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에는 한계 있어…사후 처벌 더욱 강화해야
금융당국에 징벌적 과징금 부과 수단 부여 고민할 만
피해자 보상의 실효성 높이는 다양한 방안 강구해야
국내 증시를 뒤흔든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과 5개 종목 무더기 하한가 사태를 계기로 주가 조작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다. 자본시장 대상의 범죄 행위는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에게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끼칠 뿐 아니라 자본시장 자체의 신뢰를 훼손해 투자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기업의 자금 조달 길이 막히고 경제 발전도 저해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불공정거래 행위를 감지하는 시장감시시스템을 개선하는 한편 강력한 사후 처벌로 범죄 의지를 꺾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더불어 금융당국·감독당국과 검찰·경찰 등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입법·사법 ·행정부는 물론 금융투자업자와 자본시장 참여자 모두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감시시스템 지속 개선해 범죄 적발 확률 높여야
전문가들은 시장감시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범죄는 늘 제도의 사각지대, 빈틈을 찾아서 진화하기 마련"이라면서 "시장 교란 행위가 발생했을 때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사전적으로 걸러내지 못했다고 (현재의 감시시스템 체계를) 폄하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부연했다.
연태훈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범죄 적발 확률을 높이려면 정형화되지 않은 다양한 시장 정보 확보와 분석에 자원을 더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조직화·다양화·지능화하고 있는 불공정거래 수법의 진화에 맞춰 시장감시시스템도 사전적 한계를 설정하지 말고 창의적·능동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유연한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령 이상신호 포착에 쓰는 데이터의 포괄 범위도 거래정보저장소 등에 저장된 장외파생상품 거래정보를 포함하도록 하고, 해당 정보의 구체성도 개선하는 등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적 자원 강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연태훈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유관기관의 자본시장 감시 업무는 다른 업무 대비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순환 보직이 아닌 전문형 보직 관리가 필요하고, 인사나 보상 측면에서도 이에 부합하는 유인체계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는 라덕연 사태를 계기로 이상거래 적발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시장경보 제도도 개선할 방침이다. 중장기에 걸친 주가 조작 시도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이상거래 적출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차액결제거래(CFD) 실제 거래 주체도 밝히겠다고도 했다. 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경영지원본부에 인력 증원도 요청한 상황이다. 아울러 장기간에 걸쳐 주가를 조작하는 유형에 대응하기 위해 주가 감시 기간을 연장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상거래 적출 기준을 최장 100일에서 최장 1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상거래 적발 시장감시시스템은 사후에 적발하는 제도이지만 시장경보는 불공정거래의 개연성을 발견하고 거래소가 특정 종목에 대해 투자주의, 투자경고, 투자위험, 거래정지 등으로 지정하는 사전적인 제도다. 다만 황세운 선임연구위원은 시장경보 제도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소에서 시장경보 조치를 한다고 해서 항상 조사에 돌입해 처벌로 이어지진 않는다"라면서 "오히려 시장경고 차원에서 조치했다가 종료되는 사례가 많으며 시장에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하고 투자자들을 환기시키기 위한 차원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도 자본시장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감시 고도화를 추진한다. '증권불공정거래 통합정보시스템' 구축을 위해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과 협업을 추진 중이다.
사후 처벌 최대한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계획적인 범죄자들로부터 투자자를 완벽하게 보호할 예방 수단은 없고 시장감시시스템을 뛰어넘는 지능화한 범죄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어 강력한 처벌이 필수라고 본다. 황세운 선임연구위원은 "사전 예방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100% 걸러낼 수 없다면 사후 처벌을 강화해 대응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결국 주가 조작과 같은 중대 범죄는 검찰의 기소와 처벌로 이어져야 이를 막는 데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기소와 처벌 강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 범죄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금융당국일 수밖에 없어 최소한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 정도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태훈 선임연구위원은 "경제 범죄는 불특정 다수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심각한 피해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중대성에 비추어 현재 징벌 수준이 과하게 낮다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하다"라면서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처벌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형벌 및 벌칙 원칙과 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자본시장법에서는 시세조종 행위의 경중을 범죄자의 이익 혹은 회피한 손실로 따지고 있지만 증권 범죄의 성격상 피해자의 손실이 범죄수익을 초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라며 "다양한 경제사범에 대한 국민의 법감정을 우리나라의 형벌 체계가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개선의 필요성이나 가능성은 없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범죄수익 환수와 원활한 피해보상 체계 구축
범죄이익의 몰수, 피해자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행정적 과징금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재산형 성격의 징벌을 강화하고 피해자 보상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배상명령 제도나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 제도 등 현행 법체계 하에서도 별도 민사소송 없이 피해자가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불공정거래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연태훈 선임연구위원은 "증권 관련 범죄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적용 범위를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 행위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철저한 범죄수익 환수와 원활한 피해자 보상이 이뤄지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이원석 검찰 총장은 한국거래소를 찾아 "불공정거래 사범을 최대한 엄중하게 처벌하고 범죄수익을 박탈해 환수하겠다"며 "다시는 금융시장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태훈 선임연구위원은 "당장은 자본시장법상의 벌칙 규정을 최대한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형벌과 벌칙에 관한 원칙과 부과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중대 범죄들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라며 "억제 수단의 확대와 강화, 그리고 관용 없는 집행을 위해서는 입법·사법·행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투자자 피해보상을 위해 증권집단소송 등 이미 도입된 제도를 활용하고 과징금 제도를 보완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전향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증권집단소송은 2005년 도입됐는데 주가 조작 등으로 피해를 볼 경우 한 사람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같은 피해를 본 다른 주주들도 똑같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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