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세관이 페루에서 고용한 통역사 '박씨'
녹두 원산지 조사인데, 박씨도 녹두수출업자
"조사 대상자 데리고, 원산지 조사 다니나"
페루기업들, 한국 세관 불신하고 두려워해
기업파산 직전인데, 담당팀은 '최우수' 포상
인천세관이 국내에 수입된 녹두의 원산지를 증빙하기 위한 페루 조사에서 현지 한국인 녹두 수출업자를 통역사로 쓴 사실이 확인됐다. 녹두를 거래하는 경쟁자를 대동한 채 페루기업과 농민들을 상대로 정보수집에 나선 셈이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을 리 만무한데, 통역사가 현지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는 제보까지 접수됐다.
4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세관은 지난해 4월과 8월 두 차례 페루산 녹두의 원산지를 확인하기 위해 현지조사를 진행했다. 4월은 정보수집을 위한 비공식 조사였고, 8월은 공식 조사로 이뤄졌다. 4월 조사에서 통역사 역할을 맡았던 인물은 ‘xxx 박(이하 박씨)’이었다.
다수의 한국 수입기업들과 페루기업들은 박씨의 존재가 가장 큰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박씨가 페루에서 한국으로 녹두를 수출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충대 한국양곡유통협회장은 “관련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페루 현지를 방문한 세관의 자료 수집 방식은 임의적이고 위법했다”며 “조사 대상자인 한-페루 수출자를 통역으로 동행한 채 농민 등을 인터뷰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페루의 녹두 수출업자들은 박씨의 존재를 불쾌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 세관팀은 동종업계 경쟁자인 박씨가 있는 자리에서 페루기업에 녹두 원산지 소명자료를 요구했다. 자료에는 제조원가, 거래처, 생산규모 등이 적혀있는데, 동종업계 경쟁자에 영업비밀을 보여줘야 했던 셈이다. 이 회장은 “페루 현지의 수출자, 생산자들이 한국 세관의 조사를 불신하고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어 못하는 통역사?…관세청 "검증 때는 안했다"
통역사의 언어 실력에 대한 의구심도 있는 상황이다. 페루는 수도인 리마에서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그 외 지역에서는 스페인어를 쓰고 있다. 하지만 제보에 따르면 현지 기업관계자와 농민들은 박씨의 스페인어 실력이 부족해 제대로 된 소통이 어려웠다고 귀띔했다.
비상식적인 조사라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관세청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관세청 측은 “4월에 갔을 때는 박씨가 통역을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검증할 때는 그분이 통역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4월은 공식적인 조사가 아니었으니 무관한 사안이고, 8월 공식검증을 진행할 때 다른 통역사가 있었으니 절차 상 하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왜 공식 통역사를 구하지 않고 수출업자인 박씨를 대동했는지에 관한 질의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관세청은 오히려 담당팀인 인천세관 자유무역협정검증과에 포상을 내렸다. 2022년 상반기 원산지조사 정보분석 경진대회에서 ‘페루산 농·수산물의 역외산 우회수입 가능성을 깊이 있게 분석했다’며 최우수상에 선정한 것. 이와 관련해 관세청에 밀수 정황을 파악했는지, 증언이나 밀수경로 등 최소한의 근거가 있는지 등을 물었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한 수입기업 관계자는 “억울하게 폐업에 내몰린 국민들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가정불화, 신용위기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이걸 성과로 삼아 포상을 하는 게 과연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관세청은 지난해 3월 31일 대전 연수원에서 '상반기 원산지조사 정보분석 경진대회'를 개최하고 인천세관 자유무역협정검증과의 페루 농산물 원산지 검증 사례를 최우수로 선정했다. 사진=관세청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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