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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미래]이희정 “서울의 미래는 ‘N분 생활권’ 실현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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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미래]이희정 “서울의 미래는 ‘N분 생활권’ 실현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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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경쟁력은 시간과 공간과 지식이란 세 요소가 함께 변화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본인이 생각하는 ‘미래’에 대해 앨빈 토플러의 말을 인용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가 바라는 서울의 미래도 이 개념의 연장선에 있었다. 이 교수는 서울의 ‘N분 생활권’이 현실화된다면 출퇴근에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게 되는 ‘시간의 혁신’과 직주락(職住樂) 혼합도시의 ‘공간 혁신’이 더해져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서울시립대 배봉관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서울의미래]이희정 “서울의 미래는 ‘N분 생활권’ 실현된 도시”

-‘N분 생활권’이란 무엇인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가 락다운(도시 봉쇄)을 경험하면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도시모델에 대한 필요성이 생겨났다. ‘N분 생활권’은 쉽게 말해 팬데믹 상황에서도 기존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N분 이내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에 접근 가능한 근거리 생활기반의 도시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 구상을 처음 제시한 인물은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다. 성인이 15분에 걸어가는 거리가 1마일(1.6km)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15분 생활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2010년 이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미래 도시계획 아이디어로 처음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이 추진하는 정책으로 파리를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에 15분 이내로 접근할 수 있는 근거리 생활기반 도시로 재정비해 보행과 자전거 중심의 친환경 녹색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팬데믹과 같은 위기상황으로 도시가 셧다운되는 뉴노멀에도 탄소배출을 줄이고 자족적인 생활이 가능해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세계적으로 ‘삶의 질’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는 현 상황에서 서울의 미래를 위한 도시개발 구상에 N분 생활권 개념을 빼놓고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서울의미래]이희정 “서울의 미래는 ‘N분 생활권’ 실현된 도시”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사진=곽민재 기자]

-서울은 N분 생활권으로 나아가고 있나?


▲지난달 5일 서울시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확정 공고한다고 밝혔는데 여기에도 N분 생활권에 대한 내용이 녹아들어 있다. 이 계획은 서울시가 추진할 각종 계획의 지침이 되는 최상위 공간계획으로 향후 20년간 서울이 지향할 도시의 미래상을 담고 있다. 이 중 7대 목표는 보행일상권 조성, 수변 중심 공간 재편, 기반시설 입체화, 중심지 기능 확산, 미래교통 인프라 확충, 탄소중립 안전도시 조성, 도시계획 대전환 등이다. 주목할 점은 주거·업무 등 공간 경계가 사라지고 ‘보행일상권’ 개념을 새롭게 도입했다는 것이다. 주거용도 위주의 일상 공간을 전면 개편해 서울 전역을 도보 30분 내에서 주거·일자리·여가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자립생활권으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N분 생활권의 개념이 잘 반영돼 있다고 생각한다.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은 쉽게 말해 서울을 100개의 작은 도시로 만들어져 있는 생활권으로 공간구조를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한때 인구 1000만명에 육박하던 서울을 100개의 N분 생활권이 가능한 도시로 재편하는 것은 산업화시대 도시계획의 큰 축 중 하나인 소위 ‘빛나는 도시’ 모델을 뜯어고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빛나는 도시 모델은 고층화로 밀집도를 높이되 남는 여백에는 도로와 공원과 같은 현대 도시시설이 넓게 자리 잡도록 한다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모더니즘 도시설계이론이다. 서울을 100개의 N분 생활권으로 재편하는 것은 미래 새로운 초광역 대도시권 소위 메가시티리전(Mega City Region)에 더 적합한 새로운 자족적 도시계획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N분 생활권이 수도권으로 확장된 개념이다. 최근 국가 차원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분산 집중형 도시모델로서의 컴팩 네트워크(Compact & Network)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서울의 보행일상권은 어떻게 실현할 수 있나?


