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소아과 의원은 최근 감기 환자가 급증한 탓에 평일엔 5~6명, 주말엔 10명 안팎의 어린이 환자를 비대면 진료한다. 아이에게 열은 나는지, 기침은 하는지, 목은 아픈지 등 증상을 물은 뒤 보호자에게 재차 확인한다. 약 복용에 대한 설명은 빠지지 않고 반드시 한다. 코로나19, 폐렴처럼 보이거나 상황이 악화하면 병원에 내원하라고 안내한다. 대부분 경미한 환자를 비대면 진료했기 때문에 부작용 사례는 없었다. 대신 피부염, 성장장애, 비만 등 의사가 직접 봐야 할 필요가 있는 질환은 대면 진료한다. A의원 원장은 "의료진이 원칙만 지키면 비대면 진료의 대상을 굳이 재진에 국한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비대면 진료를 해본 일부 의사들은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도 첫 진찰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 3년간 쌓였던 비대면 진료 3400만건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진료 건수가 많고 부작용이 없던 질환부터 초진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감기약·알레르기약이나 환자가 의료기관 방문을 꺼리는 탈모약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내달부터 시행될 시범사업에 초진 제한을 둔 것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한 진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료계 입장을 반영해서다. 하지만, 한시적 비대면 진료에서도 시진·청진·타진·촉진이 필요한 진료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 경기도 수원의 B의원 원장은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자가 단순히 약만 타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신청할 때도 마지막 병원 방문은 언제인지, 최근 혈압·혈당 수치는 언제인지 꼼꼼히 확인한다"며 "비대면의 역량을 넘어서는 진료는 거절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3월 발표한 '비대면 진료 3년, 1379만명의 건강을 보호했다'는 자료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환자안전사고(2020년~2022년 11월)는 경미한 5건(처방 과정에서 누락·실수)에 불과했다.
비대면 진료가 대면 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시범사업 추진방안은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재진 원칙, 약 배송은 금지' 조항은 의약계 입장만을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는 오진 위험, 의료전달체계 붕괴 우려로 비대면 진료의 효과성을 의심해왔다. 이번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안을 두고서는 "허용 범위가 너무 넓다"며 목소리를 냈다.
정부가 소아과 진료에 한해 야간·주말에 초진을 허용하려다 시범사업 발표 당일 "검토 중"으로 선회한 것을 두고 플랫폼업계는 '의료계 눈치보기'로 본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관계자는 "지난해 초 오미크론 대유행 때의 의료공백을 비대면 진료가 채웠음에도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에 헌신짝 버리듯 내팽겨쳤다"고 비판했다.
일선 의사와 약사들 사이에서는 "의약 단체들과 현장에서 비대면 진료를 했던 의료진 간의 입장 차이가 크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수가가 기본 진찰료와 약제비에 일반진료비 30% 수준의 '시범사업 관리료'가 더해진다는 점에서 비대면 진료는 젊은 의·약사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선택지다. 비대면 진료로 한방 약을 처방하는 한의사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는다. 대한한의사협회는 19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우려를 표명하는 의약 단체 성명에서 "찬반 의견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며 빠지기도 했다.
재진 위주의 비대면 진료가 시작되면 소비자 이탈은 불 보듯 뻔한 셈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해 9월 비대면 진료 이용자 17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읍면 거주자의 91.7%, 대도시 거주자 87.9%는 앞으로 비대면 진료를 재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서울 동작구에 사는 주민 구모씨(31)는 "비대면 진료에서 병원 선택권이 제한되고 약도 직접 가지러 가야 하면 이제는 굳이 자주 쓰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 대유행 때 요긴하게 쓰였던 비대면 진료와 플랫폼이 과도한 규제로 유명무실해져서는 안 될 것"이라며 "기준을 두고 비대면 진료에서 안전성이 입증된 질환부터 초진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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