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환 새로고침 의장 인터뷰
노조 설립 전엔 회사에 밉보일 거란 걱정도
노조 만든 뒤 달라진 회사…임금 인상률 올라
강경투쟁 선 그었지만 '필요하면 투쟁 할 것'
새로고침이 변화 만들면 경영계·정부 함께해야
"새로고침도 필요하면 투쟁에 나설 수 있습니다. 경영계는 그대로인데 노동계만 권리를 포기하면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새로고침이 활동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면 경영계도 이에 맞춰 바뀌어야 하고, 정부는 그 사이를 잘 이어줘야 합니다.”
LG전자 최초로 사무직 노동조합을 만들고, 일명 'MZ(밀레니얼+Z세대)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를 발족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 유준환 새로고침 의장(33)은 향후 새로고침의 노동운동 방향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새로고침은 민주노총과 달리 정치적 활동과 무분별한 강경 투쟁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출범했지만 그것이 '완전한 투쟁 포기'는 아니라는 게 유 의장 설명이다.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노동계뿐 아니라 정부와 경영계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8살에 노조 설립…한 달 만에 3000명 가입
유 의장은 LG전자 입사 4년 차였던 2021년 처음 사내 사무직 노조인 ‘사람중심 노조’ 설립에 나섰다. 패기 반, 걱정 반으로 조합원 4명에서 시작한 노조는 불과 2년 만에 LG전자를 넘어 새로고침 협의회로 성장하면서 조합원 8000명 규모로 커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비해 아직 조합원 수와 영향력, 교섭권 등 측면에서 크게 부족하지만 노동운동을 정치와 강경 투쟁 영역에서 독립시키겠다는 설립 취지가 큰 공감을 얻으면서 최근 정부와 정치권, 국민에게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유 의장이 노조 설립을 추진했던 이유는 직원에 대한 회사의 무관심이다. LG전자가 2020년도에 '역대급' 실적을 냈음에도 사측이 "시장이 좋아서 그런 것이고 직원이 잘해서가 아니다"며 터무니없이 낮은 성과급을 책정하자 직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빗발쳤다. 유 의장은 "애초에 제대로 된 성과급 기준도 없었다. 회사가 직원을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라며 "그래서 (사무직) 노조가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전체 약 4만명의 직원 중에 3만명 정도가 사무직이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사무직 노조가 만들어진 적은 없다. 회사의 평가가 임금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총대를 메고 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유 의장이라고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노조를 설립하면 회사에 밉보여 회사를 더 못 다닐 수 있겠다는 걱정도 있었다”며 “하지만 누군가 나서야 한다면 처자식도 없고 연차도 낮아 기회가 조금이라도 더 있는 제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인 '블라인드'에 노조를 만들겠다고 밝힌 뒤 노조 설립증을 제출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단 일주일이다. 그는 "노조를 설립하려면 임원이 있어야 하니 3명을 더 모았고, 동시에 블라인드에 '일주일 뒤 신고증을 낼 건데 가입하려는 사람이 500명이 안 되면 안 하겠다'는 글을 올렸다"며 "다행히 일주일 뒤 900명 이상이 가입 의향을 밝혔고, 한 달 뒤엔 3000명이 가입했다"고 말했다.
사무직 노조 설립 뒤 ‘임금 인상률’ 두배 뛰어
사무직 노조가 만들어지고 지난 2년간 회사가 직원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바뀌었다. 유 의장은 "일단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확실히 노조가 생긴 이후 회사가 모든 일에 조심하려 하고, 노무 관리 제도에 대한 변경이 있을 때는 직원들에게 알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CEO(최고경영자) 토크나 타운홀미팅이 새로 생겼고, 노조 설립 뒤 성과급 기준도 만들어졌다"며 "특히 평균 3~4% 정도였던 평균 임금 인상률이 두배 정도로 올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LG전자의 대표교섭노조는 한국노총이기 때문에 신생 노조의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생산직 중심인 한국노총이 사측과 교섭을 할 때 사무직 노조에서도 요구안을 받지만, 교섭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무직 직원들의 의사를 조금 더 반영할 수 있는 노사협의회도 LG전자의 경우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유 의장은 "저희가 건넨 요구안이 (교섭권이 있는) 제1 노조의 최초요구안에 안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들어가더라도 제1 노조가 '노력했는데 안 됐다'라고 말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MZ노조' 넘어 최대한 많은 노동자 대변할 것
지난 2월 출범한 새로고침은 8개 노조 6000명에서 현재 13개 노조 8000명으로 성장했다. 13명의 노조위원장 중 10명이 30대다. 젊은 조직인 만큼 민주노총·한국노총에 비해 수평적 문화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유 의장은 "의장에게 특별한 권한을 주는 것을 반대했고 모두 이 부분에 동의해서 의장은 대표자라는 위치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며 "위원장끼리도 각자 노조의 인원수와 관계없이 1개의 노조가 1개의 목소리를 내는 직접민주주의 구조"라고 말했다.
유 의장은 새로고침이 'MZ노조'라고 불리는 것에는 반대한다. 20·30대 조합원이 과반수를 차지하긴 하지만 LG전자 사람중심 노조의 경우 조합원 45% 정도가 40·50대일 만큼 연령대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MZ노조'라는 인식을 넘어 영세사업장, 중소기업, 특수고용 노동자, 취업준비생 등 보다 많은 노동자(예비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노조로 성장하는 것이 유 의장의 목표다.
그는 "민주노총을 조합원 수로 넘긴다는 것보다는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노동자 단체가 돼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현재 노조 조직률은 14% 정도에 불과하고 아직 미조직된 노동자들이 많다. 새로고침은 단순히 대기업이나 공기업 몇 개 노조의 목소리가 아니라 최대한 많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단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과거서 벗어나야…경영계·정부도 변화 필요"
과격한 투쟁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민주노총에 대해선 시대 변화에 맞춰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의 정통성은 노동자들에게서 나온다. 노조가 노동 외적인 문제로 가버리면 여론은 노동운동의 취지를 잘못 받아들일 수 있다"며 "민주노총이 역사적으로 굉장히 많은 것들을 바꾸고 이뤄냈지만 기존의 방식이 유효한지는 계속 스스로 되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장은 새로고침이 근로 환경과 무관한 정치적 투쟁에는 선을 그었지만 노동 이슈와 관련된 투쟁을 전혀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새로고침이 변화에 한발짝 내디디면 경영계와 정부도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며 "기업은 그대로 있는데 노동계만 강경 투쟁을 안 한다고 하면 효율적으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경영계도 많이 바뀌어야 하고 그사이를 정부가 잘 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