▲먼저 보행일상권을 실현하기 위해 N분 이내에서 일하고, 놀 수 있도록 문화시설, 수변녹지, 대중교통 거점 등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직장과 주거지가 혼합되면서 시민들은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고 가족과 함께 여가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녹지공원이다. 현재 도심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는 용산공원이 대표적이다. 용산 미군기지를 활용하면 여의도 전체 면적보다 넓은 초대형 크기의 도심공원이 서울에 조성될 수 있다.


특히 용산공원이 중요한 것은 도심공원으로서 인근 용산정비창 용지에 조성되는 국제업무지구 고밀 개발을 완충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맨해튼의 센트럴파크가 대표적이다. 센트럴파크 주변에는 초고층 주거 빌딩과 쇼핑시설, 문화시설 등이 있어 뉴요커들과 관광객들로 24시간 붐비는 살아 숨쉬는 공간이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 한복판에 여의도공원의 2배, 서울광장 40배 규모의 아시아식 실리콘밸리를 마련하겠는 구상을 밝혔다. 용산정비창 일대를 일자리, 주거, 여가, 문화 등 도시생활에 필요한 모든 활동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직주혼합의 융·복합 국제도시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곳에 법적 상한 용적률을 뛰어넘는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인근에 있는 용산공원도 시민들이 24시간 즐길 수 있는 녹지공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 전역에 N분 생활권을 조성하기 위한 가용공간이 부족하지 않나


▲‘지상철도와 간선도로 지하화’를 통해 서울의 중심부에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 가용지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지역끼리 연결성을 높이고 다양한 도시 기능을 제공할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곳에 지상 공원화와 입체복합개발 등을 추진하면 된다. 특히 지상철도 대부분은 서울 중심지를 지난다. 지상철과 간선도로를 지하화하면 서울 중심부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도시공간 단절 해소, 주변 지역 노후화, 소음·진동 등 환경적인 부분도 함께 개선할 수 있다.


유럽에서도 철도나 도로 지하화를 통해 도시 공간을 확보하고 도시의 부족했던 연결을 만들어낸 사례가 꽤 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 빌바오, 영국의 런던과 맨체스터, 프랑스의 파리와 리옹 등 유럽의 구도심은 도시의 부족한 인프라를 지하화와 선형공원 조성을 통해 해결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의선의 지상철 부분을 지하화하고 지상구간에 공원을 만든 서울 연남동 경의선 숲길인 이른바 ‘연트럴 파크’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용산을 지하화해 교통허브로 개발하고 지역 간 연결성을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용산 미군기지 용지에 들어선 용산공원 하부에 주요 간선도로가 모이는 교통결절점(여러 기능이 집중되는 접촉 지점)을 만드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프랑스 파리 외곽의 신도시 라데팡스의 지하에 고속도로, 지하철, 일반도로 등이 만들어진 것과 유사하다. 지하화된 경부고속도로는 한남IC부터 한강을 거쳐 용산 지하로 이어져 강변북로와 고양시 나아가 미래 통일 이후 신의주와 대륙으로 연계될 수 있다.


[서울의미래]이희정 “서울의 미래는 ‘N분 생활권’ 실현된 도시”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사진=곽민재 기자]

-미래 서울을 위해 용산 개발이 중요해 보인다


▲교통과 군사적 요충지인 용산은 지도상으로 보면 서울의 한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위치지만 그간 여러 역사적인 이유로 활용되지 못했다. 고려 말 몽고군의 병참기지가 됐고,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이 주둔했으며 임오군란 때는 청군이 주둔했다. 광복 후 용산은 미군 기지로 쓰이면서 우리가 활용하기 힘든 일종의 벽이 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용산은 ‘미래 세대를 위한 유보지’ 성격을 띠게 됐다. 지금까지 서울 전역을 개발하느라 서울에는 미래를 위한 가용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기에 이 공간은 소중하다. 특히 N분 생활권 등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보지가 필요하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결코 한 번에 개발할 수 없기에 순환개발을 해야 하는데 기존 지역이 담당했던 기능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을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으면 개발이 힘들다. 용산이라는 가변적인 공간을 통해서 서울 전역의 기능적인 재편이 실현될 수 있다. 대통령실 이전으로 용산에 힘이 실린 만큼 용산공원 조성, 경부선 지하화, 국제업무단지 조성, 여의도와 한강 수변공간조성 등도 서울 전역의 N분 생활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


