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우주개발국 시찰 이후 긴 잠행
한미일 압박공조 강화…북한은 오히려 '잠잠'
"고민 깊을 것…한미일 정상회담 노릴 수도"
한미·한일간 연쇄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압박 공조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주 넘게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경고한 '정권 종말'을 비롯한 강도 높은 발언에 대한 대응책을 고심 중일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한미일 정상회담이 예고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을 겨냥해 도발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0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북한 관영매체 보도 등을 기준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달 18일 국가우주개발국 시찰이 마지막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4월 중 발사가 예고됐던 군사 정찰위성에 대해 "계획된 시일내 발사하라"고 지시했지만,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후 이날까지 22일째 잠행 중이다.
그 사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핵협의그룹(NCG) 창설 및 미 전략핵잠수함(SSBN) 한반도 기항 등 북한이 거센 반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확장억제 강화 방안이 담긴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이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연쇄 정상회담으로, 한미일 대북 압박 공조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나 북한은 잠잠한 모양새다. 워싱턴 선언에 대한 반발도 채택 사흘이 지나서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로 된 '입장' 수준으로 대응했을 뿐이다. 한미 정상을 겨냥한 '허수아비 화형식'을 치렀다는 등 선전매체를 통해 일부 비난을 이어가고 있지만, 당국 차원의 무게감 있는 입장을 반영한 발표는 사실상 없다.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첫 반응도 이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산하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한일 군사적 결탁이 무모한 실천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는 데 그쳤다.
군사적 도발도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4월로 예고됐던 군사 정찰위성 발사는 현재까지 별다른 징후가 포착되지 않고 있으며, 무력 시위는 지난달 13일 신형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를 끝으로 한 달 가까이 중단됐다.
조용한 김정은…'정권 종말' 경고에 부담 느꼈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정권 종말'을 경고하는 등 한미일 안보 협력이 공고해지면서 김정은에게 큰 부담을 안겨줬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지난해 11월 제54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도 '핵무기 사용시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지만, 미국 대통령까지 정권에 대한 종말을 경고한 것은 김정은 입장에서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는 평가다. 이례적인 긴 잠행이 위기감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워싱턴 선언에 따른 미 전략핵잠수함의 한반도 기항이나 전략핵폭격기의 한반도 기착 등은 북한의 예상을 뛰어넘는 합의"라고 평가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예비역 육군준장)은 "김정은이 오랜 시간 공들여 수중 핵어뢰 '해일' 등 한미를 위협할 신형 무기들을 잔뜩 내놨는데, 일거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로 고민이 깊을 것"이라며 "북한이 도발을 재개한다면 가까운 시기에는 G7 기간 중 한미일 정상회담을 겨냥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핵실험 징후 여전…"수위 높여 도발 재개할 수도"
핵실험 준비 징후가 지속적으로 포착되는 등 긴장을 늦출 순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미국 상업위성 '플래닛 랩스'가 지난 4일 촬영한 영변 일대 위성사진을 토대로, 북한이 핵시설에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지난달 12일 촬영된 열적외선 영상에서 방사화학실험실, 우라늄 농축시설, 5㎿ 원자로 등의 온도가 높게 나타나 해당 시설들이 가동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장거리 로켓 관련 시험이 실시되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이달 5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위치한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시설 현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보이는 새로운 공사 착수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2012년 4월 공개된 북한 최초의 ICBM '화성-13형'의 엔진 연소시험을 비롯해 ICBM급 미사일의 각종 실험이 이뤄지는 장소다. 다만 발사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작업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NCG 창설을 거론하며 '결정적인 행동'을 언급한 김여정의 반발은 앞으로 초강경 기조로 대응할 수 있다는 방침을 시사한다"며 "미국에 대해서는 고체연료 ICBM 발사와 핵잠수함 전개를 겨냥한 핵어뢰 훈련으로, 남한에 대해서는 전면전까지 가상한 전술핵 사용 훈련 등으로 수위를 높여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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