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의 배신]
현지 브로커에 뚫린 세관조사 일정
'세관이 뭐 물어봤나' 대비도 가능해
관세청은 일정 유출된 것 눈치 못 채
페루기업들 "한국 세관 태도 권위적"
"사실관계 설명할 기회 불충분" 토로
세관당국이 페루산 녹두의 원산지 조사를 부적절하게 진행한 정황이 포착됐다. 기밀이 요구되는 현지조사 계획이 현지 브로커에 의해 유출됐는데, 관세청은 이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페루 현지에서는 조사 과정에서의 고압적 자세와 부적절한 조사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4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관세청은 2022년 1월 페루산 녹두를 수입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원산지 증빙 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인천세관은 2022년 4월, 2022년 8월 두 차례 페루 현지에 직원들을 급파했다. 4월은 공식조사 전 현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차원이었고, 8월은 페루 현지 기업과 농민을 상대로 질의하는 공식 조사였다.
문제는 8월 현지 원산지 확인을 위해 이뤄진 조사다. 당시 페루의 일부 기업들과 농민들은 모종의 브로커를 통해 세관의 조사일정을 사전에 입수했다. 해당 문서에는 세관직원 명단과, 검증 장소, 대상자가 구체적으로 적시돼있었다. 먼저 조사를 받은 페루기업이나 농민을 통해서 ‘세관 직원들이 뭘 물어봤고 어떤 조사를 했는지’ 등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기밀을 요구하는 세관의 조사가 시작부터 뚫리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관세청은 이같은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관세청 측은 “확실한 건 관세청이 제3자에게 보내준 것은 아니다”라면서 “조사대상 기업이 흘린 것 같다”고 해명했다.
페루기업들 "韓 세관, 권위적...정상적 답변 어려워"
조사과정에서는 세관직원들이 고압적인 자세로 페루기업들을 조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세관 직원들이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컴퓨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설명할 기회와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한 페루기업은 아시아경제 측에 보낸 진술서에서 “한국 세관이 우리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자료를 요구했지만 협조했다”면서 “그럼에도 세관 측은 권위적인 태도를 가졌으며 우리의 애로사항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충대 한국양곡유통협회장 역시 “페루업체들에 의하면, 세관의 조사 태도는 강압적이었고 사실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았다”면서 “현지에서 원산지 조사를 받은 직원 다수가 세관의 조사방식이 무서웠으며 정상적인 답변을 하기 어려웠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방식은 FTA(자유무역협정) 체약상대국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며 양국 간 외교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경고했다.
조사에서 페루 공무원이 동행한 점도 논란에 휩싸였다. 통상 해외조사팀이 방문하는 경우 현지 정부는 국민보호를 위해 자국 공무원을 동행시킨다. 그런데 페루 정부는 국세청에 해당하는 ‘수낫(SUNAT)’을 자랑거리로 생각할 만큼 정부부처의 힘이 강하다. 현지 제보에 따르면, 한국 세관팀과 동행한 페루 공무원을 보고 ‘왜 우리 공무원이 같이 왔느냐’며 걱정한 페루 농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을 두려워하는 페루인들이 조사팀에게 회계장부나 농장현황을 제대로 보여주기 어려웠을 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지조사 방식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에 대해서 관세청은 “원산지 입증자료는 관련 법령에 따라 요구하고 있다”며 “조사 및 과세절차가 진행 중으로 세부사항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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