-서울 전역 생활권 조성을 위한 교통혁신의 방향은?


▲지상철도와 도로의 지하화는 미래교통수단과 연관된다. 대표적으로 에어택시로 대표되는 도심항공교통(UAM)과 자율주행차량 등이 있다. UAM은 도로, 철도 등이 혼잡한 도시에서 하늘길을 이용해 이동성을 극대화하는 미래 교통수단 중 하나다. 문제는 드론의 일종인 UAM은 추락으로 인한 안전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UAM의 안전을 위해서는 통신의 교란이 없어야 하기에 고층빌딩 공간에서는 운영이 어렵다. 이때 도로를 지하화하고 지상을 공원화해 녹지공간을 확보하면 통신 교란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만에 하나 추락할 경우 녹지공간, 수변공간 등이 완충지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자율주행차량의 경우도 지하공간이 기상변화 등에 대응한 통제와 관리를 위해 보다 효율적이다.


교통이 혁신되면 궁극적으로 출퇴근을 위해 버려졌던 아까운 시간이 줄어드는 ‘시간의 혁신’으로 자기 계발과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러시아워 시간 늘 막히던 한강다리 등 서울의 교통체증 문제가 해소되고 지역 간 이동을 통한 환경오염이 저감되며 지하화된 도로, 한강, 수변공간에 형성된 훌륭한 자연시설과 경관, 녹지 등으로 서울시민의 삶의 질이 대폭 향상될 것이다. 직주락의 ‘공간 혁신’이 실현된 이곳에서 새로운 여가를 즐기고 휴식을 취하면서 개개인의 업무효율이 높아지고 첨단 IT산업과 창조산업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미래 서울로 나아가기 위해 유의할 점은?


▲서울은 가진 것이 많은 도시다. 반면 지방소멸 문제 등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울의 개발은 국가적 프로젝트로 접근해야 한다. 국가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칫 서울에만 특혜를 몰아준다는 인상을 주면 지방의 반대와 반발이 생겨날 수 있다. 따라서 서울의 발전이 지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스페인의 빌바오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할 수 있다. 빌바오는 도시가 처한 총체적 어려움을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해결했다. 빌바오는 원래 해상교통의 요충지라는 이점과 풍부한 철광석으로 조선과 철강, 제철산업으로 부유한 도시였지만 산업의 주도권이 아시아로 넘어가면서 몰락했다.


이에 빌바오는 도시를 문화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바스크지역 30개의 기초자치단체가 대립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빌바오는 문화시설 중심지 인근 지역에 항구거점, 산업거점 등을 배분할 것을 약속하면서, 수혜지역 범위가 넓어져 도시와 지역 전체가 발전할 수 있게 됐다. 마침내 빌바오는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지역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서울도 마찬가지로 인근 지역을 비롯한 지방과 함께 상생할 거라는 신뢰를 얻어야만 장기적인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다고 본다.



이희정 교수는 누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도시조경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시 건축도시 통합심의위원, 환경영향평가위원, 종로구청 문화지구 심의위원, 청계천복원위원회 도시계획분과 위원, 경기도 도시계획위원, 경기도 광주시, 안산시 설계심의위원, 세종시 7대 경관 총괄책임 등을 역임했다. 그가 관여하지 않은 신도시 개발, 재생, 복원사업을 찾기 힘들 정도의 경력을 자랑해 국내외 도시계획설계분야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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