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노무현, 2023 이상민…정국변수
헌정사 초유라는 공통점, 탄핵으로 직무정지
탄핵사유, 표결풍경, 여론기류 등은 차이점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 가결은 2023년 상반기 정국을 가르는 변곡점이다. 헌정사 초유의 국무위원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정치적 의미가 남다르다.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이번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관심의 초점이다.
대통령실은 8일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탄핵 가결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반박했다.
여야의 가파른 대치는 어제오늘의 상황이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살벌한 여야 관계가 형성돼 있을 때도 장관 탄핵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장관 직무 정지 결정에 관한 정치적 부담과 무관하지 않다. 또 하나는 장관이 탄핵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는 결정을 하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장관 탄핵이 이뤄지면 이를 주도한 야당의 정치적 부담도 증폭한다. 대통령실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다 부담이 되는 결정이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장관 탄핵 가결까지는 가지 않는 선에서 접점을 마련해온 게 한국 정치의 지난 역사다. 2023년 2월 정치 상황은 그래서 이례적이다.
이 장관은 8일 입장문을 통해 "오늘 저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인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헌정사 초유'라는 수식어와 탄핵이라는 단어가 결합했을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게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이다. 노 전 대통령은 헌정사 최초로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장관 탄핵과 노 대통령 탄핵은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를까.
대표적인 공통점은 헌정사 초유의 일을 당한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최초', 이 장관은 '장관 최초'로 탄핵안이 가결된 인물이다. 노 전 대통령과 이 장관 모두 국회 탄핵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것도 공통점이다.
탄핵 가결에 동참한 국회의원 수도 비슷하다. 노 전 대통령 탄핵은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195명의 의원이 투표에 참여해 193명 찬성, 2명 반대로 가결했다. 이 장관 탄핵은 293명이 참여해 찬성 179명, 반대 109명, 무효 5명으로 가결했다.
노 전 대통령과 이 장관 탄핵 모두 정국의 흐름을 바꾸는 변수 요인이라는 점도 유사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 탄핵과 이 장관 탄핵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는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중립 의무를 둘러싼 정치적인 문제가 국회 탄핵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 장관은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의 차원에서 국회 탄핵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정치적 사안과 사회적 참사라는 탄핵의 핵심 사유가 다른 셈이다.
또 하나는 탄핵의 시점이다. 노 전 대통령 탄핵은 2004년 4월 제17대 총선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단행됐다. 국회 표결은 탄핵에 반대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사실상 물리력으로 제압한 뒤 한나라당과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이 장관 탄핵은 2024년 제22대 총선을 1년 2개월 앞둔 상황에서 진행됐다. 이 장관은 탄핵을 반대하던 국민의힘 의원들도 표결에 참가한 가운데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총선 직전에 대통령 탄핵을 단행했다는 점은 2004년 당시 여론의 반발을 부른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노 전 대통령 사례의 경우 탄핵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탄핵 이후 여론은 한쪽으로 급격히 쏠렸고, 탄핵 주도 세력들은 총선에서 철퇴를 맞았다.
이 장관 탄핵 문제의 경우 찬성과 반대 어느 한쪽으로 여론이 급격하게 쏠리지는 않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라 결과는 다르지만 찬성과 반대 의견 모두 비중이 적지 않다. 이는 향후 정국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국회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이 장관 운명은 이제 헌법재판소 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헌재 판단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정치적 책임은 피할 수 없지만, 탄핵으로 이어질 법적인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총선 역풍 우려와 관련해 "올바르고 바른 길을 가야 하는데 그 길이 험하고 또 힘들다고 해서 피하거나 안 갈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런 취지로 보시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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