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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성과급 해법]②日도 바꾸는 '호봉제'…韓, 왜 못 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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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성과급 도입되면 상당수는 임금 삭감
노조 반대에 직무평가 불신까지…장애물 산적
바뀐 임금체계 적용 시점 두고 직원간 갈등도
전문가 "완전한 직무급 불가능…합의점 찾아야"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은 우리나라에서 실패의 역사가 깊다. '촛불집회'로 탄생해 노동계에 우호적이었던 문재인 정부조차 호봉제를 대체할 직무급제 도입을 꺼내 들었으나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실패했다. 저성장·고령화 시대에는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가 적합하지 않다는 데에 전반적인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노동조합의 반대를 끝내 넘지 못한 결과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임금체계 개편은 다른 노동개혁 과제들과 달리 노동·고용 유연화가 어느 정도 갖춰져야 의미 있는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며 "그만큼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직무성과급 해법]②日도 바꾸는 '호봉제'…韓, 왜 못 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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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봉제 선배' 일본도 이제는 직무성과급

직무성과급 도입이 가장 힘든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언급되는 이유는 거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의 반대 여론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등 근로시간 개편과 노조 불법 관행 개선 같은 문제는 법률이나 관리·감독을 통해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지만 민간 기업의 임금체계는 노사합의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 고령화, 저출산과 같은 사회적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직무성과급 도입을 추진하더라도 당장 생계가 달린 임금 노동자들 입장에선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기존 호봉제 중심에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전면 개편하면 전체 노동자 중 직무·성과가 좋은 30%는 임금이 오르지만 일반 노동자 70%는 임금이 비슷하거나 또 이중 일부는 줄어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처럼 호봉제 비율이 높은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노조 체계가 강한 나라에선 임금 구조 개편이 더욱 어렵다. 실제 민주노총은 정부의 직무성과급 개편 방안을 두고 "경영계 소원 수리를 그대로 반영했다"라며 부정적인 입장이고, 한국노총 역시 직무성과급 추진 저지를 투쟁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에 실질적인 저성장 충격이 오기 전까지는 임금 개편을 둘러싼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의 호봉제 확산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만 해도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을 겪은 것이 직무성과급으로 보상 체제를 빠르게 바꾸는 계기가 됐다. 호봉제가 기업 경쟁력을 깎아 생존의 문제로 연결되자 대기업도 적극 직무성과급 체제로 변신을 꾀한 것이다.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직무성과급의 근간인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지침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에도 니콘과 소니 등 일본 기업은 효율성 제고를 위해 연공서열 타파에 나서는 등 인사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직무성과급 해법]②日도 바꾸는 '호봉제'…韓, 왜 못 바꾸나 지난해 8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속 관계자들이 2023년 임금 7% 인상, 공무원 인력감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직무성과급 되면 임금 삭감"…걱정 큰 근로자들

미국 등 다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공채 제도, 저연차 직원에 대한 박봉 문화 강해 직무급 도입 자체가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예컨대 간호사나 공무원과 같이 연차가 낮을수록 일은 힘들고 연봉은 낮은 업종의 경우, 갑자기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으로 전면 개편하게 되면 '고업무·저연봉' 시절을 참고 견딘 중·고참 직원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학계에서는 새로 입사하는 직원부터 직무급을 적용하는 등 도입 시점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이 역시 세대 갈등이나 형평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가 쉽지 않다. 특히 연공서열형 임금은 생애주기별 소득 보전에 적합해 근로자의 안정적인 인생 설계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여전히 크다. 40대 공공기관 직원 A씨는 "나이가 들고 아이가 크면서 사교육비 지출은 늘고 자동차나 집 대출금도 증가하는데 이제 와서 호봉제 대신 직무성과급으로 바꾼다고 하니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의 경우 2020년 금융권 최초로 전직원 대상 직무급제를 노사합의로 도입했다고 발표했으나, 세부 사항을 두고 노조 반발이 커지며 내홍을 겪기도 했다. 당시 노조는 직무급제 자체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상당수 직원은 하위 직무를 맡은 직원의 연봉 하락과 순환 근무 저해, 불공정한 직무 평가 등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렇다 보니 기업들 사이에서도 노조 반발이 뻔한 직무성과급 도입을 선뜻 추진하기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나온다.


[직무성과급 해법]②日도 바꾸는 '호봉제'…韓, 왜 못 바꾸나

"일은 내가 더 하는데"…참지 않는 MZ

하지만 MZ세대를 위주로는 기존의 연공형 질서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자신보다 일을 적게 하고 생산성까지 낮은데 회사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토로다. 국내 한 대기업에서 대리급으로 일하는 김성훈씨(34)는 "지난해 (인사평가에서)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결국 연차가 높은 직원들이 돈을 더 받았다"며 "열심히 하지 말고 받은 만큼만 일하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2020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직의 합리성·공정성에 대한 20·30대 직원과 기성세대 간 괴리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30대 직원들은 본인이 속한 조직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각 36점, 22점으로 낮게 매겼지만, 50대 이상 직원은 56점, 28점으로 비교적 높게 평가했다. 당시 그룹 인터뷰에서는 "30대가 일은 제일 많이 하는데 월급은 적어 가성비가 좋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다수 나왔다.


직군에 따라 업무량이 다름에도 같은 해 입사했다는 이유로 동일한 연봉을 받는 게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많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에 묶여 더 높은 연봉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중요한 직무에 꼭 필요한 인재를 쓰기 위해 고연봉을 제시하고 싶지만, 임금체계에 얽매여 인력수급에 차질을 겪는 경우가 있다.


이는 금융권 정보통신(IT) 직무가 대표적이다. 비대면·디지털 금융이 가속화하면서 금융사들은 우수한 IT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높은 몸값을 제시하는 IT 회사와 달리 금융사들은 기존 임금체계에서 크게 벗어난 연봉을 제시할 수 없어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IT 인력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 직원에게 임금을 더 줄 수는 없는 구조"라면서 "그러니 최우수 인재는 '네카라쿠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로 가고 우리한테는 안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무성과급 해법]②日도 바꾸는 '호봉제'…韓, 왜 못 바꾸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계 설득이 우선…"합리적 수준으로 타협해야"

학계에서는 직무급제를 도입하려면 직무급제의 요소를 명확히 하고, 평가 기준부터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말 비판사회학회는 '경제와사회' 리포트를 통해 "직무급이 임금 불평등 완화에 기여하기 위해선 타당한 직무분석으로 공정한 직무 가치를 도출해야 한다"며 "유사한 직무 정보를 조직 안팎으로 공유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직무평가 기준과 가치를 기업만 아는 게 아니라 직원들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전문가들은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를 바꾸기 위해 직무성과급 확대가 사측에만 유리한 것이 아님을 설득하는 동시에, 노동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수위를 조율하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관련 정부 위원회 관계자는 "노동자 반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고 직무 평가제도 역시 아직 객관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많기 때문에 완전한 직무급제 전환은 우리나라에서 불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통상 이분법적으로 호봉제의 반대를 직무급제라고 부르니 정부가 연공서열형 대신 포괄적으로 '직무성과급'이란 단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여러 가지를 합친 '종합급'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앞으로 다양한 논의를 통해 호봉제의 비중을 줄이고 직무·성과급의 비중을 늘리면서도 노사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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