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은 정책홍보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우선 언론을 우군으로 예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은 우리 사회의 이념 대결을 반영하며 여권에 적대적인 쪽에 가깝다. 한 뉴스-블로그 빅데이터 분석 사이트에서 7월 17일 ‘윤석열’로 입력하니, 부정적 어휘량(63.2%)은 긍정적 어휘량(34.0%)을 압도한다. 모바일에서 여론의 흐름은 자주 우발적으로 바뀐다. 정부 정책에 관한 민심의 기류는 쉽사리 부정적으로 돌변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전격적이었고 외교·경제 면에서 의미 있는 이벤트였다. 그러나 다음 날 언론사 톱뉴스는 ‘오송 지하차도’였다. 대통령 지지도는 1%포인트 내렸다. ‘시럽급여’ 논란은 현재의 홍보 환경이 하나의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백척간두의 위태로운 상황임을 보여준다.
실업급여 수령자의 28%는 재직 때의 세후 급여보다 더 많은 실업급여를 타갔다. 고용노동부 차관은 "노동시장의 공정성 훼손"이라고 했다. 여권은 문재인 정부가 실업급여 하한액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 수준으로 높였고 이 여파로 고용보험기금이 고갈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업급여 하한액 인하를 역설했다. 여권의 정책홍보는 이러한 논리적이고 통계적인 설명에 그쳤어야 했다. 그러면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뉴딜’ ‘사막의 폭풍’ ‘오바마케어’ 같은 은유는 정책에 대한 주목도를 높인다. 반면 실업급여 축소 같은 정책을 홍보할 땐 대중이 정서적으로 동기화되지 않도록 무미건조한 용어를 써야 한다.
여권은 ‘시럽급여’라는 은유를 굳이 동원해 사회적 약자인 실업자를 오히려 자극했다. 그러자 "(실업급여 받은) 청년·여성은 자기 돈으로 살 수 없던 샤넬 선글라스를 산다"는 일선 직원의 공청회 발언까지 뉴스에 소환됐다. 야당과 노동계, 진보성향 언론은 ‘실업급여 덜 주려고’ ‘청년·여성 실직자 조롱한’ ‘비정한 정부·여당’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모바일에서의 뉴스 흐름을 보면 ‘고용보험기금 고갈’ 같은 실업급여의 실질적 문제는 ‘시럽급여’와 ‘샤넬 선글라스’가 촉발한 감정적 반응에 덮였다. 여권은 청년·여성층에서의 지지도 하락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전에도 고용노동부는 ‘탄력 근로’ 정책을 추진하다 야당이 이 말을 ‘주 69시간 근로’로 대체하자 홍보전에서 완패했다.
정책홍보는 잘 쓰면 마력을 발휘한다.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K-방역"이라는 기발한 정책홍보 용어를 들고나왔다. 그 결과, 코로나19 사태가 별로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K-방역 이미지는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승리에 큰 도움을 줬다.
정책홍보는 정책 실패까지 가려주진 않는다. 민주당 정부는 내로남불로 귀결된 적폐청산, 서울 집값 올린 부동산대책, 전력난 부른 탈원전, 중국 굴종 외교 같은 정책 실패를 겪었다. 정책을 수정하기보다는 선전·선동 수준으로 홍보에 더 몰입했다. 홍보에 진심이었지만 정권을 내준 이유다. 야당이 돼도 정책·홍보 간 불균형은 여전하다. 민주당은 정부 정책 대부분을 비난하고 보는 과열된 반정부홍보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권은 언론환경 등 홍보의 토양과 기본기를 돌아봐야 한다. 또 ‘시럽급여’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성찰해야 한다. 자비로운 보수주의에 바탕을 두면서 서민의 편익이 커지도록 서민 정책을 설계하고 홍보해야 한다.
허만섭 국립강릉원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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