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플 따라 자체 스마트폰 칩 설계 추진하다 난항
반도체 OS 모두 확보한 '애플 웨이' 추격 나서
파운드리도 삼성서 TSMC 이전 추진 보도
애플도 어려웠던 반도체 설계‥1980년대 쿼드코어 CPU 추진하다 실패
CPU 설계용 숨기고 도입한 슈퍼컴, PC 케이스 설계용 전락
애플 실리콘은 IT분야의 '메기'다. 애플이 자체 설계해 확보한 반도체는 이제 모든 애플 제품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다. 우수한 반도체를 확보한 애플은 더 나은 성능의 제품을 출시해 시장 점유율과 매출을 키웠고 3조달러 시가총액 기업이 됐다.
애플의 경쟁사들도 헤르마 하우저 ARM 창업자의 예견처럼 스스로 반도체를 설계하려고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구글이다. 구글은 애플과 물고 물리는 관계다. 애플은 구글지도, 구글 검색을 아이폰에 사용했다. 구글은 아이폰과 경쟁하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선보였고 '픽셀'이라는 스마트폰도 판매한다.
구글은 지난 몇 년간 픽셀에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사용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ARM의 도움을 받겠지만 구글 내부에서 설계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애플의 성공 방식을 활용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구글 픽셀은 현재 삼성전자와 함께 개발한 '텐서'(tensor) 칩을 사용 중이다. 텐서는 삼성의 엑시노스 칩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구글과 삼성의 합작품인 셈이다. 칩 제조도 삼성 파운드리에서 한다.
그런데 텐서 칩을 사용한 픽셀폰은 애플 아이폰의 성능을 추격할 수 없었다. 칩 성능을 평가하는 벤치마크 평가에서 텐서는 애플 'A 칩'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발열 현상도 고민거리였다.
삼성은 이미 전략스마트폰 갤럭시S23에 퀄컴 스냅드래곤 8 2세대 칩을 사용했다. 퀄컴이 삼성에서 TSMC로 생산라인을 옮겼음에도 삼성은 전화기의 성능 확보를 위해 퀄컴과 손을 잡았다. 그만큼 스마트폰 성능 차별화를 위해 핵심 칩인 AP의 성능이 중요했다는 의미다.
구글 역시 칩의 성능을 높이면서도 모바일 기기에 알맞은 전력 효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안드로이드 OS와 통합할 수 있는 100% 자체 개발 칩이 필요했다.
구글의 목표는 내년 중 완전히 자체 설계한 텐서 칩 확보였다. 안드로이드 OS를 가진 구글이 자체 칩까지 만든다는 것은 스마트폰에 대한 완전한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의 엑시노스가 주춤한 사이 퀄컴이 스냅드래곤 칩으로 안드로이드 진영의 칩을 주도하고 있지만, 구글이 애플 A시리즈 칩과 경쟁할 수 있는 칩을 내놓는다면 안드로이드 진영의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변수가 생긴 모습이다. 구글이 픽셀용 칩 확보를 1년 미뤘다는 정보기술 전문매체 인포메이션의 보도가 나온 것이다. 최소 2025년 전까지 구글이 자체 설계한 스마트폰용 칩을 내놓지 못한다는 의미다.
미국과 인도로 나눠진 반도체 설계 인력 간 협력도 쉽지 않았고 인력 이탈이 잦아지면서 전반적인 칩 개발 일정이 지연됐다는 게 전 구글 임원의 설명이다.
구글은 결국 지난해까지 TSMC에 자체 설계한 텐서 설계를 보낸다는 계획을 달성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의 칩 디자인은 올해 초에야 TSMC에 전달되면서 올해 중 생산이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이는 구글이 칩 제조를 삼성에서 TSMC로 변경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구글 자체 설계 텐서 칩 등장 지연은 TSMC와도 연계해 볼 수 있다. 신형 텐서도 TSMC 3나노 공정을 사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이미 올해 TSMC 3나노 공정 생산량 대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플에 밀려 엔비디아, AMD 등도 TSMC 3나노 웨이퍼 확보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생산량이 미미한 구글 칩을 TSMC가 서둘러 생산해 주기는 어렵다.
아이폰과 비교해 픽셀 판매량이 극히 미약하다 보니 애플 수준의 반도체 연구개발비 투자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세미애널리시스의 딜런 파텔 분석가는 "구글이 스마트폰에서 이익을 내기는 어렵지만, VR기기 등 미래에 선보일 제품에 대비해 자체 개발 반도체를 확보할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글도 애플의 독주를 지켜보는 대신 자체 반도체를 확보해 정면승부를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인 셈이다. 픽셀 스마트폰은 물론 비전 프로 등 미래 지향적인 애플 제품과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지속해서 개발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없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자체 칩 설계에서 어려움을 겪은 건 메타(Meta)도 매한가지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도 자체 반도체 개발을 시도했다 포기한 경험이 있다. 메타는 VR헤드셋 '퀘스트'에 자체 개발한 칩을 사용하려 시도했지만 결국 퀄컴 스냅드래곤 XR 칩을 사용했다.
애플도 어려웠던 반도체 설계‥1980년대에 큰 좌절
애플 실리콘도 꽃길만 걸어왔을까? 그렇지 않다. 애플 실리콘도 실패가 있었고 실패는 발전을 위한 자양분이 됐다.
애플 실리콘의 역사는 의외로 깊다. 첫 시도는 1980년대에 시작됐다.
애플 실리콘의 첫 프로젝트는 1980년에 가동된 '아쿠아리스(Aquaris)' 프로젝트였다. 스티브 잡스가 주도해 개발한 첫 맥 컴퓨터는 모토로라 68000 칩을 통해 작동했다. 이 칩은 잡스가 만들어낸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를 지원하기에는 성능이 부족했다.
존 스컬리 당시 CEO와 잡스 축출에 혁혁한 공을 세운 존 루이 가세가 애플 자체적으로 칩 설계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애플 실리콘 설계를 위한 팀도 꾸려졌다. 목표는 쿼드 코어 칩이었다. 인텔, 모토로라의 칩을 사용한 컴퓨터를 월등히 능가한 성능을 가진 맥 PC를 탄생시킨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인텔이 첫 쿼드코어 CPU를 선보인 게 2007년이다. 애플은 약 20년 후에나 실현될 계획을 시작한 것이었다.
애플은 반도체 설계를 위해 크레이(cray)의 슈퍼컴퓨터 X-MP/48을 도입했다. 1500만달러의 자금을 투입했다. 스컬리 CEO가 직접 크레이 영업사원에게 전화해 주문했다는 일화도 있다.
애플은 6주 만에 슈퍼컴퓨터를 도입을 완료했다. 50여명의 인력이 아쿠아리스를 전담했다.
애플은 거대한 슈퍼컴퓨터가 CPU 설계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맥 컴퓨터 회로 설계에 필요하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붙였다. 크레이 설립자 시모어 크레이도 애플이 어디에 자기가 개발한 슈퍼컴퓨터를 사용하는지 몰랐다. 단 크레이는 애플이 크레이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것을 즐겼다. 크레이의 사보에 실린 애플의 도입 사례 기사를 이를 증명한다.
쿼드 코어 CPU라는 목표는 컸지만, 실현은 어려웠다. 싱글 코어 CPU와 달리 쿼드코어는 더 많은 발열이 불가피했고 설계하기도 복잡했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애플이 인텔이나 모토로라만큼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여력도 없었다.
결국 아쿠아리스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애플 실리콘을 설계하겠다고 도입된 크레이 슈퍼컴퓨터는 매킨토시 컴퓨터 케이스 디자인팀에게 넘겨졌다고 한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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