 관련된 분야는 수요가 좋은 반면 가전·핸드셋 등 소비 관련 분야는 수요가 좋지 못하다"면서도 "한국 반도체는 소비 수요가 약하다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 하반기에는 완만한 아웃퍼폼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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